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증인의 삶을 위한 두 싸움…주님의 승리에 믿음으로 참여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고후4:7)
이해 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주님의 그 크신 은혜로 말미암아 깨어져 쓸모없는 질그릇 같은 내게 이 귀중한 보배를 안겨 주시다니!
자다가 깰 때면 이 감격이 벅차올라 가슴이 울렁 거릴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로 베풀어주신 이 보배를 지키고, 복음을 영화롭게 하는 증인의 삶을 산다는 것은 그렇게 만만치가 않습니다. 어두움의 권세가 주관하는 이 세상이나, 주위 환경들, 그리고 내 속에 아직도 잔존하는 육적 정욕과의 싸움은 선한 싸움인 동시에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하는, 물러설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치열한 영적전쟁 그 자체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엡6:12)” 물론 사단의 세력은 주님께서 이미 십자가상에서 그 권세를 깨뜨렸기 때문에, 주님 편에 서있는 우리들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고, 또한 승리 해야만 되는 영적전쟁이라 염려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때때로 “예수 믿고 구원 받으면 하나님의 은혜로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행복한 삶을 살게 해 주시려고, 저주와 고통의 십자가를 친히 지셨기 때문에, 고난 당할 필요가 없다”는 잘못된 신앙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소위 세상이 추구하는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부족한 때문이라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그럴듯하고 타당성 있는 것같이 들립니다.
문제는 어떤 행복을 추구하느냐 하는 것이지요. 소위 세상에서 말하는 소원성취, 문제해결 성공복음을 통해서 얻으려고 하는 행복이라면,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과 무엇이 다르단 말입니까. 이것은 세속주의 신앙이요, 자아추구적 잘못된 신앙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수 없도다 (롬8:18)”
믿는 자들을 핍박하기 위해서 청년 사울은 길을 떠납니다. 다메섹으로 향하는 길에 그는 강한 빛 가운데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복음 앞에 굴복하고, 복음의 사람 바울로 변화됐습니다. 그 이후의 삶은 오직 복음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고난과 고통의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수고도 넘치도록 하고, 여러 번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고, 온갖 위험과 목마르고, 굶고, 춥고, 헐벗었습니다.  이것도 모자라서 주님께서 허락하신 사단의 가시를 몸에 지니고 평생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결코 낙심하거나 고난을 피하거나, 복음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역을 포기한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고통스런 로마의 옥중에서 바깥 세상에 있는 빌립보 교회를 향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4:4)”고 외칩니다. 이 외침은 세상이 알 수도 없고 세상이 줄 수도 없는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하늘의 평안과 기쁨이 넘쳐흐르는 승리의 개가였습니다. 누가 고난당한 사도바울이 불행했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가장 복 받은 사람이요 진정으로 평강을 누린 사람이었습니다.
복음을 영화롭게 하는 증인의 삶을 살기 위해, 저는 피할 수 없는 두 가지 싸움에 직면했습니다. 첫째는 악한 영들이 주관하는 이 세상과의 싸움입니다.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복음의 영광의 빛을 드러내야 했습니다. 낮아지고, 버리고, 약해져야만 하는 이상한 전쟁입니다. 마침내 깨닫게 되는 것은 내 능력으로 하는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친히 하시는 전쟁이었습니다.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하)” 예! 맞습니다. 주님이 승리하셨기 때문에 나도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제 자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가장 무서운 적은 내 안에 잔존하는 타락한 죄악성과의 싸움입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히12:4)” 이 싸움은 피흘리기까지 쉬지 않고 날마다 치러야 하는 싸움이며,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한 전투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 (벧전1:16)”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벧후3:11,12상)”
때로는 곤고하고, 심령이 상합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주님께서 찾아 오셔서 위로해 주시고, 새 힘을 주셔서 기쁨과 평강을 경험합니다. 십자가 복음의 능력을 믿
고 죄와 싸우면 주님께서는 죄를 이길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또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인내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였으므로 (딤후4:7,8상)”
저도 주님 앞에 서는 날 사도 바울같이 믿음의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도록, 부족하지만 오늘도 내일도 주님 오시는 날까지 푯대를 향해 싸우며 달려갈 것입니다.

김선주 장로
(대조제일교회.AFCM선교회)

*필자는 정년퇴직 후 이주민 선교단체인 AFCM선교회에서 이주민의 국내 정착을 지원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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