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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명절에 만난 가족 간 갈등 해소법

출처: Tyler Nix on Unsplash

17세기 정치철학자인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는 시민 사회가 없다면 인간 세상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될 것이라 했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이 명절 가족 친지 모임 때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경험한다.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기도 전에, 선물 상자들을 열어보기도 전에, 우리는 옥신각신하며 부모/형제들과 상처를 주고받는다.

최초의 인간 갈등이 가족 내 갈등이었음을 생각할 때 이는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아담이 자신의 불순종에 대해 아내인 하와를 비난한 것을 시작으로(창 3:12), 그들의 두 아들 중 첫째가 둘째를 살해했으며(창 4:8), 이는 결국 성경에 나온 대부분의 등장 인물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심지어 예수께서도 가족 내 갈등에 휘말리셨던 적이 있으셨다(막 3:21).

리차드 프랫(Richard Pratt Jr.)은 “창세기 초반부는 오늘날 가정생활이 거의 모든 면에서 망가져 있는 이유가 인류 최초의 부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때문임을 보여준다”라고 말한다. “누군가 우리 가정을 공격하기 때문에 우리 가정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모든 가정은 그 시작일로부터 이미 깨어져 있다.”

같은 공간에서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온 이들이 계속 부대껴야 하는 상황이라면 죄의 속성을 가진 우리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녀들이 자기 친구들보다 자신의 형제자매와 더 많이 싸우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연구자인 사만다 펀치(Samantha Punch)는 형제자매 관계란 어떤 일이 있어도 끊어지지 않는 것임을 지적하면서, “형제자매 관계는 인간관계가 어디까지 악화될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는 곳이다”라고 한다. 펀치에 의하면, 이 관계 안에서 “분노와 짜증은 여과 없이 표출되고 친절과 인내는 등한시된다.”

연구에 의하면 3세에서 7세 사이의 형제자매가 함께 있을 경우 한 시간에 평균 3.5회 싸움이 일어난다고 한다. 싸우는 시간을 합하면 평균적으로 시간당 10분이다. 그러므로 하루 열두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경우 어린 자녀들은 평균 두 시간을 싸우는 셈이다. 안타깝게도 나이가 든다고 해서 이런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성인 형제자매들 역시, 함께 거주하거나 부모와 함께 살지 않는 경우 갈등과 대립적 경쟁을 경험한다고 한다. The Atlantic 기사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이러한 갈등 양상은 형제자매의 연령차가 적은 경우, 또한 동성(同性)일 경우 더욱 두드러진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그렇기에 가족 내 갈등을 다루는 가장 중요한 첫 번째 단계는 우리 모두 죄인이고 이로 인해 우리의 가정이 깨어져 있는 상태에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상기하는 것이다. 가족 구성원 간 갈등 해결을 위한 가장 중요한 도구는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당신과 당신 가족을 향한 그의 명령을 깨닫기 위해 계속하여 말씀을 상고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명절에 가족 간 갈등을 지혜롭게 다루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요한 원칙들이 있다.

당신의 역할을 알아야 한다

갈등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족 내에서의 역할을 파괴하거나 회피하려 할 때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남편과 아버지(엡 5:25–33; 골 3:19, 21; 벧전 3:7), 아내와 어머니(엡 5:22–24; 골 3:18; 벧전 3:1–6), 그리고 자녀(엡 6:1–3; 골 3:20)의 의무를 잘 이해해야 한다.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고, 하나님이 주신 명령에 헌신적으로 순종하라.

자녀가 있는 경우 이는 더욱 중요하다. 당신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자녀도 그 길을 따를 것이다.

교제의 의무

우리는 보통 “교제”라는 말을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의 회합을 뜻하는 일상적인 의미로 이해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피상적인 수준에서 사람들과 교제한다. 하지만 신약에서 이 용어는 더욱 풍성한 의미가 있다. 이는 우리 기독교 가정 안에서의 교제에 적용될 수 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사귐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도 사귐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한다(요일 1:3). 당신 가족들도 신자라면 가족 내의 관계는 단순히 가족적 유대뿐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의해서도 이어져 있는 것이다. 누군가의 아들이요 딸일 수 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그들의 형제요 자매이다. 이는 가족 구성원과의 갈등 문제에 접근할 때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믿지 않는 가족 구성원이 이를 지켜보고 있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갈등 상황에 휩쓸려 들어갔을 때, 우리는 이것을 가족 구성원 대 가족 구성원으로 풀어야 할 문제인지, 아니면 신자 대 신자로 다루어야 할 문제인지 판단해야 한다. 다시 말해 부자 관계나 손위/손아래 형제 관계처럼 가족 내의 위계질서의 관점에서 갈등을 해결하고자 하는가, 아니면 가족 밖의 다른 신자들과의 관계에서처럼 좀 더 동등한 상태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가 하는 것을 판단해야 한다. 가족 관계와 신자 간 관계는 결코 배타적 관계가 아니다. 이 두 관계는 어떤 경우에는 겹치기 때문에 어떤 관계를 적용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단순히 가족 구성원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 신자를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갈등 상황에 대해 좀 더 선명한 관점을 얻을 수 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

갈등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목표는 바울이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롬 12:18)고 말한 것처럼 서로 화목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는 것인데, 이는 내가 가진 힘과 권위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폭력 사태가 발생했을 때 예수께서는 그저 그 자리를 피하셨다(눅 4:28–30). 자신에게 위력을 행사한 이가 누구이든 예수께서는 그를 힘으로 제압하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기로 하셨기에 사람들과의 대결을 피하셨다.

불필요한 갈등을 피한다는 것은 다른 이들의 잘못을 그냥 받아들이거나 넘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사소한 모욕과 무례를 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저 용서해버리는 것이다. 잠언 기자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 19:11)라고 말한다.

하지만 용서할 수 없고 피할 수도 없는 갈등 역시 존재한다. 갈등을 피하기 위해 학대를 참거나 다른 이들을 학대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삶에서 승리를 쟁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체로 인간관계의 갈등에서 지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복음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끝없고 피할 수 없는 전장에서 우리를 자유케 한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소식이다. 우리는 다른 이들, 우리 자신, 그리고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받았다. 하지만 이것이 갈등 없는 삶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전(前) 대통령은 언젠가 “평화는 갈등의 부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적인 방법으로 갈등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삶이 갈등으로부터 완전하게 해방되게 하신 것이 아니다. 적어도 이 땅에서 사는 동안은 말이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러한 갈등을 평화적으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다.

Joe Carter | 조 카터는 미국 TGC의 에디터로 NIV Lifehacks Bible의 에디터이기도 하다.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위치한 McLean Bible Church의 행정목사로 섬기고 있으며, 저서로는 ‘The Life and Faith Field Guide for Parents’가 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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