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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진짜 기독교는 싸움이다

▲ 출처 : davidservant.com 캡처

하나님과 화평하게 하는 복음이 가져다주는 것은 죄와 벌이는 치열한 싸움이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두 가지 큰 특징이 있다.” 라일(J. C. Ryle)은 고전 거룩에서 이렇게 썼다. 당신이라면 그 두 가지를 뭐라고 썼겠는가? 

믿음과 회개? 사랑과 소망? 찬양과 감사? 겸손과 기쁨? 라일의 책을 읽기 전이었다면, 나도 내가 무엇을 꼽았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내가 결코 라일이 꼽은 두 가지를 생각하지는 못했을 거라는 점이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두 가지 큰 특징이 있다. … 그 사람에게 있는 내면의 평화로 그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그의 내면의 싸움으로도 그를 알 수 있다(72).

전쟁과 평화. 전투와 휴식. 군대 간 충돌과 조약이 가져다주는 평온.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런 두 가지보다 훨씬 더 많은 특징을 가지면 가졌지 결코 더 적지는 않다. 그리스도인은 아버지의 집에서 행복을 누리는 어린아이인 동시에 구주의 전쟁에 참전한 군인이다. 

라일의 이 문장은 우리를 절망에서 구하는 데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할 것이다. 

전쟁터 한가운데 떨어지다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내가 전쟁터에 들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처음엔 낙하산을 타고 구원의 영광 위로 살포시 내리는 것처럼 황홀함을 느꼈다. 마침내 깨어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고, 죄로부터 안전해졌으며, 무엇보다 나는 천국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착륙한 곳은 내가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치열한 싸움터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갈등은 언제나 내 안에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고 느낀 내적 분열은 차원이 달랐다. 몇 달 동안 평화의 땅처럼 느껴졌던 내 영혼이 전쟁터가 되었다. 참호를 팠고 전선이 그어졌다. 나는 과거에 한 번도 직면한 적이 없는 의심에 시달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성경이 참되다는 것을 어떻게 알지? 하나님이 실재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알지? 게다가 죄를 죽이면 죽일수록 더 많은 죄가 내 속에서 고개를 쳐들었다. 이리저리 마구 얽힌 육체의 숲 사이를 기어 다니는 교묘하고 위장된 죄, 자기 아첨이라는 환상, 다른 사람을 향한 반사적인 정죄와 판단, 제멋대로이고 때로는 사악하기까지 한 생각,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변덕스러운 감정. 예수님 안에서 어느 정도의 평화를 누린 건 사실이지만, 그런 평화조차 마치 적에게 포위당한 것처럼 느껴졌다.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런 식의 흑암과 깊은 분열에 직면하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결국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나처럼 영적 곤경에 처한 사람이라면 결코 그분께 속했을 리 없다는 생각에, 한동안 나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기독교 싸움

바로 그때에 라일을 만났다. 간단하지만 적절하기 이를 데 없는 “싸움”(The Fight)이라는 제목의 장에서 그는 나를 압도하는 강렬한 논증을 바탕으로 “진정한 기독교는 싸움이다”(66)라고, 그리고 모든 성자는 하나같이 군인이었다고 말했다. “은혜가 있는 곳에 싸움이 있다”라고 그는 참으로 남자다운 단호함으로 썼다. “싸움이 없이는 거룩함도 없다. 구원받은 영혼은 항상 자신이 싸움터 한 가운데에 있다는 것을 알기 마련이다”(70).

일련의 성경 본문이 뒤따랐다. 어느 정도 수준에서야 다 아는 구절이었지만, 또 다른 수준에서는 전혀 모르던 말씀이었다. 

  •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딤전 6:12).
  •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 8:13골 3:5).
  •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엡 6:11).
  •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 2:11).
  • “깨어 기도하라”(마 26:41).
  •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2:3).
  • “선한 싸움을 싸우며”(딤전 1:18).

하나님과 화평하게 하는 복음이 가져다주는 것은 죄와 벌이는 치열한 싸움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다”라는 말은 “죄는 나의 주인이 아니다”라는 것과 같은 말이고, 따라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마귀를 향한 반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위로로 우리를 감싸시는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히신다. 

라일의 글은 나를 묘한 위로로 채웠다. 몇 달 동안 나는 마치 전투에 뛰어든 민간인처럼 느꼈다. 그러나 이제는 제대로 전선에 배치된 군인처럼 느낀다. 내 전쟁은 당연한 것이었고, 진짜 중요한 것은 이게 꼭 싸워야 하는 좋은 전쟁이라는 사실이다. 

전쟁은 정상이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라는 말씀이 사실이라면, 그리스도인에게 내면이 분열되어 갈라지고 또 찢어지는 듯 느끼는 것보다 더 정상적인 것은 없다. 라일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안에 두 가지 원칙이 있으며 각각이 나를 지배하기 위해서 지금도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72). 우리가 영과 육을 모두 가지고 있는 한, 전쟁은 정상이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 순간에조차 모락모락 피어나는 유혹, 기도하고 싶지 않다는 끔찍할 정도로 강한 충동을 만날 때 놀라지 말아야 한다. 거부해야 함을 알고 있는 음식, 수면, 음료, 섹스, 그리고 오락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고통스러운 욕망이 솟아날 때도 놀라지 말아야 한다. 가족에게 복음을 나누라는 성령님의 강한 명령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얼마든지 영적 나태함에 빠질 수 있다. 아침에 충만하던 영적 충만함이 오후가 되면 어느새 사라져버리는 변덕스러운 영적 건망증도 만난다. 그리고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보다 나 자신의 이해에 더 의존하려는 충동적인 강박도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

적의 포격에 놀라는 군인이 없듯이 우리는 이런 때에 놀라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용기를 내야 한다. 라일은 말한다. “우리는 결코 사탄의 친구가 아니다. 이 세상의 왕들처럼, 사탄도 자신을 추종하는 자들과는 결코 전투를 벌이지 않는다”(72). 내적 분열과 반발심은 결코 우리가 사탄과의 전투에서 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단지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할 뿐이다. 

선한 싸움

그리스도인의 싸움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알려진 전쟁이다. 라일은 이렇게 썼다. “기독교의 싸움은 선한 싸움, 정말로 선한 싸움, 뭐라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싸움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자”(80). 그렇다. 치열한 전쟁이다. 우리는 전투에서 부상당하고 피를 흘리기도 한다. 바닥에 떨어졌을 때는 절망의 유혹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싸우는 그리스도인의 싸움이 얼마나 선한 것인가? 

정말 좋다. 하나님께서 원수들을 밟으실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미 7:19). 정말로 좋다. 가장 힘든 전투를 만날 때면 하나님이 우리를 더 강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사 41:10). 진짜로 좋다. 넘어지는 사람조차 예외 없이 다 용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요일 1:9). 좋은 전쟁이다. 우리가 죽이는 건 사람이 아니라 오로지 죄와 마귀이다(롬 8:13). 너무나도 좋다. 이 전쟁으로 인해 우리의 인간성은 파괴되는 게 아니라 회복되기 때문이다(골 3:59-10).

무엇보다도 특히 좋은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아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해 싸우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를 살리셨고, 결코 우리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한 위대한 대장이자 전우이시다(마 28:20). 라일은 이렇게 묻는다. “믿음의 군인으로 살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 있는 한 하루도 빠지지 말고 그리스도를 굳게 붙들어야 한다”(76).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도 “그리스도가 더 낫다”는 깃발을 높이 들고 행진한다. 어떤 일을 만나도 놀라지 않고 낙담하지 않으면, 우리 안에 그리스도를 닮지 않은 모든 사악한 것을 향해 우리는 칼을 휘두른다. 그리스도인의 “두 가지 큰 특징”이 하나가 되고, 마침내 전쟁이 예수님이 주시는 영원한 평화에 의해 사라지는 날을 바라보며 우리는 오늘도 전진한다. [복음기도신문]

기독교의 싸움은 선한 싸움, 정말로 선한 싸움, 뭐라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싸움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자

스콧 허바드 Scott Hubbard | Desiring God의 에디터, All Peoples Church의 목사이다. Bethlehem College & Seminary를 졸업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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