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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GTK 칼럼] 여러분의 목사님은 강해 설교자입니까? (상)

사진: Unsplash의 童 彤

“네 양을 먹이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날, 예수님은 자신을 세 번이나 부인한 제자 베드로를 십자가 위에서 바라보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눈이 마주친 그 순간 완전히 무너졌습니다(눅22:61).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아마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심히 통곡했습니다(눅22:62).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했기에 처절하게 회개했고, 그런 베드로를 창세 전부터 먼저 사랑하신 예수님(요일4:19)은 당신의 사랑하는 제자를 다시금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 15절 이하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조반을 드시고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물으셨습니다(요21:15-17). 구렁텅이로 빠졌던 베드로를 용서하고 회복시켜 주시며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은 “네 양을 먹이라”(요21:17)였습니다.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는 것, 그들을 먹이고 인도하는 것,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주신 목회자의 가장 주된 사명입니다.

양 무리의 양식

그렇다면 목회자가 양 무리를 먹이는 주된 양식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이외에 어떤 것으로 하나님의 양 무리를 먹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호흡을 불어넣으신(God-breathed)성경 말씀은 한 점의 오류도 없으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딤후 3:16-17).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며, 그 진리의 말씀이 우리를 죄와 분리되는 성화로 이끌어 줍니다(요17:17). 모든 신실한 목회자들의 말씀 선포는 이 진리의 뿌리 위에 기반을 두어야 합니다.

말씀을 전파하라!

그렇다면 하나님의 양 무리를 먹이고 인도하기 위해서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바로 깨닫고 선포하는 것이 목회자들의 가장 중요한 책무가 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사역을 하고 있는 그의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아래와 같이 명령합니다.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딤전4:13)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딤후4:2)

종교개혁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다시금 회복이 되었고(Sola-Scriptura:오직 성경),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 공예배의 큰 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설교시간은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물론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말씀의 의미를 우리에게 조명하여 주시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교회에 말씀을 전하는 신실한 교사들(목회자)을 두셔서 우리가 말씀의 의미를 좀 더 깊이 그리고 올바르게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가장 합당하고 그분의 뜻을 이루는 것일까요?

말씀 전파의 방법

신약성경에는 ‘말씀을 전파하다’ κηρύσσω (Kerysso, 케루소, I preach, I proclaim)라는 가장 일반적이고 빈번히 사용되는 헬라어 단어 말고도 총 33개의 다른 헬라어 동사로 하나님의 말씀이 소통되고 선포되고 가르치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먼저 주로 ‘전파하다’ 라고 번역된 헬라어 동사 κηρύσσω (Kerysoo)는 일반적으로 복음서와 사도행전 그리고 서신서에서 두루 쓰이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대표적으로 세례 요한(마3:1), 예수님(마4:17), 그리고 사도 바울(행28:31)에 쓰였습니다. 또한 위에 디모데 후서 4장 2절의 말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에도 이 동사가 쓰였습니다.

또 ‘복음을 선포하다’ 라는 의미의 동사 εὐαγγελίζω (euaggelizo)가 있습니다. κηρύσσω (Kerysoo)와 번갈아 가면서 쓰입니다.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행15:35)

또 중요한 동사로 ‘가르치다’ 라는 의미의 동사 διδάσκω (didako)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 제자들에게 대사명을 주시며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라고 명하셨습니다(마28:20). 또한 사도 바울도 디모데에게 계속해서 가르치라고 권면합니다(딤전6:2, 딤후2:2). 가르치는 내용과 그 중심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도(마22:16),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행18:11).

위에 동사들 이외에 다른 모든 동사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발견하게 되는 하나의 공통점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자의 메시지의 전적인 중심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성경적인 토대를 가지고 오늘날 어떤 형태와 방법으로 설교가 전해져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참고: Richard L. Mayhue, Rediscovering Expository Preaching)

강해 설교(Expository Preaching)란?

오늘날의 목사님들의 설교의 방법과 그 종류를 찾아보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합니다. 대표적으로 사람들에게 많이 익숙한 주제설교(Topical Preaching)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기쁨’이라는 주제를 먼저 정해 놓고 기쁨과 관련된 성경 구절을 쭉 나열하면서 설교하는 방법입니다. 본문설교(Textual Preaching)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본문의 용어나 대략적인 내용을 가지고 설교자가 이야기하려는 주제의 통로로 사용하여 설교하는 방법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중심이 되지 않은 이야기 설교나 경험 설교, 간증 설교 등이 있습니다. 위에 방법 모두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고 깨닫고 설명하고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에 강해 설교는 본문 구절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집중합니다. 본문 구절에서 말씀의 수신자, 즉 원독자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찾고 설명하는 것이 강해 설교의 목적입니다. 영어 단어 ‘Exposition’의 사전적 정의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쉽게 강해 설교를 이해하는 것은, ‘성경 말씀의 의미를 올바로 찾아 풀어서 설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설교자가 얘기하려는 주제나 간증이 설교의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가, 그 의미가 설교의 중심이 되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분의 양 무리를 먹이고 인도하는 목회자에게 요구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물론 강해 설교 방법도 본문의 의미에 집중한다면 어떤 신학적인 교리나 주제, 혹은 인물 설교 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의 강해설교

‘설교의 대가’ 하면 누가 제일 먼저 떠오르십니까? 지구상의 그 어떤 설교자 보다 뛰어난 설교자는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강해 설교의 모델을 보여주셨을까요? 제일 처음 주일 설교를 예수님께서 하신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그날’(눅24:13)에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두 제자에게 나타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길에서 동행하셨지만 성경 말씀은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했다고 말씀합니다(눅24:16).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 두 제자에게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24:27)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은 무엇인가요? 바로 그 당시에도 존재했던 구약 성경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에 나타난 그리스도 자신에 관한 말씀을 풀어서 자세히 강해(Exposition)해 주셨습니다. 그 제자 둘은 나중에 영적인 눈이 뜨이고 이렇게 서로 얘기합니다,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눅24:32) 이것이 바로 최고의 강해 설교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날(주일), 첫 번째 주일 설교입니다.

사도 베드로와 예수님의 제자들은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 충만함을 입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의 베드로의 오순절의 설교는 또한 강해 설교의 표본이 됩니다. 요엘서를 시작으로 시편의 말씀을 인용하여 그 뜻을 청중들에게 풀어(Exposition) 줍니다.

초대교회 7집사 중 하나였던 빌립은 어떻습니까? 잘 아시다시피 사도행전 8장에서 빌립은 광야에서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납니다. 놀랍게도 이 내시는 수레 안에서 메시야의 예언을 기록한 이사야서 53장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 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7) 그리고 빌립에게 묻습니다.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행8:34) 내시는 이사야서를 읽었습니다. 하지만 이해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이사야가 가리킨 이 예언이 도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이때 빌립은 이 말씀의 의미를 강해(Exposition)합니다.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행8:35) 결과는 어땠습니까? 내시는 바로 그 즉시 빌립에게 청하여 세례를 받았습니다(행8:36).

신실한 목회자들이 정의하는 강해 설교

여러 신실한 목회자들은 강해 설교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설교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에 의해서 선포되는 신실하고 공적인 성경 말씀의 풀이이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심판과 은혜의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신다” – 존 칼빈 (John Calvin)
“강해 설교는 성경 본문의 의미가 설교의 중심 주제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강해 설교가 항상 모든 성경의 각 책들을 한 구절 한 구절 다 설명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강해 설교가 주제별 설교를 완전히 유효하지 않은 설교로 치부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강해 설교가 연속된 강의 형태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강해 설교의 주된 목적은 말씀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는 것이다.” – 마크 데버 (Mark Dever)
“강해 설교가 진정한 설교의 본질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열어서 그 진리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며,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고, 하나님의 뜻이 순종된다” – 스티브 로슨 (Steve Lawson)
“한 점의 오류도 없는 성경 말씀을 논리적으로 설교하는 유일한 방법은 강해식으로 설교하는 것이다. 강해 설교를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 속에 의도하신 정확하고 온전한 의미가 드러난다. 강해 설교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매개자인 설교자의 입술을 통하여 선포되는 것이다” – 존 맥아더 (John MacArthur)

강해(Expository)와 설교(Preaching)의 불균형

강해 설교는 단어 두 개의 조합입니다(Expository + Preaching). 앞의 Expository(강해)는 형용사로서 명사인 Preaching(설교)을 꾸며줍니다. 그러므로 강해 설교는 설교의 한 종류를 의미합니다. 요즘 강해 설교의 중요성과 관심이 뜨거운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반면에 강해 설교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거나 강해와 설교의 두 요소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너무 강조된 강해(Exposition) – 강해 설교에서 강해의 요소가 너무 지나치게 압도하다 보면, 자칫 신학교 강의 같은 설교가 될 수 있습니다. 강해 설교는 주석집을 그대로 낭독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본문에서 개념을 찾아내는 것도 올바른 강해 설교가 아닙니다. 또한 강단에서 말씀을 한 구절 한 구절 주해(exegesis)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그것 또한 올바른 강해 설교가 아닙니다. 물론 올바로 말씀을 주해(exegesis) 하는 것이 강해 설교 준비의 첫 시작이지만, 설교적인 메시지로 그 의미가 전달이 되지 않는다면 단지 책을 읽는 수준의 설교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알맹이 없는 설교(Preaching) – 여기 아주 뛰어난 웅변가 같은 설교자가 있습니다. 좌중을 압도하는 힘과 카리스마가 넘칩니다. 열정이 있습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도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메시지가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지 않거나 말씀의 의미가 피상적으로 전달이 된다면 그 설교는 말 그대로 앙꼬 없는 찐빵, 속 빈 강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강해가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의미를 풀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설교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설교하면 지루하고 따분한 것을 떠올리기 쉬운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설교 안에는 권고와 꾸짖음, 열정, 촉구, 도전, 설득, 선포, 초대 등 많은 다이내믹한 요소들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의 의미를 정확하고 올바르게 파악하고 그 말씀의 메시지를 설교의 요소를 담아서 담대하게 선포하는 것, 이 두 가지의 요소가 조화를 이룰 때, 더 큰 시너지 효과가 일어날 것입니다.

To Be Continued…

살펴본 것과 같이 하나님의 양 무리를 맡은 목회자에게 요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그분의 양 떼에게 공급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서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최대한 정확하게 올바르게 전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이 의무에서 어떤 목회자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디모데후서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딤후2:15)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고 온전히 전달하는 설교 방법은 강해 설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방식의 설교를 주로 듣고 계시나요? 강해 설교 이외의 설교 방식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주로 들으시는 설교 방식이 주제 설교나, 본문, 간증 설교 위주라면 영적인 성장을 위해 조금 더 말씀의 의미를 설명하는 강해 설교를 더 많이 들으시기를 추천합니다. 또한 단순히 수동적으로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말씀에 반응하고 묵상하면서 설교를 들으시길 바랍니다. 노트에 요점을 받아 적으면서 설교를 듣는 방법도 좋은 설교 듣기의 한 방법입니다. 설교자의 단 한 가지 목적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선포되는 말씀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된다면 설교시간이 더욱 생동감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강해 설교의 신학적인 이유와 강해 설교가 회중들에게 주는 유익에 관해서 알아보고 글을 맺겠습니다. [복음기도신문]

박성준 전도사 | 2021년 미국 마스터스 신학교(The Master’s Seminary) M.Div 졸업. 현재 구리시 갈매동 새삶침례교회에서 중고등부와 청년회 전도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가족은 아내 희은 자매와 아들 은성이가 있습니다.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내 손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제보 및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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