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정형남 칼럼] 대체신학 이슈와 열두 사도 연구(6)

▲ 요단강. 사진: The land of the Bible 캡처.

I. 들어가는 말
II. <대체신학 이슈와 초림 예수의 즉위 연구>에 대한 요약
III. 예수의 1차 즉위식과 12 사도
1. 예수의 1차 즉위식
2. 예수의 최초 제자들
3. 예수의 12 사도
  1) 파트타임 제자로 부르시고 풀타임 제자로 부르시기까지
 2) 풀타임 제자로 부르시고 12 사도로 임명하시기까지
3) 예수의 12 사도 임명 의의
4) 예수의 두 번째 유월절과 12 사도
IV. 예수의 2차 즉위식과 12 사도
     1. 시몬 베드로의 고백
     2. 예수의 2차 즉위식
   3. 두 사도의 요청과 열 사도의 분개 사건
V. 예수의 3차 즉위식과 12 사도
VI. 나가는 말

예수의 3차 즉위식은 1차, 2차와 달리 47일에 걸쳐 거행되었다. 예수의 수난 주간 7일과 부활부터 승천까지의 40일이 더해진 것이다. 예수께서 세 번째 유월절 엿새 전에 감람산 동편 기슭 마을 베다니에서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로부터 지극히 비싼 향유로 기름 부음을 받고(요 12:1-8), 유월절의 준비일에 십자가 위에서 죽임당한 후(요 19:1-37), 유월절/안식일 후 첫날에 부활하셨다(요 20:23). 그리고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에 걸쳐 제자들에게 친히 나타나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 손을 들어 제자들을 축복한 후, 승천하여 하늘 보좌에 앉으심으로 3차 즉위식이 완료되었다(눅 24:50-51, 행 1:4-11). 예수의 3차 즉위식에 대해서는 복음기도신문 <대체신학인가 성취신학인가> 5회6회 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한편, 예수의 3차 즉위식이 완료된 후에 그의 문도들 120명은 감람산 서편 기슭으로 내려와 예루살렘의 다락방으로 가서 지냈다(행 1:12). 그들은 거기에서 약 열흘 동안을 함께 지내며 한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들이 기도할 때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4-5)라고 약속하셨던 말씀을 붙들었을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그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기 직전에 그들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일은 바로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사도직을 수행할 사도 하나를 선출하여 12 사도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지도력을 발휘하여 그 일을 진행하였다. 마침내, 오순절 날에 그들의 기도가 응답되어 그 성령 세례의 약속이 성취되기 시작하였다. 이는 곧 천상의 보좌에 오르신 예수께서 그들을 성령으로 친히 다스리기 시작하셨다는 뜻이다.

이제 120 문도와 예루살렘의 다락방에 대해서와 형제 칭호의 의의와 12 사도 회복의 의의에 대해서 그리고 오순절 성령 강림과 세 교회의 설립에 대해서 각각 논의하여 보자.

  1. 120 문도와 예루살렘의 다락방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감람산 동편 기슭 마을 베다니 앞에서 승천하셨다(눅 24:50-51; 행 1:9-10). 한편, 갈릴리 출신의 120 문도는 감람산 기슭 서편으로 내려와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에 위치한 예루살렘의 다락방에 모였다(눅 24:52; 행 1:12).

1)안식일에 가기에 알맞은 길

먼저 예루살렘의 다락방이 예수께서 승천하셨던 곳으로부터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행 1:12)에 위치한다는 점에 대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이 표현 속에 예수의 승천 일이 곧 안식일이었다는 점이 내포되어 있는지 여부이다. 그렇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복음서 기자들 가운데 누가만이 제자들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시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에 그의 제자들이 안식일 계명을 지키기 위하여 쉬었음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을 참고 구절로 제시한다(눅 24:54-56). 그렇게 되면, 예수의 승천하신 날이 부활 일(안식 후 첫날로서 이른바 주일)로부터 40일째가 아니라 43일째가 된다. 그렇다면,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왜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던 기간을 40일이라고 하였는가? 학자들은 예수께서 광야에서 금식하며 기도하셨던 기간 40일과 대조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였다고 설명한다.[1] 그렇게 되면, 예수의 승천은 곧 부활 후로부터 6번째 주일에 일어났다. 또한, 성령 강림일로서 오순절 날도 주일이 되고, 예수의 3차 즉위식은 총 47일이 아니라 50일에 걸쳐 진행된 셈이었다.

2) 120 문도와 붙박이 제자들

이제 120 문도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그들은 사도 베드로를 비롯한 11 사도로 대표가 된다. 사도 바울에 따르면, 부활하신 예수께서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신 적이 있다(고전 15:6). 그 장소는 갈릴리였으며, 그들 중에 백 이십 명만이 예루살렘까지 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 중에는 여 제자들도 있었다(눅 8:1-3; 23:49). 리차드 보컴(Richard Bauckham)은 이 여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를 만나 예수와 초대 교회에 관한 여러 자료를 전해주었을 것으로 추정한다.[2] 또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도 거기에 함께 있었으며(행 1:14-15a), 누가는 그들에게서 많은 자료를 전달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120 문도 가운데 11 사도를 비롯한 상당수 제자들은 예수와 항상 동행하던 자들이었다. 따라서 그들 중의 절대 다수는 갈릴리 사람들로서 예루살렘을 일시적으로 방문한 처지였다(참조. 행 1:11). 한편,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제자들도 있었다. 성경 학자들은 그들을 붙박이 제자들이라고 한다. 붙박이란 어느 한 자리에 정한 대로 박혀 있어서 움직임이 없는 상태 또는 그런 사물이나 사람이다. 예루살렘 공회에 속한 니고데모 의원과 요셉 의원의 경우가 그렇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으로 예수를 밤에 찾아 뵙고 하나님의 말씀을 개인적으로 아주 진지하게 배웠다(요 3:1-21). 그는 예루살렘 공회의 의원으로서 그의 동료 회원들인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달리 예수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갖지 못하도록 역할을 하기도 하였고(요 7:45-52), 예수의 시신에 바르기 위하여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왔다(요 19:39).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총독 빌라도에게 찾아가 예수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려 가져갈 수 있도록 공식적으로 요청하여 허락을 받아 자신의 빈 무덤에 묻었다(19:38-41).

마가의 어머니도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붙박이 제자였다. 마리아의 아들 마가는 마가복음의 저자이다. 예루살렘 교회의 유명한 바나바가 바로 마리아의 오라비이며 마가는 그의 생질이다(행 1:12-26; 12;12; 15:37). 바나바의 본래 이름은 요셉인데, 그가 예루살렘 교회의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그의 밭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바나바라는 별명의 주인공이 되었다(행 4:36-37). 마가와 바나바도 마리아와 함께 예수의 붙박이 제자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예루살렘 감람산 동편 기슭 베다니 마을에 살고 있던 나사로와 그의 누이들 마리아와 마르다의 경우가 대표적인 붙박이 제자들이다. 절대다수가 갈릴리 출신이었던 12 사도를 비롯한 120 문도는 이와 같은 여러 붙박이 제자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3) 예루살렘의 다락방

이제 예수의 3차 즉위식이 완료된 후에 120 문도가 함께 묵게 된 예루살렘의 다락방에 대해 살펴보자. 다락방이라는 표현은 부정확한 표현으로 오해의 소지가 있는 면도 있다. 이에 상응하는 헬라어 “휘페론”은 이스라엘의 가옥 구조에서 위층 혹은 옥상에 있는 거실이다.[3] 그러나 우리에게 익숙한 다락방이라는 표현으로 계속 사용하고자 한다. 이는 곧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일컬어진다. 그 이유는 이렇다. 훗날에 옥중에 잡혀 있다가 주의 천사의 도움으로 빠져나온 사도 베드로가 찾아갔던 집이 있었는데, 그 집에서 여러 사람이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바로 그 집의 주인은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였다(행 12:12). 바로 이 집에 이른바 예루살렘의 다락방 또는 마가의 다락방이 있었던 것 같다.

예수께서 마지막 유월절을 제자들과 함께 보내는 중에 귀히 활용하셨던 장소도 마가의 다락방으로 추정된다. 거기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무교절의 첫날에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는 가운데 최후 만찬을 하시며 성찬식을 제정하셨던 것 같다(마 26:17-30; 막 14:12-26; 눅 22:7-23; 고전 11:23-25).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께서 마가의 다락방에서 세족식을 거행하시며(요 13:1-20), 가룟 유다가 자신을 배신할 것에 대하여 말씀하시고(요 13:21-30), 서로 사랑하라는 새 개명을 주시고(요 13:31-35),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할 것을 말씀하시고(요 13:36-38),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등을 말씀하시고(요 14:1-24), 앞으로 오실 보혜사 성령에 대해 말씀하셨다(요 14:25-31상). 또한, 예수께서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요 14:31)의 바로 ‘여기’도 마가의 다락방으로 여겨진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곳에 (겟세마네)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요 18:1)에서 ‘이 말씀’을 하셨던 곳(요 15:1-17:26)도 마가의 다락방이었던 것 같다. 또한, 이 다락방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제자들에게 나타난 곳으로 추정된다(눅 24:33-43; 요 20:19,25).

2. 형제 칭호의 의의와 12 사도 회복의 의의

사도 행전의 저자 누가는 열한 사도의 명단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① 베드로, ② 요한, ③ 야고보, ④ 안드레, ⑤ 빌립, ⑥ 도마, ⑦ 바돌로매(나다나엘), ⑧ 마태와 ⑨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⑩ 셀롯인 시몬, ⑪ 야고보의 아들 유다(행 1:13). 이는 누가가 그의 독자들로 하여금 그의 이전의 책인 누가복음의 다음과 같은 내용(6:24-16)과 대조하여 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을 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눅 6:12-16)

저자 누가는 예수께서 12 사도를 세우기 직전에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셨던 사실과 그렇게 세워졌던 자들 가운데 가룟 유다는 예수를 파는 자가 될 자로 구별하여 소개한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도 가룟 유다에 대해서는 마찬가지로 소개하지만, 예수께서 12 사도를 임명하시기 전에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셨던 사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또한, 누가는 120 문도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였던 것처럼 그들도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던 중에 사도 베드로가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뽑기 위하여 지도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특히 누가는 사도 베드로가 그 일을 진행하기 위한 설교에서 120 문도를 “형제”라고 칭하였던 사실을 강조한다. 먼저 형제 칭호의 의의에 대해서 그리고 열두 사도의 회복의 의의에 대해서 논의하고자 한다.

  1. 형제 칭호의 의의

사도 베드로는 120 문도에게 “형제들아”라고 칭하며 설교를 시작하였다. 예수께서는 최후 만찬 직후에 시몬에게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들)를 굳게 하라’”(눅 22:31)라고 하셨다. 사도행전에는 사도 베드로가 예수께서 그를 위하여 기도하셨던 대로 ‘그의 형제들을 굳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형제들”이라는 단어가 두 번 기록되어 있다. “베드로가 형제들 가운데 일어나서…”(1: 15).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1:16). 특별히, 사도 베드로는 가룟 유다에 대하여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행 1:16a)라고 일컬음으로써 유다는 그들과 같은 형제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제 형제 칭호의 의의에 대해 마가복음을 통해서 논의하자 한다. 마가복음은 “예수의 12 제자 임명 사건”(막 3:13-19) 직후에 예수께서 귀신의 왕 바알세불로부터 힘을 덧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믿고 있는 서기관들과 예수의 말씀(막 3:20-30)과 예수께서 서기관들처럼 자신을 오해하고 있는 자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예수의 형제 칭호(막 3:31-35)에 대해서 연이어 보도한다. 바알세불 기사는 마태복음(12:22-32)과 누가복음(11:14-23; 12:10)에도 보도가 되고 있지만, 다음과 같은 사실에 대해서는 마가복음만이 언급한다.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막 3:21-22)

서기관들의 주장대로라면 예수는 접신하는 자이므로 다음과 같은 레위기 말씀에 따라 사형에 해당한다. “남자나 여자나 접신하거나 박수무당이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 그들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레 20:27). 서기관들의 주장은 단순한 축귀 현상에 관한 잘못된 평가가 아니라 예수를 죽이고자 고안된 공격이었다. 한편,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무리에게 둘러 싸여 사역하시던 예수를 찾아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그를 불러내려 하였다(막 3:31). 마침 그때 예수 주변에서 둘러 앉아 그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던 무리가 그 소리를 듣고,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라고 하였다(마 3:32). 그때 예수께서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막 3:33-35).[4]

예수께서는 자신에 대하여 귀신의 왕 바알세불로부터 힘을 덧입고 귀신을 쫓는다고 생각하는 서기관들을 비롯한 유대인들과 자신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을 구별하기 위하여 “형제, 자매, 어머니”라는 칭호를 사용하셨다. 당시 자신의 가족의 경우에는 육신적으로는 형제, 자매, 어머니 관계이지만, 영적으로는 아직 그렇지 않다는 뜻이 포함되었다. 한편, 예수는 자신의 제자들을 자신의 가족이라고 부르며, 하나님의 뜻을 행함을 참된 가족의 기준으로 제시한다. 사실, 예수에 의하여 사용된 “형제”는 곧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용어이다(시 22:22).[5] 여기에서 형제 칭호와 관련하여 시편 22:22-23에 귀를 기울여 보자.

“내가 ‘나의 형제들’에게 주님의 이름을 알리겠습니다. 예배드리기 위해 모인 백성들 가운데서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여호와를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자들’이여,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야곱의 모든 자손들’이여, 주님을 높이십시오. ‘이스라엘 모든 후손들’이여, 주님께 경배하십시오”(시 22:22-23, 쉬운성경).

평행구조를 통하여 ‘나의 형제들’이 ‘예배드리기 위해 모인 백성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 ‘야곱의 모든 자손들’, ‘이스라엘 모든 후손들’을 가리킴을 보여준다.[6] 예수께서는 자신의 친 가족 대신 제자들을 “형제”라고 부르면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자신의 형제 즉 이스라엘이라고 규정하셨다. 그런데,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여자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과 예수의 아우들도 120 문도에 포함되어 그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는 사실을 구별하여 보도한다(행 1:14). 또한, 사도 바울도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고전 15:7)라고 증거한다. 이 야고보는 예수의 아우이다. 훗날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가 되고 사도 바울과의 구별된 만남을 몇차례 하게 된다. 또한, 야고보서의 저자가 된다. 그의 형제인 유다의 경우에도 유다서의 저자가 된다.

1) 12 사도 회복의 의의

사도 베도로는 계속되는 그의 설교를 통해 유다의 배신 사건을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행 1:16b)라고 해석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행 1:17)라고 하면서 그를 대신하여 사도직을 수행할 자를 새롭게 세워야 할 것에 대해 암시하였다.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유다에 대하여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라고 설명하였다(행 1:18-19). 사도 베드로는 가룟 유다의 배신 사건이 성경 예언의 성취적 사건이라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입증하기 위하여 시편 말씀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였다.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하는 자 없게 하소서”(시 69:25).

시편 69편은 메시아의 수난과 배척을 예언하는 말씀으로 신약 성경에서 자주 인용되었다(요 2:17; 롬 11:9-10; 15:3). 그런데, 시편 69편에서 무고한 의인을 대적하고 괴롭히는 자는 복수이고(4, 12, 14절), 무고한 인간을 대적한 자는 깊은 수렁 혹은 깊은 물로 묘사된 영적 어둠의 세력이며(1, 14-15절), 다윗은 “‘저희’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그 장막에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시 69:25)라고 기도하였다. ‘저희’가 ‘그의’로 수정되었는데, 유다가 영적인 혼돈 세력과 여러 원수를 대표한 자로 해석된 것이다.[7]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그의 승천 사건을 성경 예언의 성취적 사건이라고 반복적으로 설명하셨다. 사도 베드로는 유다의 배신 사건이 성경 예언의 성취적 사건이라는 사실을 시편 69:25로 입증하였다. 또한, 그는 유다를 대신하여 사도직을 수행하게 될 자를 뽑는 것도 그렇다고 확신한 가운데, 그 예언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행 1:20 하).

이는 “그의 직분을 타인이 빼앗게 하시며”(시편 109:8b)가 인용된 것이다. 시편 109편의 문맥은 기도의 사람 의인과 악한 사람들 사이의 갈등 상황이다. 그리고 2-5절까지 “그들이 악한 입과 거짓된 입을 열어 나를 치며… 그들이 악으로… ”라고 복수 악인이다가 6절에서부터 그들을 대표하는 단수 “악인”으로 바뀐다. 가룟 유다가 악인의 대표가 되어 예수를 배반한 것으로 해석된 것이다. 사도 베드로의 계속된 설교에 귀를 기울여 보자.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행 1:21-22).

그렇다면, 사도 베드로와 그를 비롯한 그의 동료 사도들이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 마을에서 진행된 예수의 세례 현장의 목격자들이었다는 뜻인가? 그 점에 대해서 에크하르드 슈나벨(Eckhard J. Schnabel)은 “이는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는 구체적인 사건(참고, 눅 3:21)이 아니라 세례 요한의 사역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해석한다.[8] 약 백 이십 명 중에 절반 정도가 남자라고 한다면 기존의 열한 명의 사도를 제외한 약 오십 명 정도의 남자들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 단 두 명만이 세례 요한의 사역에 동참하였던 자들이었다고 볼 수가 있겠다. 그 둘 중에서 맛디아가 제비뽑기로 세워졌으며 그 결과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여졌다. 예수께서 열두 명의 사도를 뽑으신 것처럼 맛디아는 승천하신 예수의 주권에 맡겨 그 분 자신이 뽑은 형식을 취했다. 그들은 성령이 임하여 새 이스라엘로서 교회 공동체가 출발하는 시점에서 구약의 열두 지파와 짝을 맞추기 위해 열한 명의 사도에서 한 명을 더하여 열두 명의 사도를 의도적으로 구성하였다.[9]  이 점에 대해서 슈나벨은 이렇게 말한다.

맛디아가 열한 사도의 수에 더해졌으므로 이제 열두 사도가 회복되었다. 이제 사도들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겠다고 하신 예수의 주장과 약속을 다시 한번 상징적으로 보여주게 되었다. 이는 예수의 삶, 죽음, 부활 그리고 영광의 승천을 증언하는 예수의 증인으로서의 사명이 사도들에게 주어진 사건이며 과정이었다는 것이다.[10]

사도 베드로가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맛디아를 선출하도록 하였던 것은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예비하여 둔 것을 몰랐기 때문이라는 아주 어이없는 주장을 제시하는 학자들도 의외로 많다. 사도행전 14:4,14에서 바나바와 함께 바울이 사도로 일컬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그들 중의 하나가 열두 번째 사도로 세워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함이 아니라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사도적 사명을 감당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5:5에서 부활하신 예수께서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라고 할 때, ‘열두 제자’ 속에 맛디아 대신에 자신을 포함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 사도행전 2:14과 6:2에 열두 사도 속에 맛디아가 포함된 것은 분명하다. 사도 베드로의 지도력으로 유다를 대신하여 사도직을 수행할 맛디아가 세워지고, 오순절 날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대로 그의 제자들이 모두 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행 2:1-4). 성령의 충만을 받은 사도 베드로의 탁월한 설교로 삼천 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가운데 예루살렘에 교회 공동체가 세워졌다. 그 공동체가 바로 회복된 이스라엘이다. 따라서, 그의 열두 제자는 회복된 이스라엘의 대표들이다. 여기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의 이스라엘 회복론에 대해 데이빗 세컴(David Seccombe)이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 바에 대해 귀를 기울여 보자.

사도들에 대해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다스릴 것이라는 (눅 22:30) 예수의 약속과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질문 내용(행 1:6-8)을 통해 볼 때, 누가가 독자들에게 이것을 이스라엘의 회복이나 공동체의 12 기초석(계 21:14)과 연계시키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상상하기는 어렵다.[11]

예수께서는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 마을로 요나(또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 그의 아우 안드레와 친구 요한과 더불어 처음 찾아왔을 때 그에게 장차 반석의 뜻을 지닌 게바 또는 베드로가 되도록 하시겠다는 첫 약속의 말씀을 주셨다(요 1:40-42). 또한, 예수께서는 신앙 고백을 한 시몬에게 “너는 베드로(반석)라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8-19)라는 약속의 말씀도 주셨다. 마침내 사도 베드로는 이와 같은 약속의 말씀들이 예수께서 그 자신만을 위해서 주셨던 것이 아니라 그로 대표되는 열두 사도를 염두에 두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도 베드로는 자신이 그의 동료 사도들을 대표하는 자일뿐이라는 것이다 .[12] 그리하여, 그는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 맛디아가 세워지는데 자신의 지도력을 귀히 발휘하였던 것이다.


[1] 유상섭, 『설교를 돕는 분석 사도행전(1-14장』, 76-77.

[2] Richard Bauckham, Gospel Women: Studies of the Named Women in the Gospels (Grand Rapidis: Eerdmans, 186-94, 2002). 한규삼, 『사도행전』, 35. 재인용.

[3] Longenecker, The Acts of the Apostles, 260. Rogers Jr. and Rogers III, The New Linguistic and Exegetical Key, 230. 유상섭, 『설교를 돕는 분석 사도행전(1-14장』, 77. 재인용.

[4] 막 3:33-35는 요 7:20; 8:48, 52의 지지를 밭는다.

[5]. 신현우, “이스라엘에 관한 예수의 새 관점: 마가복음 3:20-35 주해”, 『신약연구』, 제 19권 3호. 455.

[6] 신현우, “이스라엘에 관한 예수의 새 관점: 마가복음 3:20-35 주해”, 478.

[7] 유상섭, 『설교를 돕는 분석 사도행전(1-14장』, 87.

[8] Eckhard J. Schnabel, 『강해로 푸는 사도행전』, (서울: 디모데, 2018), 107.

[9] 이필찬, 『이스라엘과 교회,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321.

[10] 이필찬, 『이스라엘과 교회,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110.

[11] I. Howard Marshall, 『사도행전 신학』, 류근상 역 (서울: 크리스챤출판사, 2004), 433.

[12] Donald Guthrie, 『메시아 예수』, 정광옥 역 (서울: 아가페 출판사, 1989), 220.

정형남 | 아신대학교(ACTS) 선교대학원 교수 및 GMS 아랍권 선교사(천안장로교회 파송. since 1989). 그의 책으로 『이슬람과 메시아 왕국』CLC, 2009)과 아랍권 및 이슬람권 선교와 관련된 여러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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