“ 자기성찰의 훈련을 나쁜 방향으로 적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는 무엇보다도 어느 누구와도 교제하지 않으며 나 홀로 하는 자기성찰은 도리어 영적 자해가 되어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
자기성찰(self-examination)은 은혜 안에서 성장하고자 할 때 언제나 핵심이 되는 요소다. 초대 교회에서도 바울은 갈등을 겪고 있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두 번이나 강력하게 자기 자신을 살펴보라고 촉구했다. 첫 번째는 성찬에 참여하는 자세와 관련해서였고(고전 11:28), 두 번째는 믿음 자체의 진정성과 관련해서였다(고후 13:5).
장 칼뱅도 ‘기독교 강요’의 서문에서 자기성찰에 대하여 말했다. 그는 참되고 건강한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아는 지식에서도 비롯된다고 보았다. 청교도들은 자기성찰의 실천을 가장 중요한 가르침과 경건의 덕목으로 삼았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자기성찰을 실천할 수 있는가’이다.
자기성찰의 훈련을 나쁜 방향으로 적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는 무엇보다도 어느 누구와도 교제하지 않으며 나 홀로 하는 자기성찰은 도리어 영적 자해가 되어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 유익한 방향으로 자신을 성찰할 수 있을까?
성경에서 가장 사랑받는 다윗의 시 가운데 하나인 시편 139편은 유익한 방향으로 자신을 성찰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주석가들은 이 시를 가리켜 “신학적 교훈에 필요한 지혜 경건”을 보여 주는 모범이라고 말한다. 이 시는, 그 배경이 무엇이든, 하나님에 대한 깊은 인식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진정한 자기 인식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균형 잡힌 방법을 제시한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이 시는 하나님 백성의 삶 속에 교리와 경건과 찬양이 서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매우 잘 보여 준다.
시인은 하나님 앞에서 적어도 세 가지 영역에서 자신을 성찰하는 방법을 실천하고 있다.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 특별히 시인이 마지막에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서 이 세 가지 영역이 잘 드러난다.
첫째,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살펴봐 달라고 요청한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23절). 시인의 이 요청은 시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했던 고백과 서로 공명한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1절).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다윗의 관점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그의 관점에서 곧바로 나온다.
다윗의 하나님 이해, 곧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자기계시를 통해 얻게 된 하나님 이해는 다윗을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깊은 인식에 이르게 한다.
하나님은 매우 크신 분이시기에 모든 면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압도되어 있다. 하나님이 자신을 속속들이 아신다는 사실을 되돌아보면서(1-6절), 다윗은 하나님이 알지 못하시는 것은 없다고 고백한다. 곧 하나님은 전지하시다고 고백한다. 더 나아가 다윗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들을 되돌아보고서는(7-12절),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시다고 결론 내리고, 자신은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는 범위에 관하여 고백할 때에도, 다윗은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13-18절). 그러면서 시인은 인간을 모태에 창조하시고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의 신비를 묵상하면서 여기에는 “자연”을 넘어서는 더 큰 신비가 있다고 고백한다. 이는 온 만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인격적이고, 지혜롭고, 사랑으로 가득 찬 역사하심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 많이 알아갈수록, 우리 자신도 더 많이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상태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판단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우리에게 하는 듣기 좋은 말도 마찬가지다. 완전한 영광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면 우리 자신의 실체를 여실히 그리고 때로는 고통스럽게 깨닫게 된다. 바로 그 때 우리는 다윗처럼 부르짖게 될 것이다. “하나님, 나를 샅샅이 살펴보소서!”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을 살펴봐 달라고 요청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또한 자신의 삶을 고쳐 달라고 간청한다.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24절). 잠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친구의 책망은 아파도 진심에서 나온다”(잠 27:6). 듣기 힘들 정도로 아프지만 우리에게 진실을 말해 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바로 이와 같은 의미에서 다윗은 하나님이 가장 좋은 친구가 되신다는 것을 알았다.
바울은 친구이자 제자인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이 우리를 가르칠 뿐 아니라 교훈하고 책망한다고 가르친다(딤후 3:16). “바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마음으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어떻게 하면 바른 사람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나 아니면 불편해 할 때가 많다. 그래서 자기성찰을 직장에서 매년 하는 성과 분석의 영적 버전 정도로 생각하기도 한다.
시편 139편의 아름다움은 자기성찰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 우리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서 우리의 추악한 점을 낱낱이 들춰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대신에 하나님은 당신의 임재 앞에 우리를 초청하신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친구가 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우리 집을 방문할 때마다 우리 가족 모두 긴장한다. 그저 이 친구가 우리 집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 집에 있는 모든 실내 장식이 다르게 느껴진다. 그저 “있는 모습 그대로”의 우리 집이 아니라 “이렇게도 될 수 있는” 집이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1절부터 18절까지 하나님의 충만한 영광의 광채를 경험한 후에 다윗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완전히 다른 관점을 갖게 되었다. 다윗은 자신의 부족한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원하시는 뜻이라는 관점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복음의 아름다움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가장 진실한 친구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좀 더 나은 우리가 되도록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당신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변화시키기 위해 오셨다(갈 4:19). 이것은 영적 교정 수술과 같은 것이다. 그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이 시의 마지막 절에서 다윗이 하나님께 하는 간구는 자신을 인도해 달라는 것이다.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 139:24). 나는 지도를 보거나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는 걸 그렇게 잘하는 편이 아니지만, 아내는 매우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길을 찾을 때마다 매우 기쁜 마음으로 아내의 지시를 따른다.
다윗의 이 마지막 청원은 그가 자신의 삶 속에서 옳은 길이라 생각했지만 고통스러운 실패로 끝난 경험들에서 나온 것임이 확실하다. 비록 위대한 왕이었고 지혜로운 전략가였지만, 다윗도 너무나 자주 어리석은 판단과 결정을 했고, 그로 말미암아 비참한 결과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제 다윗은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간청한다. “제발 나를 인도하소서.” 사실 이것은 경건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그래서 “주님의 의로 나를 인도하소서!”(Lead me, Lord. Lead me in your righteousness)라는 찬송도 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마지막 숨을 내쉴 때까지 누군가의 인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가 진정으로 의지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본성적으로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이 자신의 삶을 살펴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살펴봐 달라고 요청한다. 이러한 다윗의 용기와 확신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다윗이 어려서부터 경험한 하나님의 영광에서 찾을 수 있다. 다윗이 하나님에게서 발견한 가장 영광스러운 것은 하나님이 은혜로우시다는 사실이다. 비록 하나님의 영광이 그의 영혼의 수치를 모두 노출시켰지만,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언제나 그 부끄러운 것들을 씻어 주셨고, 그를 더 좋은 길로 인도해 주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이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났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 또한 그렇게 나타났다. 요한복음 기자 요한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요 1:14).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가 우리에게도 비추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 광채는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씻기는 빛이다. 그 빛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덧입게 될 것이다. [복음기도신문]
“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 많이 알아갈수록, 우리 자신도 더 많이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상태에 대한 우리 자신의 판단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
마크 G. 존스톤 (Mark G. Johnston) | 북아일랜드 리치힐에 있는 Trinity Evangelical Presbyterian Church의 목사. 그는 ‘모든 문화, 모든 세대를 위한 우리의 신조'(Our Creed: For Every Culture and Every Generation)를 비롯하여 여러 권의 책 저술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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