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김명호 칼럼] 미묘한 성경 해석학(6)

ⓒ 안호성

“지식의 광대한 세계 속에서 하나님 말씀에 적용되는 성경 해석이란 학문보다 더 중요한 연구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성경 해석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영원한 계시에 대한 이해를 제공해준다. 이러한 해석학이 존재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말씀을 잘못 해석할 뿐 아니라 진리로부터 거짓을 이끌어 내어, 그들이 사람들을 어둠에서 빛 가운데로 이끌어야 할 때에, 많은 사람들을 기만(欺瞞, 속여 넘김) 하게 된다.” (윌버 스미스, Wilbur M. Smith)

개신교 성경 해석학의 교과서라 일컽는 버나드 램(Bernard Ramm) 『성경해석학』(Protestant Biblical Interpretation) 추천사에서

성경 해석의 목표

성경해석의 목표는 무엇일까?

눅 24:32
Οὐχὶ ἡ καρδία ἡμῶν καιομένη ἦν ἐν ἡμῖν, ὡς ἐλάλει ἡμῖν ἐν τῇ ὁδῷ, ὡς διήνοιγεν ἡμῖν τὰς γραφάς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엠마오로 가는 길목에서 주님과 제자들 사이에서 오고 가는 대화가 기록되어 있는 누가복음 말씀은 읽기만 해도 늘 은혜가 되는 성경 해석에 대한 매우 귀한 말씀이다. 여기서 헬라어 단어, “διερμηνεύω”(디에르메뉴오)는 보다 강조적인 의미로 “자세히 설명했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누가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해석한(자세한 설명) 그 결과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Οὐχὶ ἡ καρδία ἡμῶν καιομένη ἦν ἐν ἡμῖν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여기서 “뜨겁게 하다”(καιομένη)의 헬라어 문자적인 의미는 “타다”(burn, ‘καίω’의 현재 능동태 분사) 이다. 출 3:3절에 모세의 소명과 관련하여 쓰인 단어와 동일한 의미로 칠십인역(LXX)은 “καιομένη”(카이오메네)로 번역을 했다.

출 3:3
(마두아 로 이브아르 스네) מַדּוּעַ לֹא-יִבְעַר הַסְּנֶה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성경 해석의 목표는 일차적으로 독자로 하여금 저자가 살았던 그 때 당시의 시대와 세계 속으로 들어가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성경을 대하는 독자와 원 저자 사이의 차이를 줄이고 하나님이 의도하신 본문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게 하는데 있다. 그 결과 말씀이 독자들의 안(內) 내부, 마음 속으로 파고 들어가 불을 지피는 것(בוער/καίω)이다. 하루 종일, 히브리 표현으로 하면, “욤맘 바라일라”(יוֹמָם וָלָיְלָה) 24시간 그 말씀에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는 것이다.

올바른 성경 해석이란 본문에서 우리 나름대로 어떤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본문에 놓여 있는 그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럴 때 성령은 지식의 증가, 단순한 두뇌의 반짝임, 일시적인 흥분을 넘어, 우리의 속 마음을 뜨겁게 함으로 변화된 삶으로 이끌어가게 한다. 헬라어 용어로 말하자면 이를 “오르또토문타”(ὀρθοτομοῦντα, 딤후 2:15) 라고 한다. 이미 텍스트(본문) 안에 그려져 있는 판을 손상하지 않고 그대로 떠 올리는 것이다. 모든 답은 “성경 본문 자체 안에” 놓여 있음을 기억하고 본문을 주시 해야 한다.

말씀을 의심없이 믿음으로 취하는 태도

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정확한 말씀이 수면 위로 떠올라 성령께서 내 심령 안에 불같이 타오르는 뜨거운 감동을 주실 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없이 “휘어 잡아” 믿음으로 취해야 한다. 실제가 되도록! 믿음의 요소인 지-정-의, 더욱 의(意)가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성경 해석의 최상의 목표일 것이다.

말씀이 오는데도 그 말씀을 휘어 잡지 못하면 되레 역으로 공격을 당한다. 로마서 말씀을 보자. 매우 귀한 말씀이다. 나는 이 말씀을 볼 때 마다 의문이 들었다. 왜 계명이, 말씀이 가는데 죄가 기회를 타서 넘어지지? 설령 죄가 기회를 타고 들드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오면, 죄가 말씀이 무서워 도망가야지, 그래야 맞지 않는가! 그런데 왜 반대 현상이 어처구니없이 일어나지?

롬 7:8
ἀφορμὴν δὲ λαβοῦσα ἡ ἁμαρτία διὰ τῆς ἐντολῆς κατειργάσατο ἐν ἐμοὶ πᾶσαν ἐπιθυμίαν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왜? 오히려 계명으로 말미암아 승리를 해야 하는데, 죄에 빠지는가? 빌미를 주어 사탄의 권세 아래 더 들어가는가? 그건 확실하게 말씀을 휘어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완전한 순종이 없으면 오히려 말씀이 거친 돌이 되어 넘어지게 되는 꼴이 되고 만다.

말씀 본다고 해서 다가 아니다. 말씀 깨닫는다고 해서 다가 아니다. 말씀을 정확히 알고 하나님의 말씀이 헤게모니(hegemony, 주도권)를 쥐고 나를 이끌어가도록 해야 한다. 말씀이 올 때는 주저하지 말고 전심으로 잡아서 주님이 주신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순종하여 진리가 결론이 되도록 방향을 확실히 트는 뜨거운(불타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 비결은 순종하는 믿음이다.

생각하면 이미 사탄에게 주도권을 빼앗기는 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일은 삶과 죽음의 문제다. 말씀이 오는데 늦장을 피우고 생각하고 계산하면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다. 주도권이 벌써 사탄에게 넘어갔다는 절박한 위기 의식을 갖어야 한다. 절대적으로 주님의 도움이 필요한 죄인들인 우리는 우리의 얄팍한 꽤를 내려놓고 진리인 말씀을 굳게 붙잡아야만 한다. 그리고 전혀 의심없이 그 분께 굴려야 한다(시 37:5). 그 길 만이 유일한 살 길이다. 다른 길이 없다. 왜냐하면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이 그 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Ἐγώ εἰμι ἡ ὁδὸς καὶ ἡ ἀλήθεια καὶ ἡ ζωή·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οὐδεὶς ἔρχεται πρὸς τὸν Πατέρα εἰ μὴ δι’ ἐμοῦ.

To be continued 계속됩니다. [복음기도신문]

김명호 | 헤브론선교대학교 성경언어대학 교수. 복음과 기도의 기초 위에 성경의 원어 연구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선교완성을 위한 다음세대를 세우는 사역으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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