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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칼럼] 교리, 어떻게 선을 그을 것인가

▲ 사진: unsplash.com 캡처

“ 우리는 사도적 복음에서 더 축소할 수 없는 핵심을 구성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

“본질에 있어서는 일치를, 비본질에 있어서는 자유함을, 그리고 모든 일에 있어서는 명확함을.”

듣기에 괜찮지 않은가? 문제는 뭐가 뭐냐는 것이다. 누구나 다 진짜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는 하나가 되기를 원하고, 그리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서는 적당하게 양보하기를 원하며 게다가 이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이 진짜 중요한 문제고, 적당히 중요한 문제고 또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인지, 서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 만큼이나, 어느 지점에 너와 나를 가를 울타리를 쳐야 할지 결정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오히려, 그것은 더 어려울 수도 있다.

교리에 있어서 어디에 또 어떻게 선을 긋는가의 문제는 정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고 복잡하다. 거기에 필요한 성경적, 신학적, 역사적, 그리고 실질적인 탐구를 이 글에서 모두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글에서는 단지 그에 필요한 몇 가지 중요한 고려 사항들에 관한 개요를 설명하려고 한다.

그런 맥락에서, 교리적 경계를 확립하기 위해 추구해야 할 일곱 단계가 있다. 그 목록을 따라가다 보면 설명은 뒤로 갈수록 점점 더 짧아진다.

1. 믿음의 본질을 확립하라

이것이 가장 중요한 단계다. 우리는 사도적 복음에서 더 축소할 수 없는 핵심을 구성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 본질을 결정하는 한 방법은 목회 서신(디모데전후서, 디도서)을 보는 것이다. 이 서신서를 보면, 바울은 바른 교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목회 서신에 나오는 다음 몇 구절을 살펴봄으로 어떤 교리가 가장 중요한지 감을 잡을 수 있다.

가장 먼저, 우리는 ‘믿을 수 있는 말씀’(딤전 1:15; 3:1; 4:9–10; 딤후 2:11–13; 딛 3:4–8)을 가지고 있다. 디모데전서 3장을 제외하고는, 각각의 ‘믿을 수 있는 말씀’은 다 구원 문제를 다룬다. 우리는 여기서 예닐곱 개의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진리를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구하러 온 구원자다. 구원은 공로가 아니라 오로지 성령이 새롭게 하심으로 생겨나는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진실되게 믿는 자는 좋은 일에 인생을 바치고 또한 끝까지 인내한다.

두 번째로, 다양한 신앙 고백의 형태가 나온다(딤전 1:17; 2:5; 3:16; 6:15–16; 딛 2:11–15). 이런 구절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신앙 고백이 바른 복음의 내용을 형성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고 그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영광스럽다. 구원자는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준 예수 그리스도 오직 한 분 뿐이다. 예수님은 위대한 하나님이자 구원자이며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고 또한 하늘로 승천하셨다. 그는 다시 오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기에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세 번째로, 바울은 거짓 가르침과 관련한 몇몇 교리를 반대한다(딤전 1:8–11; 4:1–3; 딤후 2:18; 딛 1:16). 이런 잘못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율법주의와 자격증이다. 어떤 거짓 선생들은 어둠을 빛이라고 부르고 또 죄의 삶이 복음과 일치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사람들을 멸망으로 이끌었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해로운 금욕주의와 또 사람이 만든 규칙을 강요했다. 이 두 가지 모두 다 복음을 위협하는 잘못이다.

네 번째로, 믿음은 복음 및 바른 교리와 명시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함으로써 우리는 믿음의 본질을 엿볼 수 있다(딤전 1:8–10; 2:8; 딤후 3:14–17). 우리는 이 구절들을 통해서 바른 믿음은 오직 성경 말씀만을 붙잡을 때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복음은, 이 세상이 시작하기도 전에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여 영생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메시지라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에 따른 은혜로 인함이지, 결코 우리의 공로 때문이 아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네 가지를 통해서 우리는 본질이 어떤 것인지 대강 윤곽을 잡을 수 있다. 하나님은 영광스러우시다. 우리는 죄인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자이자 하나님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몸으로 오신 하나님이다. 그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그는 하늘로 승천했다. 그는 다시 온다. 구원은 오직 믿음을 통해 성령님의 중생의 능력에 따른 주권적 은혜로 가능한 것이지 우리의 공로로 인함이 아니다. 성경은 온전히 영감 받은 진리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에서 구했고, 영원한 생명을 위해 우리를 구원했고 또 우리를 거룩함으로 새롭게 했다. 이런 본질적인 내용을 부정하거나, 무시하거나 또는 사소하게 취급한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내용을 의심하도록 만들거나 또는 이런 내용을 부끄럽게 여긴다면, 그것이 어떤 복음이든지간에 그것은 다른 복음이다.

2. 성도의 교통함에 귀를 기울이라

전통이 성경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 그러나 성경을 사랑하게 되면, 우리는 또한 교회의 전통에서도 배우게 된다. 우리는 성경을 처음 읽는 사람들이 아니다. 또한 성령님을 모시고 산 처음 사람들도 아니다. 하나님은 지난 수 세기에 걸쳐서 당신의 교회를 통해서 진리를 만들고 또 지켜왔다(딤전 3:15). 이 사실이 말하는 바는 이것이다. 과거 그 어떤 기독교인도 결코 믿지 않았던 사실(예를 들어, 동성애의 선함)을 믿기 전에는 극도로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또한 과거 모든 교회가 다 예외없이 받아들였던 사실(예를 들어 실재하는 지옥)을 거부하는 데에도 극도로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원리로, 우리는 지난 수 세기 동안 신자들을 분열시켰던 문제들(예를 들어 밀레니엄)에 관해서는 보다 덜 교리적일 필요가 있다.

사도 신경, 니케아 신경 그리고 칼케돈 정의와 같은 고대 신경은 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신경은 하나님의 백성이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지켜주는 효과적인 방패가 되었다. 이런 고대의 신앙 고백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만들려면, 실로 놀라운 깨달음 내지 엄청난 오만함이 필요할 것이다. 고대의 신앙 고백은 믿음의 핵심 교리에 대한 가장 믿을 수 있는 요약이다. 그러므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이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믿어야합니까?”(Q&A 22–23)라고 물을 때 사실상 우리로 하여금 ‘의심할 바 없는, 온 세상을 통해 고백되는 신경’인 사도 신경을 보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존 칼빈(John Calvin)은 ‘종교의 원칙’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포함한다고(마치 지나가는 말처럼) 서술했다. “하나님은 한 분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자비함에 달려있다”(기독교 강해, 4.1.12). 존 오웬(John Owen)도 비슷한 항목을 놓고 다음처럼 서술했다. “기독교 신앙의 원칙적인 근본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 또한 성령님의 개인적인 도움과 신성을 통해서 주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임을 확증한다”(존 오웬 전집, 15:83). 시간이 지나서 오웬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첨부해서 목록을 늘였다.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것, 그리스도만을 통해서 구원을 바라는 것, 그분에게 순종을 고백하는 것, 하나님이 그를 죽음에서 건진 것을 믿는 것, 개인적인 거룩함을 고집하는 것, 그리고 “동일하게 중요한 다른 많은 거룩한 진리들”(84). 이런 신앙 선배들의 짧은 진술을 통해, 이미 앞에서 다룬 1번 내용을 붙잡고 있는 우리가 지금 바른 길을 가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

3. 결론 신학(landing theology)과 시작 신학(launching theology)의 차이를 구분하라

어떤 교리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전제에서 시작했는데도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가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어떤 교리는 애초에 시작점부터 아예 다른 궤도를 향해 나아가도록 만든다. 예를 들어, 후천년설과 무천년설의 경우, 시작점은 다르지 않다. 단지 논쟁의 여지가 있는 몇 가지 구절에서 양측이 서로 다른 해석을 할 뿐이다. 이런 경우는 바로 결론 신학의 문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성경에 관한 교리는 (하나의 예만 든다면) 어떤 신학이 되도록 만드는가를 결정하는 시작 신학의 문제다. 만약에 이런 교리에서 틀리게 되면, 우리는 나머지 모든 신학에서 다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

4. 성경이 명확하게 말하는 가르침과 성경적 원칙을 적용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구분하라

성경은 부모가 주님의 길로 자녀를 교육하라고 명확하게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아이들이 공립학교에 가야하는지, 기독교 학교에 가야하는지 아니면 홈스쿨링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성경은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다. 비록 선한 의도로 기독교적인 원칙에서 다들 시작한다고 해도 사람마다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런 주제와 관련해서 성경이 명확하게 이것만을 말한다고 교리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성경을 구시대의 유물로 만드는 것이다.

5. 교회의 존재와 교회의 건강을 구분하라(교회가 건강하지 않다고 교회가 필요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떤 교리를 상실하게 되면 교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다른 어떤 교리를 상실하게 되면 교회는 이제 더 이상 정상적인 교회가 되지 못한다. 그래도 후자의 경우는 고칠 가치가 있는 문제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까지 도달하기 전에 당신은 최대한 인내와 온유함을 발휘해야 한다.

6. 어리석은 논쟁을 피하라

목회 서신에는 또 하나의 공통된 주제가 있다(딤전 1:4–6; 4:7; 6:4, 20; 딤후 2:14, 16, 23; 4:4; 딛 1:14; 3:9). 어떤 교리는 생명을 걸고라도 지켜야 한다. 그러나 그럴 가치가 전혀 없는 교리도 있다. 신학 논쟁을 할 때 다음과 같은 경우는 피해야 한다. 바로 추측하는(성경이 알려주는 수준을 뛰어넘는), 쓸데 없는(도움이 되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내가 옳다는 데에 치중한), 끝이 없는 (정답이 불가능하거나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는), 불필요한(단순한 의미론적) 신학적 논쟁들이다.

7. 특히 회심 관련한 복잡한 문제들에 관해서라면 이견의 여지를 인정하라

바울은 새롭게 믿게 된 사람들이 기존에 지키는 관습에 관해서는 특히나 유연성을 보였다. 그는 어떤 특정한 날이나 음식에 관해서는 기독교인이 그들의 마음에 확신을 갖기를 원했다(롬 14:5). 이것은 바울이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몰라서 그런 게 아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습관은 중요한 게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행동할 때라도 자기의 양심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하기를 원했다. 사순절 기간 동안 금요일에 술을 마신다거나 고기를 먹는 것은 하나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을 보면서 상처를 받는 신실한 신자들을 생각한다면, 굳이 그런 고집을 부리는 게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 설명한 이 모든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 진리에 대한 사랑, 그리고 교회에 대한 사랑이다. 선을 긋는 것은 옳은 것에 대한 것도 아니고 용기에 대한 것도 아니다. 그 모든 목표는 말씀을 선포함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다. 또한 늑대를 막고 녹색 초원을 지키는 울타리를 세움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서다. 경계를 설정하는 힘든 노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그분의 영광과 선을 위해 우리를 부르신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 진리에 대한 사랑, 그리고 교회에 대한 사랑이다. 선을 긋는 것은 옳은 것에 대한 것도 아니고 용기에 대한 것도 아니다. 그 모든 목표는 말씀을 선포함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다 ”

케빈 드영 Kevin DeYoung |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리스도언약교회(Christ Covenant Church) 담임목사. 미국 TGC 이사이자 리폼드신학교(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조직신학 부교수. <성경이 동성애에 답하다> 등 저서 다수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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