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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통신] 호텔에서 벗어나다

▲ 아파트 창문 앞에 서 있는 소나무. 사진: 김태한 선교사 제공

우크라이나 리포트 (18)

지낼 곳이 마땅치 않아 호텔에 머물렀다. 아침식사까지 해결해 주는 간편함도 있었고 다른 여지가 없었다. 작은 국경도시 수체아바(Sucheava)에 우크라이나 난민들, 여러 나라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이 일시에 몰려들었으니. 아파트나 집을 구하기 힘들었다.

장기숙박의 문제들. 빨래감. 속옷이나 양말 정도는 손빨래로 해결할 수 있지만 문제는 옷들이었다. 현지 형제에게 빨래를 부탁했고 기꺼이 들어주었다. 하지만 매번 부탁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음식이다. 아침은 호텔 조식, 점심은 난민센터에서, 저녁은 시내에서 해결했는데 이런 생활이 길어지니 끼니 때마다 힘들었다. 무엇을 먹어도 속이 불편했고 비용도 부담이 되었다. 마침내 한 형제의 도움으로 아파트를 얻었다. 호텔 바로 건너편 작은 아파트. 방과 거실, 작은 부엌이 있다.

아파트를 얻자마자 먼저 밀렸던 빨래를 돌렸다. 키이우 집에서 사용하던 세제를 넣고 빨아 널어놓으니 우리 집에 온 듯한 냄새가 좋다. 마트에서 쌀과 냄비를 사서 가스불에 밥을 했다. 김이 올라오는 흰 쌀밥에 그 동안 갖고 다녔던 쌈장을 올려 먹었다. 먹고 나니 살 것 같다. 역시 한국 사람은 밥을 먹어야 하는 법. 아침에 눈을 뜨면 난민이 있는 센터와 국경으로 나갔고 그들과 시간을 보냈다. 몇 주간 동안 만난 난민의 수가 19년간 우크라이나에서 만난 사람보다 많은 것 같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지난 주부터 피로가 느껴졌다. 루마니아는 부활절을 전후로 긴 휴일이 이어진다. 며칠 간 계속 잠을 잤더니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냐고 묻는다. 며칠 전에 아파트를 얻었다는 말로 대답을 가름한다. 잘 모르겠다. 한국 본교회에서 들어오라고 장로님들이 말씀하신다. 담임 목사님 자리가 공석이라 파송 선교사가 해야 할 일도 있음직하다. 하지만 여기를 떠나지 못하겠다. 국경을 넘은 난민을 향한 애처로움 때문인지, 키이우 집과 교회에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 도움이 절실한 우크라이나의 친구들 때문인지. 이유를 들라면 이들 중 하나겠지만 어느 것 하나 딱히 맞는 것도 없다.

배워간다. 삶은 머물 곳 없는 나그네라는 사실. 주어진 시간, 머무는 곳에서 해야 할 일을 찾고 충실해야 한다는 평범을 새긴다. 전쟁이 두 달을 넘어간다. 평소 두 달은 짧은 기간이지만 이곳에서 두 달은 무언가를 기다리는 길고 긴 시간이었다. 사무엘 베케트의 두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도 한없이 ‘고도’를 기다렸다. 사실 그들은 고도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무엇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시간의 축적, 그 과정이 더 중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인생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서성이며 기다리는 시간도 소중한 순간이고, 작은 기억의 편린들 조차 모아야 할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세탁기를 돌리고 집밥을 먹을 수 있어 행복하다. <끝> [복음기도신문]

김태한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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