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때, 일제는 황민화 정책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창씨 개명도 모자라 그들은 모든 조선 사람을 일본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곳곳에 신사를 짓고, 거기에 참배하도록 했다.
일제의 강요로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나,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은 신사에 절하고 일장기에 절을 했다. 특별히 1938년 조선예수교 장로회 총회는 신사참배를 공식 결의했다. 그 이후 한국교회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드디어 일본기독교단 조선교회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일본의 신사참배를 우상숭배로 정죄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예배드리기 위해 힘있게 항거하는 분들이 있었다. 진리를 지키고 신앙의 정조를 지키려는 이분들은 동시에 항일투사들이자, 애국자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본의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순교 당한 분으로, 주기철 목사를 비롯해서 박관준 장로 등 약 50여 명의 순교자들이 나왔다. 이들은 신앙의 정조를 지키고, 하나님과의 약속과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6년 또는 7년을 옥고에서 견디다가 순교의 잔을 마셨다.
그런데 이들 말고도 이기선 목사를 중심으로 한상동, 이인재, 손명복 목사 등 17명은 6년의 옥고를 견디다가 처형을 며칠 앞두고 산 순교자가 되어 출옥하여 해방을 맞았다. 당시 일제의 신사참배의 강요에 맞서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일시적으로 투옥된 사람만 해도 2천 명이 넘었다고 한다.
한국교회는 신사참배에 솔선수범한 그룹과 옥중에서 일본의 신사참배와 황민화에 항거하던 사람들은 해방이 되자 서로가 입장을 달리했다. 일본의 신사참배에 기꺼이 동조했던 사람들도 할 말이 많았고 변명도 많았다. 하지만 끝까지 신앙의 절개를 지킨 분들은, 그쪽 사람들의 철저히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 대하여 “당신들은 동참죄(同參罪)를 지었으니, 우리와 같이 할 수 없다!”고 했다. 동참죄라는 용어가 법전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양심이 있는 분들은 ‘자신의 믿음이 부족해서 동참죄를 지었다’고 솔직히 고백하며 겸허히 질책을 받아들이는 분들도 있었다. 어찌 보면 순교자나 산 순교자들 외에는, 한국 사람 전부가 친일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의 모든 교회들은 예배 전에 국민의례를 했고, 전몰장병을 위한 묵도, 일본의 전승을 위한 기도, 우미유가바를 부르고, 그다음 묵상기도로 예배(?)를 시작했다. 참으로 기가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때 독일에도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독일 기독교 연맹은 살기 위해, 나치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에 아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에 항거하는 교회들은 부페탈에 모여 바르멘 선언(1934)을 채택하고, 독자노선을 지켰다.
또 헝가리 교회도 무신론적 공산주의에 야합하고 있었는데, 이에 항거하기 위한 지하교회는 신앙의 정조를 지키고 있었다. 중국도 국가 공인 삼자교회가 공산당에 협조하는 교회가 되자, 6천~1억 개 정도의 가정교회 또는 처소교회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리스의 정치가요, 웅변가인 데모스테네스(Demosthenes)는 “침묵은 금의 가치가 있으나, 웅변은 은처럼 가치가 있다”고 했다. 그 시절은 은이 금보다 비싼 시대였다. 그 후 토마스 칼라일은,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라고 했다.
요즘 우리나라는 흔히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된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세상이 뒤집어져 가고 있는데도 입조심, 말조심, 몸조심하면서 아무것도 안하고,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세상 돌아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대한민국의 사람들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서울 한복판에 간첩과 북한 지령의 현수막이 나부끼고, 종북 피켓이 수없이 도배되고 있는데도, 신문과 방송은 오히려 부채질하고, 경찰은 있으나 마나 하고, 말리는 사람도 없다.
2년 전 모 방송국의 음악 프로그램이 배경에 북한의 인공기를 생각나게 하는 것을 1시간가량 띄운 적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캡처해서 방송국에 항의했으나, 전화를 받은 직원이 하는 말이 “윗선에서 알아보겠습니다.”라고 전화를 끊었다.
정말 침묵이 금이던가? 가만있으면 중간이라도 가는 것에 안주할 것인지…
침묵은 금이 아니라 오히려 독이다. 중국과 북한 간첩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녀도, 아무렇지 않는 백성이 오늘의 대한민국 사람들이다. 내년이면 총선이 있다. 그래서 국회의원들은 이른바 <중도>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중도가 문제다. 즉 그들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하는 사이에 나라가 점점 기울어져 가고 있다.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대통령의 말이 기억난다. 그는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도덕적 위기의 순간에 <중립>을 지키는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고 했다.
참으로 명연설이다. 지금의 대한민국 국민은 애국도 없고, 조국도 없어졌다. 모두가 개인주의가 되어 나만 손해 안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설마 우리나라가 공산화가 되겠는가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당시 월남도 월맹의 간첩 때문에 나라가 망가졌다.
군대 안에도, 국회 안에도 간첩이 있다는 말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지난 십수 년 동안 자유민주주의를 비웃고, 한·미동맹을 욕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휩쓸고 있다. 또 대한민국이 망하기를 기원하는 자들이 설치고 있다. 정부를 도와도 시원찮을 판에 정부에 위해를 입히려는 사람들은 혹시 딴마음을 가진 분이 아닐는지 생각해 본다.
불의를 보고도 말하지 않는 목회자들은, 후일 자칫 동참죄(同參罪)로 몰리지 않을까 심히 염려된다. [복음기도신문]
정성구 박사 | 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40여년간 목회자, 설교자로 활동해왔으며, 최근 다양한 국내외 시사를 기독교 세계관으로 조명한 칼럼으로 시대를 깨우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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