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오피니언] 한국 교회에 바란다

▲ 1인 시위를 통해 예배의 자유를 선포하고 있는 기독교인들. 사진: 필자 제공

정직한 사람의 삶에는 찬양이 흐른다

정직한 사람은 삶에 찬양이 그치지 않는다.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고 내 안에 일하시는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어떻게 행하셨는지 알기에, 그걸 말하거나 노래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자신의 속에 차오른 것은 밖으로 드러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정직한 크리스천의 찬양하는 삶이란 하나님 앞에서 합당하고, 누가 보든 참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그래서 시편 33편은 이렇게 시작한다.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시 33:1)

이런 정직한 사람들은 죄에 대하여 죽은 자이고, 하나님에 대하여 살아있는 자로 여긴다. 당연히 인간관계에서도 건강하고 진실한 태도를 가진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그가 누군지 그의 삶과 행실을 보고 알 수 있다.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는 정직한 사람들이 도대체 다 어디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항간에 떠도는 불미스러운 사건들 속에 교인이 있고, 목사도 자주 등장한다. 입양된 아이가 상상할 수 없는 학대와 폭행을 당해 죽었는데, 그 부모가 목회자 자녀다. 혼외자와 거짓말로 떠들썩했던 사건 속에도 목회자 이름이 나온다. 성경적 가치관을 대적하는 법률 입안자 속에도 버젓이 교회에 다닌다는 국회의원들이 수두룩하다. 반면에 정부가 예배 금지령을 내려도 제대로 강력하게 저항하거나 바른 소리를 내는 교단 지도자들은 별로 없다.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영적 책임보다 사회적 책임을 더 중히 여긴다. 세간의 비난을 하나님의 음성보다 더 두렵게 생각한다. 부끄럽고 심히 통탄할 일이다. 이것이 통계조사 결과 전 국민 20%가 개신교인으로 개신교가 제1의 종교가 되었고, 세계선교 2위 국가이자 인구 대비 선교를 가장 많이 한다는 한국 교회의 현주소다.

진짜 크리스천인가 아니면 종교인인가?

문제가 무엇인가? 크리스천이라도 거듭나지 않았고, 거듭났다 해도 믿음을 계속 지켜내지 못해 주님과의 첫사랑을 잃었기 때문이다. 거듭나지 않는 교인은 종교인에 불과하다. 종교인은 하나님 마음에 관심이 없다. 주님과의 첫사랑을 성령 안에서 유지하지 못하는 크리스천은 성경적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살아갈 능력이 없다. 이런 이들은 아무리 많아도 교회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교회다운 교회가 되지 못한다. 숫자가 많다고 결코 좋은 교회가 못 된다.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인가? 그 교회가 어떤 성도를 가졌느냐에 달렸다. 하나님을 힘써 알아가려 하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에 관심이 없고, 어떻게 성령님과 함께해야 하는지 무지하고, 예수님이 보여주셨던 삶과 죽음의 모범을 따르려 들지 않는 이들은 크리스천이라 할 수 없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엔 준비되지 못한 사람들이다.

한국 교회는 이런 모습에서 돌이켜야 한다. 무엇보다 거듭난 크리스천들이 교회마다 많아지도록 돕고, 젊은이들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도록 필요를 채워주고 양육해야 한다. 이미 교인이 된 이들은 다시 주님 향한 첫사랑을 회복하고 마치 연인과의 첫사랑을 생각하며 일상을 살아가듯 주님만 생각하며 믿음으로 삶을 살아낼 수 있는 제자로 구비시켜야 한다. 크리스천, 즉 제자는 예수님을 바라고 예수님처럼 생각하며 빛이신 예수님을 따라 빛으로 사는 사람이다. 그러자면 한국 교회는 특히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에 대한 진리를 회복해야 한다. 마치 한 번 받은 구원은 타락할 수 없는 영원한 구원인양 믿도록 해, 믿음을 가진 자에게 구원의 열매로써 드러나는 착한 행실을 간과하도록 해서는 안된다.

행위 구원론은 잘못된 것이고 구원은 믿음으로 거저 받는 것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행위에 대해서는 누구나 심판이 있음을 강조하고 반복해 가르침으로 행위심판의식을 가지고 책임감 있게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성령 하나님과 함께 가는 삶의 훈련을 통해 일상이 살아나도록 어려서부터 가르치고 도와야 한다. 성도와의 교제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믿음이 닮아가도록 도와 자연스럽게 하나님 나라의 가치로 무장된 생활양식을 익히고 누림으로써 준비된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지어져 가도록 해야 한다. 한국 교회는 하나님께 묻지 않고 예배방식을 바꾼 죄를 지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간절한 기도가 식고 열정적 예배가 줄었다. 정직한 사람이 적어 세상 가운데 부활의 증인으로 살지 못하고, 오히려 복음을 부끄러워하고 전도하는 일을 두려워한다. 더구나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가장 중요한 순간에 저버렸다. 사회적 요구를 영적 요구에 앞세워 예배를 닫거나 줄였다. 한국 교회가 마치 코로나의 원천인 것처럼 정부와 언론이 선동할 때 맞서 저항하지 못했고, 비겁한 행동을 반복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1만 개 교회가 문을 닫고, 16% 교인이 교회를 떠났다. 혹자는 7개 종단의 조사 결과라 하지만 알만한 사람들은 안다. 7개 종단 중 대부분 개신교의 이야기다. 전도의 문이 닫혔고, 힘겹게 인도한 아직 믿음이 어린 성도들이 전염병에 놀라고 바른 양육을 받지 못해 교회를 떠났다.

그리고 많은 세상 사람들은 물론 심지어 교인들조차 예배에 대해 오해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교회가 힘써 모이지 못하도록 하는 데에는 이름이 알려진 교회 지도자들의 역할이 컸다. ‘이와 같은 때에 이웃을 위해선 현장 예배만을 고수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비대면 예배가 하나님 뜻이다. 온라인으로 연결된 예배가 더 깊이 있는 예배가 되기도 한다. 가족이 함께 드리는 예배라서 더 좋다.’ 교회에서 굳이 모이지 않아도 괜찮다는 인상과 변명과 변호와 신호를 주느라 참 수고들이 많았다.

하나님께는 단 한 차례도 여쭙지 않고 자신들 마음대로 예배하는 불법을 저지르고도 지도자 자신과 자신을 좇는 사람들을 맹인이 맹인을 이끌듯 이끌었다. 이런 일을 보노라면 다른 불을 여호와 앞에 드리다가 죽임당한 제사장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생각난다. 이들의 어이없는 헌신적 언변과 교회 지도자들의 어리석은 판단 덕분에 다시 교회 문이 열려도 오지 않겠다는 사람이 늘어나고만 있다. 가장 위험천만한 태도는 한국 교회가 종교의 자유를 버리고 스스로 종의 멍에를 멨다는 데 있다. 이러한 바울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 5:1)

마스크를 쓰고 하는 대면 예배는 전염이 없다는 방역 당국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감염에 대한 공포에 휘말린 이들은 카페나 식당, 대중교통은 이용할지언정 교회는 비필수기관으로 여기며 멀리하게 되었다. 나아가 성도들조차 하나님 말씀을 받아 전하는 목회자보다 방역 당국이나 언론의 소리를 더 의지하게 되었다. 세상의 비난과 정부의 핍박과 전염병에 대한 무지함에서 오는 두려움을 알고, 한국 교회는 적극적으로 대처했어야 한다. 과학적·의학적 사실을 널리 알리고 대언론·대정부 활동을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지혜롭게 대처했어야 했다.

코로나로 죽은 사람보다 백신으로 죽은 젊은이가 많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살로 죽어가는 청소년과 청년이 과거보다 두 배가 늘었다는 사실은 어떤가? 우울감과 절망감으로 청소년의 절반이 힘들어한다는 소리는 듣고 있는가? 마스크로 인해 친구와 지내는 것이 어려워진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싫어하고, 언어나 정서 교감에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 대해 도울 생각이 있는가? 한참 성장해야 할 아이들에게 열린 공간이나 길은 제공하지 않고 ‘닫아라. 막아라. 숨어라.’라고만 명령하는 방역 당국과 교육청과 정부에 대해 교회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것들을 힘써 지키자

한국 교회는 하나님이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주신 자유와 천부인권을 잊어서는 안된다. 크리스천이라면 세상 끝날 주님 앞에 섰을 때 ‘뭘 하다 왔느냐?’ 물으시는 질문에 대답을 준비해야 한다. 오늘날 수없이 반복하여 하나님 주신 자유와 인권에 대한 도전이 한국 교회와 진실한 크리스천을 피곤하게 괴롭히고 있다. 그러나 기억하자. 주님이 부탁하신 선을 행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인도와 함께하심을 의심해서는 안된다. 한국 교회와 함께하시도록 겸손하지만 간절하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부르자.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자.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딤전 6:11-12). [월드뷰=복음기도신문]

안석문 |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고명정산고등학교와 고명중학교에서 종교 과목을 가르치고, 정릉교회와 예능교회 부목사를 거쳐 2006년 아침 교회를 개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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