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GTK 칼럼] 순종하는 아내

사진: Marc A. Sporys on Unsplash

올해 초에 마크 오덴(Mark Oden) 목사님이 영국 남동부에 있는 그의 교회 회중에게 한 설교가 큰 논쟁을 일으켰다. 그의 설교 제목은 “결혼과 여성들”이었는데 그 회중에 있는 아내들에게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호소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 결과 성난 아내들이 그들의 남편들과 함께 그 교회에 다시는 출석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한 여성 참석자는 “21세기에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나?”고 하며, 그 설교에 분개했고 화가 났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은 “이 무슨 케케 묵은 중세시대의 설교인가!”라고 빈정거렸다. 결혼해서 자녀가 셋이 있는 오덴 목사님은 “나는 사람들이 건강한 결혼 생활을 하도록 열심히 도우려고 한다. 나는 사람들을 괜히 성나게 하려고 말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께서 그 분의 말씀인 성경에 말씀하신 것을 지킨다.”라고 응답했다. 진리를 알리려는 용기와 더불어서 건강한 결혼생활을 장려하려는 이 목사의 열심은, 슬프게도, 이 시대에 많은 교회에서 찾아보기 드물다. 그러나 청중들의 반응은 찾아보기 힘들지 않다.

2010년 7월판 “순례자(Sojourners)”란 잡지에, 여권 신장론 학자인 앤 에게브로튼(Anne Eggebroten)이 “가부장제를 고집함”이란 기사를 썼다. 그 기사는 그녀가 최근에 미국 캘리포니아주 선 밸리에 있는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Grace Community Church)를 방문했던 이야기를 기술한 것이다. 그녀는 존 맥아더 목사의 설교를 좋아했고, 기꺼이 그녀를 만나고 환영하는 교회 멤버들의 친절함을 칭찬하기까지 했다. 그녀가 싫었던 점은 가정과 교회에서의 여성의 역할에 대한 그 교회의 견해였다. 그녀는 분개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고, 그레이스 교회를 묘사하기를 “하나님은 남성이고, 모든 목사와 집사들과 장로들은 남자이다. 그리고 여성들은 남자에게 복종하며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의 기사가 이어지면서, 그녀는 가정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슬프고 낙담한 여인들을 찾아보기 위하여 그레이스 교회를 방문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녀는 엉뚱한 곳을 찾아왔다는 것을 그녀의 기사가 증명한다. 새 신자를 환영하는 곳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남편에게 복종하며 살아가는 아내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에, 그녀는 필사적으로 교회를 빠져나오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느끼게 말했다. 그녀는 말하기를 “이제 여기서 나가야겠다고 나 자신에게 말했다. 나는 통렬히 비난하고 싶었고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은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다른 자유주의 여권 신장론자인 “성경학자들”이 “그 교회가 성 바울의 진정한 의도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격렬한 공격을 인용하며 그녀의 글을 마쳤다.

현재 이뤄지는 수많은 다른 예들을 들 수 있다. 이 모든 예는 모두 같은 문제를 드러낸다. 그것은 우리들의 타락한 문화는 가정에서의 권위와 복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회는 수 세기 동안 하나님도 없고, 그리스도도 없고, 비 성경적인 삶의 철학들로 희생되어왔다. 그리고 이것은 사탄에 의해 더욱 탄력을 받아왔다.

현시대에 우리가 보는 풍조들은 프랑스 혁명을 일으켰던 철학과 같은 것이다. 이 철학은 삶을 인본주의적이고 평등주의적으로 보는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완전하게 동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계급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인본주의적인 실존을 믿었다. 이 무신론적인 생각이 오늘날의 서구 문명을 지배한다. 이들에게는 성별의 구분도, 구별도, 권위도, 복종과 겸손도 없다. 그리고 많은 교회들이 이러한 철학을 거부하기보다는, 현세대의 거짓말의 먹이가 되어 이러한 풍조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삶과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보고도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라고 외치는 시편 2편의 성난 무리들 같이 하나님이 없는 사회 한 가운데에 살고 있다. 세상은 가정과 여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위협으로 생각한다. 앤 에게브로튼과 그녀의 자유주의적인 친구들처럼 세상은 하나님의 계획을 모두 다 폐지시키고 새롭게 정의하려고 한다.

하나님께서 가정에서 여성들의 임무를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에베소서를 통해서 알아보자. 이것이 이 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뭐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가정을 창조하셨고, 여성을 만드셨으며, 가정에서 그녀의 역할을 세우셨고, 가정에서 그녀가 어떤 관계들을 맺을지를 정하신 것이 사실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설계하신 분이라면, 우리는 그분의 계획을 고수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바울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한 후에(엡 5:21), 이어서 중요한 질문에 답한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가장의 지위와 권위의 역할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동시에 가족 간에 서로 복종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답하고 있다. 에베소서 5장 22절은 이를 설명하고 있다. 복종이 참으로 성령 충만한 사람의 성품을 요약해서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바울이 복종의 개념을 말하고 있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리고 나서 그는 어떻게 가족 간에 피차 복종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한다.

에베소서 5장 22절에서 시작하여 6장 4절까지 보면 가정생활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이 있다. 물론 그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기록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은 사도의 개인적인 소견이 아니다(벧후 1:12-21). 하나님께서 손수 그 책의 말씀 하나하나와 더불어 그 순서까지도 감동 시키신 것이다. 여기에서 바울은 아내들에게 먼저 말했고, 그리고 남편들에게 말했다. 또 자녀에게 먼저 말하고 나서 부모들에게 말했다.

아내들에게 하는 권고는 세 구절에 걸쳐서 간단하게 적혀 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엡 5:22-24)

이 구절에 있는 몇 개의 중요한 요점들을 알아보자.

첫째, 22절에 “복종(submit)”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 원본에는 실제로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믿는 사람들은 피차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21절의 명령으로부터 이 뜻이 분명하게 22절에 함축되어 있다. 우리들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아내들이 따로 분류되어서 2류의 저급한 신분으로 전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정에서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복종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22절은 아내들이 어떻게 복종하는 것이 당연한지를 실제적으로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둘째, 바울이 이 짧은 세 구절을 아내들이 누구에게 복종해야 하는지를 자세히 설명함으로써 시작하고 끝맺는 것을 주목하라.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한다(22, 24절). 여성들은 일반 남자들에게 노예가 되라고 창조된 무리들이 아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남자들은 자동적으로 모든 여성들 위에서 지배하는 계급으로 승격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은 모든 아내들은 특히 자신의 남편의 머리 됨에 복종하라고 명하신다. 다른 말로 말하자면, 가정이야말로 경건한 여인이 21절에서 하신 말씀에 따라 겸손한 태도와 섬김과 희생을 실천하고 계발시키는 가장 우선적인 장소이다.

셋째, 이 명령은 일반적이면서 결정적이다. 자신의 할 일을 잘하는 남편이 있는 아내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씀은 자녀들이 있는 아내들, 교회 지도자들의 아내들 또는 남편이 성실한 교인인 아내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씀은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이다. 모든 아내들에게 적용된다. 아내라는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남편에게 복종함으로써 이 구절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이 명령은 확실하게 무엇을 명령하는가? “복종(submit)”에 사용된 그리스어 단어 hupotasso는 “아래에 서다”를 뜻한다.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낮은 위치에 두는 것을 뜻하는데, 그러나 열등하기 때문에 낮은 위치에 두는 것을 뜻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또 아내를 집안이나 결혼생활에서 종속적인 2류 신분으로 낮추는 것이 아니다. 기능적인 서열을 말하는 것이지 본질적으로 열등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복종(submit)이라는 단어는 순종(obey)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남편의 훌륭한 열망과 포부에 적극적으로, 신중하게, 사랑으로, 지적으로 헌신하는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남편의 모든 변덕에 눈먼 아첨을 하거나 노예처럼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순종(obey)에 사용된 그리스어는 hupakouo이다. 바울이 이 단어는 에베소서 6장 1절에 자녀들에게 명령할 때와 6장 5절에 종에게 명령할 때에 사용하였다. 아내는 자녀가 아니고,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명령을 내리는 남편을 시중드는 종도 아니다(“리모트 컨트롤 집어줘!” “마실 것 좀 줘!” “간식 갖고 와!” “슬리퍼를 갖고 와!”). 결혼 생활은 이런 것들보다 훨씬 더 인격적이고 밀접한 관계이다. 이것은 한뜻으로 합치는 것이며, 동반자의 관계이며, 유일하게 상호 헌신하는 것이다. 이 진리는 “자기 남편”이라는 단어로 더욱 강조되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내들을 위하여 직접 제정하신 역할이다. 창세기 3장 16절에 하나님께서 이브에게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고 하셨다. 한편, 결혼은 두 사람이 한 몸이 되는 완전한 결합이다(창 2:24). 또 한편, 하나님께서 분명히 이 관계에서 남편이 머리가 되도록 제정하셨다. 잘 화합되고 잘 운영되기 위하여, 여자는 자기 남편의 리더십에 복종해야 한다. 그러나 노예로서가 아니고 자기 남편에 의해 보호받고 돌봄을 받으며 부양받는 자로서 복종하는 것이다. 남편이 아내를 위하여 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과 아내가 남편을 위하여 무엇을 하는 것은 결코 상관이 없다.

자연 세계조차도 올바른 질서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남자는 신체적으로 감정적으로 훨씬 더 강하고 우월하다. 반면에 여자는 일반적으로 더 부드럽고 다정한 정신력과 성품이 있어서 자기 남편을 돕는 배필로서 남편을 격려하고 후원할 수 있다.

골로새서 3장 18절에도 바울이 아내들에게 자기 남편들에게 복종하라고 가르치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그 구절에는 이 명령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를 밝히 알려 주는 짧은 구절을 더 첨가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마땅하다”라고 번역된 단어는 “적당한, 옳은, 예절에 맞는”이란 뜻이 있다. 일반적으로 이것은 법적으로 혹은 도덕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것을 말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바울은 남편의 머리 됨과 아내의 복종이 실질적으로 모든 인간 사회에서 인정되는 법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분명히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회에서 인정되었으며, 바울의 시대에도 인정되었던 것이 확실한 사실이었다.) 바울은 이것이 하나님의 질서이기 때문에 “마땅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그리고 인류 문화의 역사를 통하여서도 그렇게 되어 왔던 것을 상기시켰다.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라는 표현은 남편의 머리 됨의 타당성을 아주 강하게 나타낸다.

성경 말씀은 명확하고 일관성이 있다. 성경이 아내의 역할에 대하여 말할 때, 항상 이와 똑 같은 것을 강조한다. 몇몇 사람이 이것은 사도 바울의 맹목적이고 극단적인 개인적인 의견이 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다. 또한 이것은 성경에 모호하게 암시되어 있는 분명하지 않은 원리도 아니다. 그리고 아내의 역할에 대해 말하고 있는 모든 구절들은 모두 다 본질적으로 똑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벧전 3:1-2, 딛2:3-5).

물론, 모든 남편들이 자기 아내들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듯이 사랑한다면(엡 5:25), 아내의 역할을 성경적으로 가르치는 것에 대해 반대가 덜할 것으로 추측한다. 그러나 일부 남편들이 아내들이 기쁘게 복종하는 그리스도의 본을 받은 머리 됨을 보여 주기보다는, 게으른 폭군처럼 행동한다. 불신앙, 화, 냉정함, 학대, 조롱, 게으름과 같은 죄 된 태도들이 많은 아내들로 하여금 복종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이의를 제기하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깜짝 놀랄 만큼 분명하게 답한다. 다음 글에 그 문제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그동안 다음에 대해 생각해 보기 바란다. 과연, 무엇이 아내들로 하여금 자기 남편들에게 복종하는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게 방해하는가?

** 복종: 남의 명령, 요구, 의지 등에 그대로 따름—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다

** 순종: 순순히 복종함—선생님의 말씀에 순종하다

여기에 사용된 “복종”은 submit를 번역한 것이다.

http://www.gty.org/Blog/B100825에 가면 원문을 볼 수 있다.

존 맥아더 (John MacArthurn)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내 손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출처를 기재하고 사용하세요.> 제보 및 문의:   

Print Friendly, PDF & Email

관련 기사

20241117_KJI_Column
[김종일 칼럼] 모든 무슬림 형제자매에게 보내는 복음편지(16): 기독교에 대해 궁금해할 핵심 질문 6가지
20241115_GTK
[GTK 칼럼] 우울증(2)
glasses-see-241115-unsplash
[TGC 칼럼]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에서 죄를 보자
20241112_Calvin
[정성구 칼럼] 불신앙과 프랑스 혁명

최신기사

엠폭스 변종, 콩민공과 부룬디 어린이에 빠르게 확산
[오늘의 한반도] 청년들 비혼 출산 긍정 인식 확산... 20대 42.8%, 10대 44.2% 외 (11/18)
[오늘의 열방] “성경 읽는 사람, 외로움 덜 느껴” 외 (11/18)
[김종일 칼럼] 모든 무슬림 형제자매에게 보내는 복음편지(16): 기독교에 대해 궁금해할 핵심 질문 6가지
‘시편 150 프로젝트’, 시편 창작곡 공모
“청소년 성교육, 성기 중심에서 생명 가르치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GTK 칼럼] 우울증(2)
Search

실시간최신기사

20241114_DRC_MPOX
엠폭스 변종, 콩민공과 부룬디 어린이에 빠르게 확산
20220118 Baby Abortion U.S
[오늘의 한반도] 청년들 비혼 출산 긍정 인식 확산... 20대 42.8%, 10대 44.2% 외 (11/18)
bible-230619-unsplash
[오늘의 열방] “성경 읽는 사람, 외로움 덜 느껴” 외 (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