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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통신] 쌀을 더 구입할 수 있을까요?

▲ 쌀을 나누고 있는 카렌이뚜타 사람들(본지 통신원)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는 급속한 민족주의 고립(Nationalist Isolation) 속에서 글로벌 연대(Global Solidarity)를 보게 한다. 민족주의 고립은 자 국가 우선주의로서 코로나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국경을 폐쇄하는 경우이다. 글로벌 연대라 함은 코로나로 인한 어려움을 같이 극복하기 위해서 자료와 정보 그리고 자원을 나누는 것이다. 이런 지구적인 현상은 미얀마의 고립된 카렌 난민촌 ‘이뚜타’에서도 전개된다.

“혹시 쌀을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알아 봐 주세요”

이 한 마디 속에는 글로벌 연대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고백이다. 미국 시카고에 계시는 한 집사님과 통화를 하였다. 그는 몇 달 전, 이뚜타 카렌 난민 캠프의 어려운 소식을 듣고 쌀 약 1,000㎏을 지원하여 주셨다. 최근 태국에서 단행한 국경폐쇄로 식량구입이 매우 어려워진 그들의 소식을 들었다. 상황이 더 급박해진 그들을 위하여 뭔가를 해 주고 싶었다.

“쌀 구입이 가능한 방법을 찾아주시면, 한두 번 그들을 더 도우려고 합니다.”

위기의 상황 속에서 자기 자신의 안위와 보호막을 강화하는 시대에서 대조적인 모습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런 연대의 마음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돕는 분들이 적지 않다. 최근에 직접 만난 분들의 얼굴이 스쳐간다. 인천에 있는 카렌 난민들을 돕는 분들이다.

‘한 난민 가족과 그 자녀를 위하여 그야말로 물심양면으로 헌신하는 한 권사님.’
‘그 가족을 위하여 가능한 범위 내에서 돕는 수도권 대학교의 신학과 교수님’
‘인천부평의 카렌 난민 공동체를 위하여 주일마다 픽업으로 돕는 분’
‘그 공동체를 위하여 함께 고민하며 나누기를 원하는 장로님’

이 외에도 이들을 진심으로 걱정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함께 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아무런 대가 없이 돕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때로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때로는 본인에게 중요한 일들을 뒤로 미루거나 포기하기도 한다. 그들의 헌신 때문에 한 공동체와 한 가정이 세워지고 있다.

이들의 행동과 오버랩 되는 그림이 있다. 요아스 왕의 문제점을 경고한 여호야댜의 아들 스가랴이다.

‘이에 하나님의 영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카랴를 감동시키시매(역대하 24장 20절)’

유다 왕의 절대 권럭자인 요아스 왕의 범죄에 대하여 스가랴는 경고하였다. 왕의 결정에 대항하여 거스를 수 없는 대세를 맞섰다. 하나님의 영이 감동했기 때문이다. 성령의 감동은 한 시대의 통념과 경향과 맞설 수 있도록 역사하신다. 민족주의 고립의 대세는 코로나 시대에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 가운데 연대와 나눔은 어리석게 보이지만 그 길을 가는 분들이 적지 않다. 하나님의 영이 감동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은 인천에 있는 카렌 난민들을 위하여 사람들을 감동시키므로 하루하루 살아가게 하신다.

“쌀은 다 나누어 주었습니다.”

열흘 전에 이뚜타 난민촌의 총무로부터 전해 받은 메시지이다. 불가능 할 것 같은 쌀 구입을 할 수 있었다. 그곳에 하나님의 영은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국경은 봉쇄되었으나, 하나님의 영의 역사는 열려 있었다. 짧지만 한 기간을 넘기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서 미얀마와 태국의 국경에 있는 이뚜타 난민들의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 생존을 위한 생명 줄이 여전히 아슬아슬하다. 이런 상황에서 시카고에 계신 집사님의 요청은 특별하게 다가온다. 아량 있는 한 사람의 선한 마음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손길이 난민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성령의 감동으로 인한 연대가 계속될 것이라는 상징처럼 다가온다.

동시에 이뚜타 카렌 난민들의 상황에 대한 질문이 있다. 생존을 위협받는 공동체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이 세상에서 볼 때 너무나 초라하고 무기력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풍족함과 여유로움과는 거리가 너무 먼 사람들은 이 땅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 선교학적인 질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각 공동체에게 그들만이 살아내야 할 길을 주셨다. 우리가 심각하게 의논하는 내용들이 어떤 지역의 사람들에게는 정말 하찮은 것도 있다. 일부 교단 목회자의 평상복으로 입는 ‘로망’ 칼라의 색깔은 무엇으로 할까? 이런 질문은 이뚜타의 난민들에게 거의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생존을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옷의 색깔은 중요하지 않다. 그런 상황에 있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것은 풍요로운 곳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들의 신앙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절체절명의 상황이 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그 공동체가 경험하고 고민하는 내용들은 신학적으로 수준 낮다고 할 수 없다. 어쩌면 그런 결핍 때문에 더 깊은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를 그들은 적어도 한끼 한끼 진실되어 고백한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양식이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사실을 진실로 고백하는 한국 교인들은 얼마나 될까? 예수님의 기도모범에 있는 중요한 기도제목을 그냥 지나가는 내용으로 여기고 있지 않은가?

이뚜타 난민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일반적으로 피하고 싶은 단어들로 이어져 왔다.전쟁, 궁핍, 증오, 잊혀짐, 소외, 불안…….

이런 상황에서도 그 공동체는 하나님을 만나고 고백한다. 가만히 돌아보면 이 지구는 해결되지 않은 갈등과 궁핍 그리고 재난과 폭력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것을 경험하고 느끼지 못하면 그런 상황의 사람들의 아픔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 십자가의 고통을 경험하셨기에 예수님은 아픈 사람들을 온전히 찾아갈 수 있다. 나는 그런 면에서 너무 풍족함에 익숙한 삶인 것 같다.

코로나 사태는 소외된 변두리의 이뚜타 난민들에게 더 큰 위협 요소가 되었다. 급속한 민족주의 고립주의에 입각한 정책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으로 마침표를 찍지는 않는다. 글로벌 연대의 모습이 희미하지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성령의 감동하심과 관련되어 있다. ‘알아봐 주세요’라는 요청은 이런 면에서 특별함이 있다. 글로별 연대의 상징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뚜타 카렌 난민들은 ‘불쌍한 난민 공동체’로만 귀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소망이 있다. 그것은 갈등과 증오를 넘어 그들을 해친 버마를 품고 사는 공동체이다. 십자가의 화해를 삶으로 실천하는 공동체이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영으로 이루어질 날을 소망한다. 선교현장에서의 다양한 상황은 하나님의 주되심을 더 다양하게 드러내신다. <무익종(본지 통신원)>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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