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선교행사를 의논하던 중 뜬금없이 ‘느헤미야52기도’ 한번 해보자는 말이 튀어 나와서, 그럼 한번 해보라는 목사님의 허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도님들께서는 380여 시간을 작정해 주셨습니다. 특히 특별새벽기도회가 진행 중인 어려운 시간이었고, 행사가 많은 10월 달인데도 기도의 자리로 달려 오셨습니다. 육신의 피곤함과 미숙한 기도회 진행 등을 불평하나 없이 힘든 시간들을 단지 순종하시려는 아름다운 마음들로 기도의 자리로 나아 오셨습니다.
새벽 2~3시를 파수하기 위해 교회에 미리 오셔서 쪽잠을 주무시며 참여해주셨고, 보이지 않는 작은 글자를 한 자라도 더 읽으려고 애쓰시며 전심으로 서 주셨습니다. 목사님을 비롯한 교역자, 장로님, 중고등부, 청년부 등 여러 분들이 만사를 제치고 참석하시고 작정시간외에도 또 오셔서 참여해 주신 덕분에 작정하신 시간보다 1.4배 많은 530시간을 채워주셨습니다. 이 기도의 성벽을 쌓아가며 믿음의 싸움을 하게 하셨습니다.
한 주간 530시간 동안 기도해
첫째, 느헤미야 기도책자를 받고는 말씀기도, 깨알 같은 본문들, 기도 인도자를 세우는 일이 난감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번 이집트 비전트립을 다녀오신 한 목사님이 기도자 3명을 데리고 우리 교회에 와서 1박 2일을 파수해 주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그것도 잠깐, 2박 3일 기도지원군으로 오기로 한 순회기도팀이 펑크가 났다는 것입니다. 주님, 또 이것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이 기도회를 허락하셨다고 믿었는데 사단은 저를 낙담시키려 애를 썼습니다.
이제는 두 손 놓고, 매일 매일 일용할 양식을 구하듯 기도자를 구하게 됐습니다. 스가랴 4장 말씀을 통하여 ‘스룹바벨의 손이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또한 그 일을 마치리라’ 말씀에 의지하여 나의 수준으로 일하는 기대를 버리고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을 주목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매일 기도지원군을 보내주셨어요. 문막에서, 시흥에서, 인천에서, 부천에서, 수유리에서 목사님, 선교사님, 청년 등이 오셨어요. 예상보다 풍성하게 140시간이나 넘게 채워주셨고, 금요일 밤에는 이제 그만오시라고 전화해야 될 정도였습니다. 선교완성을 위한 조건 없는 기도의 연합을 실제로 경험하게 됐습니다.
기도 자체가 선교라는 깨달음을 얻게 됐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심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일하심은 늘 모자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떡은 언제나 풍성하여서, 배불리 먹고도 12광주리나 남는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둘째, 얼마나 많이 참여하느냐 또 얼마나 은혜를 끼치느냐의 문제로 제 마음은 계속 요동을 쳤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토요일 아침시간,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통하여 세상의 가치로 수를 세고 줄을 세우려는 저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짧은 시간에 그 깨알 같은 글자를 더듬거리시는 노인 권사님을 바라보며 조급한 제 마음을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머리되신 교회의 몸들은 그 어떠한 사람도 약함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의 이러한 악함을 회개케 하셨습니다.
저는 이번에 교회에서 잠을 자며 기도하며 지냈는데, 흔치않은 기회가 나에게 주어지다니!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성전에 있다고 거룩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매 순간 십자가의 자리에 엎어져
주님께서 허물고 다시 세우시려는 성전처럼, 육체의 소욕이 매일매일 무너지고, 예수 생명 앞에 매 순간 십자가의 자리에 엎어지게 하셨습니다.
원수 사단은 우리를 낙담시키려 전력을 다했겠지만 설사 넘어져도 이제는 사단에게 더 이상 속지 않습니다. 그때마다 달려갈 곳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비밀 곧 승리의 법칙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하면 우리 수준이지만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의 수준으로 일하심을 경험하고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지금도 제 귀에는 기도시간에 낭랑하게 울려 퍼지던 찬양소리가 맴돕니다. 할렐루야! 주님이 하셨습니다!
강을수 장로(신림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