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집으로 (5. 끝)
미국의 중국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동성애와 마약에 빠졌다가 하나님을 만나 회복된 아들 크리스토퍼 위안과 아들로 인해 자살이라는 극단적 결단을 앞두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 기도의 용사가 된 어머니 안젤라 위안의 수기 ‘다시 집으로’(대성출판사, 2017)를 요약, 소개한다. <편집자>
안젤라, “죄 사함을 받았도다”
크리스토퍼가 본격적으로 성경을 공부하고 싶다며 무디 신학교의 정보와 입학원서를 구해달라고 전해왔다. 내년 7월이면 출소였다. 아들이 이렇게 변화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과연 무디신학교에서 수감자의 원서를 받아줄까? 그즈음 남편과 나는 댈러스에서 열리는 한 선교대회에 참석했다.
실수로 강연자가 앉는 주빈테이블에 앉아 당황했는데, 옆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다름 아닌 무디신학교 총장 조 스토웰 박사였다. 실수였지만 분명 우연은 아니었다. 강연 중 하나님께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리고 스토웰 박사가 강연을 마치고 왔을 때 물었다. “무디에서는 죄인도 받아주나요?” 크리스토퍼의 과거와 현재 상황을 간략히 말했다. 박사가 물었다. “아드님은 죄 사함을 받았나요?” 내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네. 제 아들은 죄 사함을 받았어요.”
크리스토퍼, “거룩한 푯대”
복역한 지 21개월이 지났다. 형기를 마치려면 15개월을 더 복역해야 하지만, 모범수로 지낸 덕분에 5개월이 더 줄어들었다. 나는 성경을 읽을수록 하나님이 나를 무조건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나 동성애에 대해 성경이 어떤 판결을 내리고 있는지도 자세히 알고 싶었다. 동성애를 정당화하는 구절을 찾으려고 성경에 있는 모든 장을 한 절도 빠짐없이 정독했다.
하지만 단 한 구절도 찾지 못했다.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하나님을 버리고 동성애와 성욕에 이끌려 살든지, 아니면 감정의 지배에서 벗어나 동성애를 포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든지 둘 중 하나였다. 내 갈 길은 분명했다. 나는 하나님을 선택했다. 나는 오랫동안 게이로 태어났다고 믿고 살았지만, 성경을 읽으면서 비로소 내 정체성은 ‘동성애자’ 혹은 ‘이성애자’와 같은 성적 지향으로 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내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었다. 동성애의 반대는 이성애가 아니라, 거룩함이었다. 즉, 거룩함을 푯대로 삼아야 한다.
그렇다면 동성애 감정이 사라지지 않고 나를 계속 짓누르는 상황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투항해 그분 말씀에 복종하고, 그리스도를 기꺼이 따를 것인가? 복음을 접하고 나서 나는 줄곧 이 문제를 점검하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내게 꼭 필요한 한 분이 있다. 바로 예수님이다. ‘주님, 당신 한 분으로 충분합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당신뿐입니다.’
2001년 2월. 시카고의 재활시설로 거처를 옮겼다. 교도소 생활은 사실상 끝난 셈이었다. 자유인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7월까지 남은 형기를 채우면 된다. 부모님과 함께 시카고 교외에 있는 집에 도착하는데, 벽면 여기저기에 노란 리본이 100개도 넘게 매여 있었다. 현관에서 노랫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형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재소자를 기다리는 연인이 마당에 있는 나무에 한가득 노란 리본을 매어둔 가슴 뭉클한 사연의 “오래된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줘요”라는 노래였다.
리본마다 나를 위해 기도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더 이상 눈물을 참기가 힘들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를 사랑했다. 어머니가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나를 껴안았다. “크리스토퍼, 집에 온 것을 환영한다.” 어머니의 여정이 나의 여정만큼이나 길고 고통스러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집에 왔어요. 엄마, 제가 집에 왔어요.” 탕자와 같이 머나먼 이국에서 오랫동안 방황하던 나는, 마침내 집에 돌아왔다.
그 뒷이야기
2001년 7월, 공식적인 형기를 마친 나는 무디신학교에 정식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4년 뒤에는 음악과 성경언어 연구로 신학학사 학위를 받고, 휘튼대학원에 진학해 성경주해 석사과정을 밟았다. 졸업할 때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성생활과 HIV바이러스 및 에이즈를 주제로 강연하는 사역에 나를 부르셨다.
강연은 차츰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4개 대륙까지 확대되었다. 나는 이 일을 몹시 사랑했다. 부모님은 나의 중보자이자 동역자로 수차례 함께 강단에 섰다. 하나님은 내가 버틸 수 있도록 내 몸을 지켜주신다. 내 생명은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달려 있다. 지금도 출소하던 날을 떠올리면 하나님과 부모님의 자비로운 사랑이 나를 감싼다. 이제 나에게는 언제든 돌아갈 집이 있다. 이 이야기의 진짜 주인공이신 주 예수님께 감사드린다. <끝> [GN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