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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두려움을 만날 때

사진: Bernd-Dittrich on Unsplash

[선교통신]

철재로 만든 지붕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다. 활개를 치며 뛰어다니는 원숭이 무리 때문이다. 숙소의 지붕이 원숭이들의 놀이터가 된 지는 오래되었다.

마당에 세워진 자가용 지붕도 원숭이들의 놀이터다. 숙소의 창문틀에 달린 원숭이들은 집 안의 사람을 보고 도망가지 않는다. 오히려 집 안의 사람을 동물원의 원숭이 보듯 본다.

당장이라도 창문틀을 부수고 모기장을 찢고 창을 깨고 들어올 기세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원숭이들은 유치원의 아이들을 위협하고 심지어 공격할 때도 있다.

아프리카 시골 마을의 풍경이라고 넘어가기엔 동물은 귀엽다는 강아지조차도 싫어하는 나에게는 너무나 큰 두려움이다. 원숭이 무리가 일으키는 또 다른 문제는 벼룩이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마다 그들이 흘리고 간 벼룩들이 활개를 친다. 벼룩은 원숭이 무리보다 더한 두려움이다. 지난 1월, 선교지에 도착하고 2달을 넘게 벼룩에 시달렸다. 전쟁과도 같은 날이었다.

가끔 지인들에게 벼룩과의 전쟁 소식을 전하면 그들은 감을 잡지 못한다. ‘뛰어봤자 벼룩이지.’라는 반응이다.

뛰어봤자 벼룩이라는 말은 벼룩에게 시달려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만든 말이 분명했다. 오죽하면 벼룩을 잡으려고 집을 태운다는 말이 나왔을까.

하긴 나도 그랬을 것이다. 막연하게 ‘가렵겠다. 약은 있어? 보내줄까? 아차, 아프리카까지 너무 멀다. 기도할게.’ 이러한 말로 위로했을 것이다. 태어나 벼룩에 한 번도 물려보지 않았으니, 벼룩과 전쟁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14년 동안 탄자니아에서 사역하신 현지 선교사님도 살면서 이런 벼룩 떼는 처음 본다고 할 정도로 벼룩 떼들은 심각했다.

오랜 가뭄과 풀과 나무가 많은 시골 마을에 방목해서 키우는 소와 양들과 염소와 당나귀들로 벼룩과는 떼려야 떨어질 수 없는 자연환경이었지만, 애굽의 이 재앙이 이랬을까 싶을 정도였다. 벼룩 떼들은 선교지의 일상을 잠식했다.

사역은 뒷전이었다. ‘선교지에서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복음을 들어야 할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데, 벼룩을 잡고 있어야 하는가?’ 싶겠지만, 맞다. 벼룩을 잡아야 했다.

밖에 한 번 나갔다 올 때마다 온몸에 붙어있는 벼룩을 털어내고 씻어내느라 샤워하고 빨래하느라 다른 일은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선교지에는 물론 세탁기가 없다)

밤이라고 벼룩이 잠을 자는 건 아니었다. 밤새 벼룩에게 물린 곳을 긁느라 잠을 자지 못했다. 질그릇 조각으로 몸을 긁었던 욥의 고통이 이랬을까 싶었다.

천성적으로 습자지만큼 얇고 약한 피부를 가지고 태어난 나는 한번 긁을 때마다 피부가 찢어지고 피가 났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가, 찬양도 했다가, 어떠한 순간에도 감사를 잊지 않게 해달라고도 했다가, 벼룩을 없애달라고 간구도 했다가, 밤 만큼은 잠을 자게 해달라며 울부짖었다가, 이러면 나 다시 한국으로 가겠다. 협박도 했지만 결국 많은 날을 기도할 힘도 없이 울었다.

벼룩 떼에 선교지에서의 포부와 계획들은 빛을 잃어갔다.

내가 이러려고 그 수많은 대가를 지불하고 이곳에 왔나? 자괴감이 들었고 마치 내가 욥이라도 된 것처럼 하나님이 허락하신 마귀의 계략이라며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 위로가 되었던 것은 함께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나만 당하는 고통이 아니었기에 서로의 상처를 위로하면서 견딜 수 있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깨달았다.

선교지에서 중요한 것은 사역이 아닌 사는 것 자체라는 것을.

고통을 해석하고 뜻을 묻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온전히 울고 아파해야 한다는 것을.

하나님이 담아내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마침내 승리하여 영광을 돌릴 수 있으려면 하나님을 부르면서 온전히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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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봄 제공

그렇게 선교지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거짓말처럼 벼룩이 사라졌다. 오랜 가뭄의 끝을 알리는 폭우가 쏟아지면서 대우기를 알리는 시점이었다.

벼룩이 사라지면서 본격적인 사역이 시작되었다.

살을 태울 것 같은 땡볕도, 모래 먼지도, 잦은 정전도, 문제 될 게 없었다. 벼룩이 주었던 고통은 까맣게 잊었다.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며 땅을 위하여 비를 준비하시는” (시 147:8) 하나님의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 (시 147:3) 은혜와 사랑이었다.

고통의 밤이 깊었기에 은혜는 더 빛났다. 그런데 몇 달 만에 다시 벼룩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원숭이 무리와 함께.

분명 고통의 시간 속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또다시 두려움이 몰려왔다. 원숭이 무리까지 두려움이 배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선교지에서만 가능한 두려움이다. 겨우 원숭이 무리와 벼룩 떼가 두려움의 대상이 될 줄 몰랐다. 그러면서 새삼 깨닫는다.

벼룩 한 마리에 어쩌지 못하는 연약한 육신. 원숭이 무리에 어쩌지 못하는 약하디약한 정신. 이것이 아프리카 오지의 마을에 선교사로 온 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그리고 하나님이 나의 이 연약함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선교지에서 가장 우선시 되는 나의 사명은 내가 두려움으로 연약해질 때 그 두려움 가득한 나의 삶 한가운데로 하나님을 소환해 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믿음의 실체로 살아내는 것이었다.

기적은 원숭이 무리와 벼룩 떼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 영혼들과 살아내면서 내 삶의 실체가 된 복음으로 그들을 위로하고 그리스도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전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인생을 통하여 하나님이 무엇을 담아내고자 하는지 알아가며 끝내는 찬양으로 두려움의 실체를 종식해 버리는 것. 그것이 기적.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선교하신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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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봄 | 기록하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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