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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구 칼럼]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unsplash의 Matthew Meijer

새 찬송가 281장(요나처럼 순종 않고)은 내가 작사한 찬송이다. 나의 시에 대한 최초의 작곡자는 한국의 가곡의 왕이라 할 수 있는 <김동진> 선생님이시다. 김동진 선생님의 선친은 평양 창동교회 담임 목사님이셨던 <김화식> 목사였다. 그는 한국의 스펄전이라 할 수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설교자로서, 당시 지성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목회자요, 당대의 지식인이었다. 특히 김화식 목사님은 한경직 목사의 멘토이기도 했다. 후일 해방되어 <기독교 민주당> 창당을 지휘하다 공산당에게 순교 당했다. 필자가 김화식 목사의 사상과 삶을 내 책에 길게 썼다. 그래서 어느 날 김동진 선생님이 날 찾아와서 “나는 평생 작곡 밖에 못 했는데, 선친에 대한 감사로 목사님께서 노랫말을 만들어주면 작곡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해서 만들어진 것이 찬송이 되었다. 그러나 찬송가에 실릴 때는 이런저런 이유로 가사만 채용되고 곡은 다른 분으로 바꿔져 실렸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노래가 될 수 없고, 세상의 모든 노래가 찬송이 될 수 없다. 더욱이 찬송가는 음악가라고 해서 모두 부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찬송은 중생한 사람만이 부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를 깨닫고,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과 은총을 확실히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음을 고백하며, 성령의 사역으로 성화를 이루어가는 사람만이 찬송할 수 있다. 찬송은 성경에 있는 그대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이다. 아무리 멜로디와 박자가 정확하다 해도 그 영혼이 주님을 향해 있지 아니하면 그것은 그냥 노래이다. 기독교의 핵심인 복음의 뜻도 모르면서 음악적인 기술로만 부르는 것은 그냥 노래이지 찬송이라 할 수 없다. 찬송은 구속의 은혜와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나는 음악을 배운 일이 없다. 상고 출신으로 악보를 잘 읽지도 못한다. 물론 나는 어떤 종류의 악기도 배운 일도 없고, 연주할 수 있는 악기도 없다. 하지만 나는 찬송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아주 우연히 고등학교 시절 노회 주최 찬송가 경연대회에 나가서 1등을 한 적도 있다. 그때 심사 위원장의 평가가 아직도 내 맘에 남아 있다. 그분은 「이 학생의 음성은 천부적으로 찬송 곧 성악을 하기에 가장 적절하다」고 평가해 주었다. 그 칭찬 한마디가 내게는 큰 힘이 되었다. 나는 음악을 배운 일도, 전공한 일도 없지만, 천부적으로 베이스, 바리톤 같은 웅장한 소리를 낼 수 있으며, 발음이 정확하고 영적 감화력이 있다는 평을 자주 들었다. 그 후에 나는 대학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한 후 목사로, 교수로, 학교를 경영하는 총장으로 12년 가까이 역임했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목사로 56년의 세월 동안 수도 없이 대형집회도 많이 해봤고, 전국 목사·장로 기도회, 부활절 연합집회, 8·15광복 집회와 기타 전도 집회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집회에서 메시지를 전했는데, 그때마다 나의 음성이 큰 무기가 되었다. 나는 신학교에서 <설교학>을 배우기 전에 <수사학(Rhetorics)>과 <웅변학>을 배웠다. 그래서 성경을 해석하여 설교하는 것도 청중과 호흡이 맞아야 하고 청중을 사로잡을 줄 알았다. 그래서 필자는 전 세계 전도 집회의 마지막에는 반드시 <찬양>을 불렀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라는 찬송가였다. 바리톤 음성으로 부르면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에게는 복음의 확신과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격과 감사를 체험케 하는 마지막 피날레였다. 미국의 <뉴욕> <볼티모어> <시카고> <뉴저지> <에틀란타> , 캐나다의 <밴쿠버> <토론토>에서, 유럽 전역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헤이그> <암스텔담> <파리>, 남미의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러시아의 <모스크바> <헝가리> <루마니아> 그리고 중국 <북경>에서도 이 찬송으로 마감을 했다. 나는 음악가도 아닐뿐더러 더욱이 성악가도 아니지만, 한 손에 성경을 들고 복음을 뜨겁게 외치면서 마지막에는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나는 본래 병약하고 왜소해서 대중들 앞에 나서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대중들 앞에 서면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너무 뛰어 감당할 수 없었지만, 주님의 은총의 손에 붙들린 다음부터는 한순간에 그런 공포도 사라졌고, 구원의 확신과 능력으로 가슴으로 찬양을, 영혼의 노래로서 찬송할 수 있었다. 물론 음악 전문가가 내 찬송을 들으면 박자가 어떠하고, 멜로디가 어떠하고, 쉼표가 어떠하다고 평가는 하겠지만, 나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목사가 찬송하는 것이므로, 목사가 받은 영감과 은혜로 찬송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성경에서 멀어져 가고 있고, 찬송도 멀어져 가고 있다. 교회는 성경의 진리를 가르치지 아니하고 심리요법으로, 또는 교양강좌 같은 인문학과 경영학에 감염된 설교도 적지 않다. 찬송은 찬양대만 부르고 독창자만 부르는 줄 아는데, 찬송은 구속받은 성도들이라면 다 같이 합창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교회는 가스펠 송에 점령되어 있어서 교회마다 찬송은 점점 부르지 않고 있다. 물론 가스펠 송도 좋은 곡도 많지만, 작사자와 작곡가의 영적 삶의 스토리도 모르고, 일종의 유행가처럼 멜로디와 기교만 가지고 부를 때가 많다. 그마저도 2~3년 지나면 또 다른 새로운 가스펠 송이 나오고, 이전 것은 모두 잊어버린다. 그러니 한국교회는 찬송가의 연속성이 없어지면서, 젊은이들은 아예 찬송을 모르고 가스펠 송 몇 곡 부르다가 어른이 되다 보니, 예배가 지루하고 따분하다고 생각하여 교회를 모두 떠나는 형국이다.

나는 음악을 잘 모르는 목사이지만, 찬송은 영혼의 노래인 줄은 알고 부른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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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구 박사 | 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40여년간 목회자, 설교자로 활동해왔으며, 최근 다양한 국내외 시사를 기독교 세계관으로 조명한 칼럼으로 시대를 깨우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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