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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교회의 공동화(空洞化), 사회복음 선택한 교회의 오류

▶ 출처: Desiring GOD 캡처

우리나라는 물론 열방이 분열과 갈등으로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고 있다. 이때 교회가 서야할 자리는 어디이며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믿음의 선배로 지금도 많은 성도들이 귀 기울이고 있는 마틴 로이드 존스(1899-1981) 목사는 그의책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복있는사람 刊)’를 통해 교회의 설교가 그리스도를 놓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책의 내용 중에서 발췌, 요약한다. <편집자>

저에게 재미있게 들리기까지 하는 제안이 있습니다. 그것은 설교는 줄이고 다른 다양한 활동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런 제안을 아주 새롭게 여기면서, 설교를 비난하고 깎아내리는 것을 현대성의 표지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간단히 대답할 수 있습니다. 형태는 새로울지 몰라도 원리는 전혀 새롭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20세기는 이것을 특히 강조해 왔습니다.

복음의 사회적 적용에 대한 이 모든 새로운 관심, 즉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정치를 논하며 사회적 사안 등에 개입하자는 견해에 대해 한번 생각해 봅시다.

이에 대한 간단한 답변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에도 대부분의 서방 국가에서 이런 견해가 유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사회 복음’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지만, 그 내용은 지금의 주장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케케묵은 복음 설교는 너무 개인 중심이고 단순하며 사회 문제나 상황을 도외시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성경과 주님을 자유주의와 현대주의, 고등비평의 관점에서 바라본 사람들의 견해였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완벽한 인간이요 위대한 선생에 불과한 분으로, 정치적 선동가이자 개혁가이며 위대한 본보기에 불과한 분으로 보았습니다. 주님은 선을 행하러 온 인물이며 산상 설교는 법률과 규정에 포함되어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 가르침을 실천함으로써 완벽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오늘날 새로운 주장으로 간주되며 교회의 주된 임무로 간주되고 있는 내용은 사실상 20세기 초반에 이미 철저하게 시도된 것들입니다.

복음 설교는 케케묵었다?

교회 활동과 삶에 침투해 들어오고 있는 다양한 다른 매개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새로운 접근법으로 지지받고 있는 것들은 이른바 ‘복지시설 교회’가 이미 시험을 마친 것들이며, 그것도 상당히 철저한 시험을 마친 것들입니다.

교회 내에 각종 문화 단체들이 마련되었고, 교회는 사회생활의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여러 가지 이름의 운동경기와 모임들을 조직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1914년 이전에 이미 철저한 시험을 거쳤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시도들이 효과가 있었는지, 과연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물어볼 권리가 있습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그것이 전부 실패했다는 것, 완전한 실패작으로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상황은 자세히 모르겠지만, 영국과는 약간 달랐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국 교회들을 텅 비게 만든 책임은 대부분 ‘사회복음적인 설교와 복지시설 교회’에 있었다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무엇보다 큰 책임이 있었습니다.

교회의 사명이 단지 정치, 사회적인 개혁과 평화주의를 전하는 것이라면 굳이 교회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이 당연히 대두되었습니다. 그런 일은 정치 단체에서도 능히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 정당에서 그 일을 하고자 했습니다. 그것은 논리적으로 완벽한 수순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치명타를 맞았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의 주된 임무를 버리고 다른 일을 한다면, 아무리 그 동기가 순수하고 훌륭하다고 해도 결과는 이렇게 나타날 것입니다. 저는 그 동기를 의심하거나 비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런 이론이 추구하는 결과와 실제 결과는 사실상 상반된다는 점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저는 현대 사회가 이 모양이 된 책임의 상당 부분이 교회가 설교에서 떠나버린 데 있다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교회는 복음에 토대를 두지 않은 도덕과 윤리를 설교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경건이 없는 도덕을 설교했고, 결국 아무 영향도 끼치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시도는 아무 열매도 거두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거두지 못할 것입니다. 진정한 임무를 포기한 교회는 결국 인류가 자기 꾀를 좇아가도록 어느 정도 방치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교회의 부흥은 복음 선포에서

이 점에서 제가 예증하려는 또 하나의 주장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설교에서 돌이켜 이러한 수단들로 향하는 순간, 끊임없는 변화에 휘둘려 갈팡질팡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보고 흥분할 때 자신도 40년 전에 그랬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도 인기 있는 풍조나 유행이나 물결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합니다. 새로운 유행이 나타날 때마다 사람들은 크게 흥분하면서 이것이야말로 교회를 가득 채우는 방법이며 문제 해결 방책이라고 크게 선전합니다.

그렇게 너나없이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몇 년 후에는 또 전부 잊어버린 채 또 다른 물결, 또 다른 새로운 개념에 빠져듭니다. 누군가 필요한 한 가지를 생각해 내거나 현대인을 이해하는 심리적인 통찰을 얻으면 그것이야말로 최상의 해결책인 것처럼 저마다 그리로 달려갑니다. 하지만 그것도 금세 한물가 버리고 또 다른 유행이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이처럼 교회도 세상처럼 끊임없는 유행의 변화에 휩쓸린다는 것은 참으로 슬프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 와중에서 교회는 지금껏 그 영광이 되어 왔던 메시지의 지속성과 견고함, 안정성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사회 정치적 상황과 개인의 행복 등에 대한 관심이 좀 더 효율적으로 실행된 때는 교회가 부흥하고 개혁되며 진정한 설교가 선포되었던 때였습니다. [복음기도신문]

요약. 임치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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