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증한 라오디게아교회인
나를 토해버리겠다는
주님의 선고 앞에
십자가가 실제되는 영광 맛보아,
이제 “내가 너와 함께 하노라”는
주님의 말씀에 붙잡혀
주님이 부르시면
언제든지 달려가겠습니다.
느헤미야52기도에 참여하던 중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보게 하셨다. 교회의 실상 앞에 깨닫게 된 한 문장이 있었다. “미지근하다는 말은 되지도 못한 것이 감히 된 줄로 생각하고 가증한 행위를 일삼는 태도이다”
이 글을 읽는 순간. 절망감이 느껴졌다. 그 동안 나의 선포와 믿음은 구호이고 가짜인가? 주님 앞에 긍휼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라오디게아 교회였다. 완전한 죽음이었다. 말과 고백이 아닌 지금까지의 내 모든 존재 자체가 완전히 부정되는 순간이었다.
알 수 없는 눈물과 어떻게 할 수 없는 심령의 괴로움이 밀려왔다. 다른 어떤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주님의 토해 버리겠다는 선고만 내게 들려올 뿐이다. 나는 내 자신의 실체를 단 한 번도 제대로직면해보지 못한 존재였다. 곤고함, 가련함, 가난함. 눈 먼 것, 벌거벗은 것이 나였다.
그런 나의 수치를 가리기 위해 수없이 가면을 쓰고 스스로 금을 싸 바르고 흰 옷을 사서 입고 약을 사서 눈에 바르는 존재였다. 주님을 볼 수가 없어 얼굴을 가리고 바닥에 엎드렸다. 그리고는 주님께 긍휼을 구했다. 그것 외에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을 마치고 말씀기도를 인도해야 했다. 그 자리에 앉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그리고 말씀을 보던 중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학 1:13)는 구절에 머물게 하셨다. 그 말씀을 레마로 받고 이 절망에서 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 다음 눈에 띈 말씀은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였다. 나는 학개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성전은 황폐하였는데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자였다. 열심히 뿌리고 애써도 수확이 적고,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고, 마셔도 흡족하지 못한 자였다.
주님이 아닌 다른 피난처에 거하면서 영적으로 목말라 하던 자였다. 자기 집을 짓기에 발 빠른 자였다. 갑자기 이곳으로 인도하신 주님의 약속의 말씀이 떠올랐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
이 말씀이 새로운 말씀으로 보였다. 단 한번도 주님은 내 마음에 들어오실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두드리고 계속 두드리고 계셨다. 그때 한 지체의 기도가 들렸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포기하시지 않으셨군요. 네 주님 회개합니다.” 사실 주님은 단 한 번도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 때 주님을 쳐다 볼 수 있었다. 계속 주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문을 열었고 십자가를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주님과 함께 죽은 나를 보았다. 이미 모든 결론은 내려졌고 진리가 결론이었다. 그리고 주님 앞에 선포하며 기도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노라” 이 말씀이 내게 실제가 되었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내안에 부어졌다. 느헤미야52기도는 끝났지만 이제 시작이다. 라오디게아교회인 나는 처리되었다. 그리고 계속 믿음으로 나의 모든 것을 죽음으로 넘길 것을 결단한다. 느헤미야52기도, 치열했지만 그 안에서 나를 향한 주님의 무한한 사랑을 본다.
이 기도를 어떻게 안할 수가 있겠는가! 기도24365! 당연히 죽을 때까지 올려드리는 나의 기도이다. 항상 십자가의 자리로 가겠노라고 고백했지만 실상은 말만 할 뿐 직면하지 않으려고 피해갔던 부끄러운 나를 인정한다. 영원한 내 삶의 중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것이 없다면 난 존재할 수 없다.
십자가. 주님의 영광 보는 자리 언제나 머물러 있어야 하는 나의 집, 나의 안식처이다. 내 존재를 바꾸신 주님이 언제든지 부르시면 달려갈것이다. 한 번도 고백하지 않은 것인데 나는 십자가와 예수 그리스도로만 설명되는 존재이다. 아멘!
십자가가 기쁨이요, 주님 오시는 그 날이 나의 기쁨이다. 신실하신 주님사랑합니다.
강성민(복음사관학교 훈련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