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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요나 칼럼] 요-‘나’의 소리

AI제작. DALL-E

소리전쟁 4

요-‘나’ 바이러스

대학교 1학년 가을, 친구 따라 여수 애양원이라는 곳에 처음 가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주님을 만나게 된 계기로 인해 나의 삶은 급작스러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신앙 공동체에 들어가 제자의 삶을 배우며 훈련을 받게 되었다. 그러던 중 생애 처음으로 단기 선교를 일본이라는 나라에 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가기 싫고, 마음에 내키지 않았던 나라가 일본이었는데,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가 되니 일본이라는 나라와 그 땅에 살고 있는 영혼들이 너무나 불쌍해 보였다.

“가장 가깝고도 먼 나라가 일본이 아니던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한-일전(예. 축구, 야구, 배구 등)’이 있는 날이면, 온 나라가 떠들썩하고 집, 공원, 그리고 다른 장소에서 목청껏 ‘대.한.민.국’을 외치며 응원하기도 했다. 다른 나라한테 지는 것은 별 문제가 안되었지만, 일본에게 지는 날이면 다음날 신문과 인터넷에 수 많은 기사들이 도배가 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선지자 요나에게 있어서 일본은 어디일까 생각을 해 보았다. 철저한 민족주의자요, 배타적 선민사상을 가진 요나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부르심 속에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외치라는 소명을 받는다. 마치, 한국 선교사가 일본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내가 가려고 하는 나라로부터 심각한 피해와 모욕과 수탈을 당했다면 소명은 둘째 문제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으로 그 나라가 망하고, 쫄딱 망하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원했던 사람이 바로 요나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나가 하나님께 보였던 반응과 태도를 나는 인간적으로 좋아한다. 꾸미지 않고, 가식적이지 않고, 속에 있는 모습 그대로의 요나 모습에 나는 끌리곤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런 사람도 사랑하시는구나!”
“하나님은 이런 선지자도 사용하시는구나!”
“하나님은 한다면 하시는구나!”
“하나님의 선교는 나의 어떠함이나 약점에 제한을 받지 않으시는구나!”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서 전무후무한 말씀 부흥 집회를 한 뒤에, 회개의 기도를 드리며 조금 바뀐 모습으로 일어나 니느웨 성읍에 들어가 ‘회개의 메시지’를 전한다. 물론,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큰 성읍이었으나 그는 ‘하루 동안’만 다니며 나름의 최선(?)을 다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요나서 3:1-3)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사람이든 짐승이든 다 굵은 베옷을 입고,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게 되자,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사 재앙을 내리지 않으신다. 요나가 참으로 변화 받은 사람이었다면, 그의 첫 반응은 무척 기뻐하며 ‘할렐루야!’를 외쳐야 했으나, 그의 첫 반응은 ‘매우 싫어하고 성을 내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심판을 받고 재앙을 받아 폭싹 망해야 하는데 망하지 않은 모습에 분노가 일어난 것이다. 그들이 회개해서 돌이키는 모습보다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의 잔이 부어져서 멸망하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던 요나였다.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요나서 3:10-4:1)

요나: “아,..하,..내 이럴 줄 알았어!” (요나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

요나: “분명 그들이 회개하고 돌이키면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지 않을꺼야! 빨리 다시스로 도망을 쳐야 해.” (요나서 1장 3절에서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갈 때 가졌던 생각)

요나: “날 죽이세요! 내가 살아서 뭐 합니까?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해서 심판을 받지 않는 것은 내 두 눈으로 차마 못보겠습니다. 날 죽이세요! 니느웨 성읍에 사는 사람들을 다 죽이시든지 저를 죽이시든지 한 가지만 하세요!”

하나님: “너 왜 그렇게 성질을 내고 있니?”

요나: “왜요? 제가 성질 내면 안됩니까? 제가 성질 내겠다는데 무슨 문제 있어요?”

요나: “아 하,.니느웨 성읍이 빨리 망해야 하는데, 별 일 없나?”
요나: “휴,.근데, 날씨 참 덥다. 아 머리 뜨거워.”

그렇게 성질을 내는 요나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박넝쿨을 준비해서 요나를 가리게 하시고,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을 만들어 주신다.

“당신은 이런 하나님이 이해가 되는가?”

우리 같으면 박넝쿨이 아니라, 해를 더 뜨겁게 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고 성질만 지독하게 피우는 요나 선지자의 머리에 쪼이고 싶을 텐데, 하나님은 요나의 머리에 그늘을 지게 하사 괴로움을 면하게 해 주신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요나서 4:6)

요나: “할.렐.루.야! 역시, 하나님은 내 편이야.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이셔.” 그런데 하나님은 벌레를 준비해서 박넝쿨을 갉아 먹게 하시고, 해가 뜰 때 뜨거운 동풍을 불게 해서 박넝쿨을 시들게 하신다.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요나서 4:7-8)

뜨거운 해가 요나의 머리에 쪼이게 되었을 때 그는 다시 한번 뜨거운 성질을 낸다. 아마 요나 선지자의 별명이 있었다면 ‘뜨거운 형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정말 놀랍고 두려운 사실이 여기에 숨어 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큰 물고기, 박넝쿨, 벌레 그리고 뜨거운 동풍은 하나님이 명하신 그대로 순종했는데 하나님이 부르신 선지자 요나는 스스로 죽기를 구하고 있으니 참으로 기가 막힌 상황이 아닌가?

하나님: “큰 물고기! 요나를 삼키거라.” (요나서 1:17)
큰 물고기: “네, 알겠습니다.”
하나님: “박넝쿨! 요나의 머리 위에 그늘이 지게 하라.” (요나서 4:6)
박넝쿨: “네, 알겠습니다.”
하나님: “벌레! 새벽에 박넝쿨을 갉아 먹으라.” (요나서 4:7)
벌레: “네, 알겠습니다.”
하나님: “동풍! 뜨거운 바람이 불어오게 하라.” (요나서 4:8)
동풍: “네, 알겠습니다.”
하나님: “요나!”
요나: “차라리 나를 죽이세요!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것이 낫습니다!” (요나서 4:8)
하나님: “이 박넝쿨로 네가 성질을 내는 것이 합당하니?” (요나서 4:9)
요나: “당연하지요. 내가 내 성질에 못 이겨 죽는다 하더라도 옳습니다!”(요나서 4:9)
하나님: “내가 너를 아끼고, 사랑하고, 돌보는 것처럼 이들 또한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는데 내가 아끼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요나서 4:11)
요나: “할 말 없습니다.” (요나서 4:12)
요나서 4장 12절은 성경에 없다! 왜냐하면, 니느웨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된 요나가 더 이상 말대꾸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 “사랑하는 아들아! 딸아! 내가 너를 통해서 하고 싶었던 선교는 니느웨에 있는 백성들을 구원하는 것 뿐만 아니라, 나는 ‘너부터 먼저’ 선교하고 싶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보다 더 무서운 바이러스를 여기서 보게 된다. 모든 피조물들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엎드리고, 하라고 명한 그 일에 온전히 순종한다. 그러나 요-‘나’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 우리 인간은 철저히 ‘나’ 중심성을 놓지 못하고, 내가 원하고 바라는 일들이 되어야만 기뻐하고 만족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는 것도 조심해야 하겠지만, 요-‘나’ 바이러스에 이미 감염이 되어서 모든 것을 철저히 ‘나’ 중심으로 생각하고, ‘나’를 위해서 살고, ‘나’만의 행복과 만족감을 위해 살려는 못된 심보를 오늘도 십자가 무덤으로 가져가야 한다. 거기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해서 그분의 영으로 살아내는 참된 신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소리전쟁(엎드림출판사)>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최요나 선교사 | 총신대 신학대학원 졸. 국제오엠 이스라엘 소속. CCC와 YWAM 예배인도자와 순장으로 사역. 저서 <네가 나의 영광을 짓밟았다>(규장 간, 2020)에 이어 최근 그동안 우리가 놓치고 살아왔던 ‘하나님의 소리’를 갈구하는 마음으로 2023년 11월 <소리전쟁(엎드림출판사)>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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