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이야기 (16)
17년여 전, 나는 처음으로 끄리띠(Κρήτη 그레데) 섬에 갔다. ‘그리스 이야기 (10)-니꼬뽈리’ 편에 나왔던 한국의 C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학자이자 목회자인 H 목사님과 함께였다. 우리는 테살로니키에서 비행기를 타고 끄리띠의 이라끌리오(Ηράκλειο)에 도착했다. 이라끌리오에서 미항(깔리 리메네스 Κάλλυ Λιμένες)으로 가는 길에 디도가 사역했던 고르띠나에 들렀다. 마침 대학 고고학팀이 한창 발굴 중에 있었다. 지도교수는 우리를 환대하며 그들이 준비한 점심을 함께 먹었다. 그리고 디도와 크레타의 역사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띠또스(디도Τίτος)와 고르띠나(Γόρτυνα).
디도를 초대 감독으로 임명한 사람은 사도 바울이었다. 디도는 복음 전파에서 사도 바울이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이자, 동역자였다. 그는 크레타 지역의 복음의 광범위한 확산을 위해 교회를 개척하고 일꾼(장로)들을 세웠다. 바울 사도가 생각하고 계획한 일을 그는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진행한다. 이곳 전승에 의하면 사도 바울은 두 번 크레타를 방문했다고 한다. 60년 로마에 재판을 받으러 가는 동안, 그가 여행하고 있던 배가 악천후로 인해 라세아(Lasea)와 가까운 미항에서, 그리고 두 번째는 로마에서 자유의 몸이 된 후에 디도와 함께 이곳에 왔다. 그 때 바울 사도는 디도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하고 떠났다. 디도는 처음에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바울 사도를 만난 후 그를 끝까지 돕는 충실한 제자가 되었다. 바울의 말이라면 달마시아까지 갈 정도로 그는 충직했다. 그리고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문제로 가장 힘들어 할 때 앞장서서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기도 했다. 크레타는 가장 사역하기 어려운 현장이었다. 이곳에 초대 주교로 디도를 파송했다는 것은 그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인가를 가름 할 수 있다.
크레타는 올림퍼스 신족의 아비인 제우스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는 신화의 고향이다. 그리고 당시 이곳에 살던 유대인들은 전통적 유대주의로 무장한 사람들이기에, 바울은 자기의 속마음까지 읽을 수 있는 디도를 이곳으로 파송한 것이다.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료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고후 8:23)
고르띠나는 디도가 사역을 한 곳이다. 그리고 그는 이곳에서 죽었다. 그의 무덤은 훗날 교회가 세워졌다. 이 도시가 황폐해지자 디도의 무덤을 현재 자리인 이라끌리오로 이장했다. 현재 고르띠나에는 허물어진 교회의 외부의 모습만 남아있다. 이 건물 중앙에는 디도의 초상화가 놓여있어서 누구나 이곳이 디도 교회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정말 크레타 사람들은 거짓말쟁이인가?
크레타 사람들은 거짓말쟁이라는 말 때문에, 오늘의 크레타 사람들까지도 매우 힘들다고 한다. 할 수 만 있다면 디도서를 자세히 읽기를 원했다.
크레타는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에 교회는 빠르게 부흥한다. 왜냐면 바울은 같은 민족 구원을 우선적으로 두었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좇지 않게 하려 함이라”(딛1:14)
이것은 ‘그리스신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탈무드의 인간이 만든 모든 것에 대한 규칙의 전통을 강조하는 유대인들에게 하는 말이다.’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다만 12, 13절에 “그레데인 중에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장이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라 하니 이 증거가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저희를 엄히 꾸짖으라“. 모든 크레타 섬 사람들은 거짓말쟁이이다.
이 말은 기원전 6세기 사제이자 철학자인 에피메니데스(Ἐπιμενίδης)가 한 말이라고 한다. 크레타 섬사람들은 ‘제우스가 크레타에서 태어나고 죽었다고 주장했으며 심지어 그의 무덤이 있다’고 했다. 이것은 제우스를 불멸의 존재로 여겼던 에피메니데스와 다른 그리스인들에게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기원전 3세기 그리스 시인이자 철학자 칼리마쿠스(Καλλίμακος)가 제우스에게 올리는 찬송가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크레타 섬사람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들이니, 신의 왕이여, 그들이 죄를 지었고, 당신이 죽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당신이 불멸이심이라“ «Οι Κρήτες είναιπάντα ψεύτες, Βασιλιάς των θεών, αμάρτησαν. Δεν είσαι νεκρός, γιατί είσαι αθάνατος». 원래 신화로 시작된 크레타 섬의 명예 훼손은 시간이 지남
에 따라 전통이 되었고 사도 바울도 인용할 정도로 후대의 많은 중요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최근 크레타 지역신문에 기고된 일리아스(Ηλίας)ㅜ교수의 말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속담에 대해 바울을 탓하고 싶다면, 먼저 에피메니데스와 에피메니데스에게 영감을 준 고대인들을 비난하여, 이 속담을 말하게 하면 좋겠다.” 라고.
바울 사도가 겨울 나기를 원했던 ‘미항’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고 했던가? 너무도 힘들게 찾아왔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작고 초라했다. 라세아(Λασαια)성 유적지는 작은 흔적과 유적지라는 푯말이 없었으면 그냥 지나칠뻔 했다. 내 기억 속에 미항은 몇 호 살지 않는 작은 해변마을이었다. 변변한 식당도 없었다. 그나마 미항 앞쪽에는 유류 저장고처럼 보이는 탱크가 몇 개 있는 작은 섬은 길게 놓여 있어, 천연적인 방파제처럼 보였다. 바울 사도가 생각한 것처럼 겨울의 파도가 넘을 수 없는 아늑함과 안전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을을 가로질러 언덕에 보이는 바울 기념교회로 올라갔다. 잠겨진 문 때문에 안을 볼 수는 없었다. 조금 떨어진 등성이에 생각지 못했던 나무 십자가가 세워져 있는 아주 작은 동굴을 찾을 수 있었다. 이곳 전승에는 이곳이 사도 바울이 기도하던 곳이라고 했다. 나 역시 조용히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이곳의 초라함에 실망한 내가 몹시도 부끄러웠다. 로마로 가던 사도는 이곳에서 겨울을 나고 따듯한 봄에 가기를 주장했지만, 선주와 선원들은 미항보다 크고 더 세련된 피닉스 항으로 가자고 주장했던 것이다. 아마 그 때도 사도는 이곳에서 이 문제를 놓고 기도했을 것이다.
바울의 쉰 음성이 귓가에 들리는 것 같은 환청에 나는 다시금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복음기도신문]
김수길 선교사 | 총신 신학대학원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후 GMS 선교사로 27년간 그리스에서 사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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