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호 / 일상에서 만난 하나님]
예배시간에 네 살 예빈이가 다섯 살 시온이의 기차 장난감을 빼앗기 위해 줄다리기를 하며 싸우고 있었다.
“예빈아 그걸 가지고 놀려면 오빠한테 허락을 맡아야지. 일단 장난감 놔.”
예빈이는 손을 놓았지만 금방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내 품에 안기려 했다. 나는 그 아이를 안아 주고 달래주었다.
“저 장난감 가지고 놀고 싶었는데 가지고 놀지도 못하고 삼촌이 혼내서 마음이 상했구나.”
예빈이는 나에게 안겨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 울음을 그쳤다. 아직 볼에 눈물이 마르기도 전, 자기가 좋아하는 젤리를 먹기 시작했다. 난 아이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러자 아이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어? 우리 엄마도 내가 울면 이렇게 닦아 주는데’ 하며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엄마같이 행동한 삼촌(선교공동체에서 남자 사역자를 부르는 호칭. 편집자주)이 친근해졌는지 자신이 먹던 젤리를 내 입에 하나씩 넣어주었다. 마지막 두 개가 남았을 때 아이는 작은 손 위에 남은 젤리를 올려놓고 나에게 무슨 맛 젤리를 더 좋아하냐고 물어보았다. 삼촌이 먼저 먹으면 자기가 남은 것을 먹겠다는 말이었다. 네 살 먹은 아이의 그 배려가 참 기특했다.
아이들을 돌보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하면 즉시 마음이 상하고 성질을 부리는 인간 존재의 모습을 보았다. 다툼과 폭력을 무릅쓰고서라도 내 손에 원하는 것을 취하려는 탐심이었다. 잠잠히 인간의 탐심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생각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에 문화, 시대, 성별, 나이에 상관없이 이 땅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은 탐심의 노예였다. 나도 이 탐심을 십자가 앞에 깨뜨리고 영원하고 진정한 보배이신 주님께 안기느냐, 아니면 더 그 탐심을 굳게 하여 끝까지 돌진하느냐의 싸움을 싸우고 있었다. 이 싸움은 나에게 주어진 어떠한 상황과 조건에 상관없이 오직 믿음만으로 참여하는 공정하고 자비로운 하나님의 초대였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온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바로 그 자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높이 들린 갈보리 언덕, 그 자리에서 탐욕을 부리는 나는 죽었고 거듭난 예수님의 생명으로 주님께 사랑스럽게 안기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할렐루야!
나도 예빈이가 나에게 보여준 모습처럼 주님 품에 안겨 주님께 여쭙고 싶다. “주님은 어떤 것들을 좋아하세요?” 그리고 내가 선택하기 전에 그 분이 먼저 선택하실 수 있도록 충분히 기다리며 탐심을 부리는 내 존재가 죽었음을 믿고 나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그분을 따르고 싶다. 내가 원하는 것을 더 이상 고집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원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의 섭리가 감사함으로 다가왔다. [복음기도신문]
양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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