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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그리스도인의 시간 독법

사진: Unsplash의 lucas Favre

제가 읽은 제이미(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부릅니다) 스미스의 책 가운데 시간 안에 사는 법은 가장 ‘관조적(contemplative)’입니다.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이렇게 살면 좋겠다, 저렇게 살면 좋겠다라고 행동을 권하는 말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시간을 기억하라’는 등 많은 권유가 이 책에 들어 있습니다. 제가 ‘관조적’이라 말하는 까닭은 인생을 시간의 관점에서 지긋이, 거리를 두고서, 그럼에도 자신의 삶과 관련해 바라보면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미스는 온전한 ‘봄’, 곧 ‘테오리아(theōriā)’를 통해 우주와 하나 되기를 추구한 고대 그리스 전통과 곤고한 때에는 삶을 ’라아(raah)’, 곧 보고 응시하고 생각하기를 권하는 전도서의 전통에 서서 삶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분들은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이렇게 저렇게 저자와 함께 삶을 돌아보면서 이 책을 읽으면 좋겠습니다. 한자리에 앉아, 한꺼번에 읽을 책은 분명히 아닙니다. 읽고 또 읽고, 되돌아가 또 읽으면서 삶을 생각하고, 삶을 돌아보면서 읽어야 할 책입니다.

관조적, 관상적 태도를 가지고 시간 속의 삶을 그려 낸다고 해서 스미스의 입장이 관조적 삶(vita contemplativa)과 활동적 삶(vita activa)을 둘로 완전히 분리해서 마치 관조적 삶이 활동적 삶보다 우위에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스미스가 말하는 시간과 시간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활동하는 일상의 삶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집 짓고, 아이 키우고, 사람들을 만나고, 일하는 삶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스미스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끊임없이 깨우쳐 주고 싶은 삶은 시간 속에서, 시간과 함께, 시간을 따라 변화하는 삶입니다. 시간성이 곧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존재임을, 그리고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삶을 빚어 가는 존재이지만 또한 시간 속에서, 시간을 통하여 빚어져 가는 존재임을 우리가 늘 의식하기를 스미스는 바라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망각과 상실, 상처와 회복, 기대와 소망이 있고, 관조와 묵상, 반성과 분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을 제대로 읽으려면 시간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스미스의 이야기에 우리가 일상에서 겪은 우리 삶의 이야기를 함께 들고 가야 하겠습니다. 

이 책의 구조와 제이미 스미스가 시간과 역사에 관해 보이고 있는 관점을 미리 이해해 두면 읽기에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세 부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묵상으로 나누어집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 11권에서 전개한 시간론이 스미스의 논의에 가장 기본적인 골격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과거는 현재의 기억이고, 미래는 현재의 기대이며, 현재는 현재의 직관이라고 보았습니다.

삶을 한편으로는 짐으로, 무거움으로, 마침내는 모든 것이 안개처럼, 연기처럼 사라지는 허무함을 그려 내면서 그럼에도 다른 한편으로는 누리고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할 선물로 삶을 누려야 한다는 전도서의 메시지가 책 전체에 깔려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이에 끼어 있는 전도서 묵상을 충분히 읽고, 몸과 마음으로 공감하고, 제기된 물음을 기억 속에 담은 채,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묵상을 읽어 가면 적어도 큰 줄기를 놓치지 않고 시간 속에 펼쳐지는 삶을 함께 묵상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시간과 역사를 이야기할 때, 그리스와 그 외 다른 지역 전통은 옛것이 다시 돌아오는 것으로 보는 반면 기독교는 창조에서 종말로 직선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본다고 통상 말합니다. 시간과 역사를 되돌아옴, 곧 순환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모든 일이 반복해서 일어남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요. 필연과 우연과 운명이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니체는 이를 두고 ‘같은 것의 영원한 돌아옴(die ewige Wiederkehr des Gleichen)’, 좀더 옛날 번역어로는 ‘동일자의 영겁회귀’라고 표현했습니다. 같은 것이 영원하게 돌고 돈다는 관점입니다. 여기에는 용서와 은혜가 들어설 자리가 없고 새로움이 없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순환사관을 비판했습니다. 그는 시간과 역사를 하나님의 계획과 창조에서 시작하여 종말과 종말 이후의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으로 보았습니다. 순환사관은 좋은 것은 모두 먼 과거, 오랜 옛적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잃어버린 과거에 대한 향수가 있습니다. 이에 반해 시간과 역사를 앞으로 향해 직선으로 흐른다고 보는 관점에서는 미래가 도달해야 할 시점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것은 미래에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는 미래의 완성을 위해 존재합니다. 

스미스가 이 책에서 보여 주는 관점은 무엇일까요? 큰 틀에서 스미스는 아우구스티누스를 따르고 있습니다. 시간은 미래에서 현재로 와서, 다시 과거로 흘러갑니다. 그러므로 과거는 더 이상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과거는 이미 지나간 현재의 기억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현재의 기대입니다. 스미스는 이러한 시간 이해를 수용합니다. 그러나 섬세하게 들여다보면 역시 아우구스티누스에게도 발견되는 ‘시간의 중첩성’에 대한 의식이 스미스에게서 강하게 나타납니다.

과거에 현재와 미래가 담겨 있고, 현재는 과거를 품고 있고, 미래는 이미 현재 속에 들어 있다는 생각입니다. 시간은 하나님의 창조와 함께 창조되어 앞을 향해 나아가되, 통과한 과거의 시간은 온통 팽개친 채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망각과 기억 속에, 한편으로는 청산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간직한 채, 구르듯이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고 봅니다.

여기에는 시간의 구부러짐, 시간의 안으로의 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과거를 거쳐 오면서 개인이나 공동체가 남긴 유산도 중요하고 미래가 현재의 삶에 미리 들어와 현재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스미스는, 이 가운데서 미래를 성령 하나님 안에서 기대하고 소망하며 과거와 현재를 분별하고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 책은 분명 자기 계발서가 아닙니다. 시간을 어떻게 유용하게 사용할지 가르쳐 주는 시간 사용의 매뉴얼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어떤 정보information를 얻으려고 하는 시도는 (물론 이런저런 정보를 많이 담고 있기는 하나) 이 책을 잘못 읽는 방법일 것입니다. 아니, 이 책은 어떤 방법을 이야기하는 책도 아닙니다. 저자는 시간 안에서 삶을 자신과 함께 관조하고 관상하는 가운데 삶에 변화transformation가 일어나고, 일어난 변화가 한 번의 변화로 그치지 않고 쉬지 않고 삶을 형성formation해 나가기를 원합니다.

이 책은 영적 훈련(spiritual exercise)을 위한 책으로, 영적 형성(spiritual formation)을 위한 읽기로 사용하면 분명히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읽어야 하고, 읽되 생각하면서 읽어야 하고, 물음을 가지고 읽어야 합니다. 자신과 타인, 몸담고 있는 주변 세계와 자연, 낮과 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변화와 변화가 가져오는 색깔들을 응시하며, 그 가운데서 자신과 가족과 친구들과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상상하면서 시간 속에서 펼쳐지는 삶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가지고서 읽어야 합니다. 덧없이 지나가는 삶이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삶을 감사하면서 걸어가는 자신의 모습이 이 가운데서 떠오르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복음기도신문]

강영안 | 현재 서강대 명예교수, 한동대 석좌교수, 미국 칼빈신학대학원 철학신학 초빙교수이다. 철학자의 신학 수업읽는다는 것일상의 철학믿는다는 것강영안 교수의 십계명 강의 등의 저자이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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