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기독교(35)
기독교 작가라고 잘못 알려져 있는 레프 톨스토이는 엄밀히 말해서 기독교와 아무 관련이 없다. 그는 마음껏 세상을 누리고 즐기며 살다가 50세의 나이가 되어서 극적으로 회심하는데, 이 회심은 하나님 앞으로의 회심이 아니라 자기 양심으로의 회심이었다. 그는 자기 집의 농노들에게 자유와 토지를 주고, 평화와 청빈을 실천하는 인물로 바뀌었는데, 그의 이러한 모습은 기독교의 가치와 매우 비슷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독교적 가치를 추구한 작가로 인식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기독교가 아닌 자기 나름의 박애주의, 즉 톨스토이교를 주창했을 뿐이다.
그의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은 다음의 말로 잘 증명된다. “기독교인들은 야만적인 최면술과 기만 속에 있으면서, 자기들이야말로 진실한 종교의 파악자라고 자만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그의 반(反)기독교 사상은 당시 러시아정교와 갈등을 빚어 결국 톨스토이는 교회의 가장 강력한 징계인 파문을[1] 당하고 말았다. 객관적으로 말해, 그가 파문당한 것은 한편으로, 선행에 의한 구원이라는 그의 비성경적 가르침에 대한 단죄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 종교 귀족으로 군림하던 교회 지도자들을 향한 그의 비판에 대한 보복이었다.
톨스토이처럼 도덕과 윤리를 중요시하며 성경의 비합리적인 이적 기사(奇事)들을 인정하지 않았던 인물로 토마스 제퍼슨이 있다. 미국의 헌법과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미국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은 예수의 기적과 부활을 신화라고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예수의 역사적 행적에 관심이 많던 그는 사복음서에 나타난 신학적 요소들을 후대에 의한 첨가물로 취급했다. 제퍼슨은 자신이 이성적으로 수용하기 힘든 내용을 조작된 신화로 규정하고, 그것들을 삭제한 성경을 사용했다.
다시 말해,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예수 사후(死後) 신화적 요소를 가미(加味)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예수의 부활은 물론 복음서에 나온 이적들 역시 이성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오직 고결한 도덕과 희생적 윤리만이 예수의 진짜 모습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기독교야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타락한 시스템이라며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러한 주장을 담은 그의 저서가 바로 『나사렛 예수의 철학』이다.[2]
이것은 예수를 단순히 사상가나 철학가 정도로 취급한 반(反) 기독교적 계몽주의 사조가 이미 18세기에 미국에서 자리 잡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아인슈타인과 린위탕, “심판과 지옥을 믿을 수 없다”
과학 역사상 최고의 물리학자로 손꼽히는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유대인으로서 유대교를 배웠고, 유럽인으로서 기독교를 익혔다. 그러나 그의 신관(神觀)은 결코 성경적 신관이 아니다. 그는 스스로 “스피노자의[3]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했는데, 이는 우주 원리로서의 하나님을 믿는다는 의미다. 그는 세상의 질서와 우주적 절대 원리는 인정했지만 인격적인 하나님은 거부했다. 과학자답게, 증명이 안 되는 것은 인정하지를 않았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성경의 하나님만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성경 자체를 또한 거부했다. 이유는 성경이 ‘상당히 유치하고, 원시적인 전설들을 집대성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이 기독교를 거부한 것은, 무엇보다도 심판과 천국‧지옥이라는 가르침을 이성적으로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자신의 창조물인 인간을 상벌(賞罰)하는 신을 상상할 수 없다. 신이라는 것은 요컨대 인간의 약함의 반영에 다름 아니다. 나는 인간의 영혼이 육체의 사망 후에도 살아남는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그것은 약한 사람이 두려움에서, 혹은 어리석은 자기중심주의에서 생각한 것이다.[4]
‘신은 인간의 약함의 반영’이라는 말은 “기독교는 약자의 종교이며 노예의 환상”이라고 말한 학자 니체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며,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형상대로 하나님이 만들어진 것”이라 주장한 것과도 통한다. 그런데 약한 자만이 하나님을 믿고, 그의 심판을 두려워한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은 역설적으로 진리다. 오직 자신의 약함을 깨닫고 인정하는 자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아인슈타인은 심판과 천국‧지옥만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성경 대부분의 내용을 거부했다.
나는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의 많은 부분이 사실일 수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열정적인 자유사상가가 되었고, 국가는 고의로 젊은이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인상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나에게 충격적인 감명이 되었고 (중략) 이 태도는 근본적으로 내 일생을 통해 지속되었다.[5]
자신의 말처럼 아인슈타인은 성경의 역사성을 부인한 자유주의를 따랐다. 그것도 열정적으로 말이다. 전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아인슈타인이 무신론적 발언을 했으니,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에게 참으로 좋은 무기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언젠가 우리나라의 노선버스 외부광고에는 ‘나는 자신의 창조물인 인간을 상벌(賞罰)하는 신을 상상할 수 없다-아인슈타인’이라는 문구가 실리기도 했다. 최고의 천재에게도 ‘하나님의 심판’은 반감이 생기는 거북한 주제인 것이다. 목사의 아들이지만 하나님을 오랜 세월 떠났던 린위탕이[6]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오늘날 종교에 있어서 나를 특히 불쾌하게 만드는 것은 죄악에 대한 강조다. 나는 죄악을 의식해 본 적도 없고 또 저주받았다고 느낀 적도 없다. (중략) 나는 믿는다. 하느님은 이성적이며 이해심이 있으심을. 현대 교회는 아직도 굳이 배타적인 죄악 관념을 고집하기 때문에, 그리고 선교사들이 개종 설교를 할 때에는 언제나 죄의식을 곁들여 시작하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7]
린위탕은 자신이 비록 성자는 아니었지만 나름 ‘예의’ 바르게 살았으므로, 이 ‘예의’가 이성적이고 이해심 많은 하나님에게 인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교회와 목사는 늘 죄의식을 불러일으키지만, 하나님은 자기 정도의 ‘괜찮은’ 사람을 알아줄 것이라 말한다. 이것이 바로 자기 의를 내세우는 합리주의 사상이다. 자기의 의로움과 지혜, 공로로 하나님을 설득하고자 한 시도는 늘 있어 왔지만, 최근에 그 정도가 더욱 심해졌다. 자신의 이성과 판단력이 성경보다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인간은 이제 성경의 하나님을 조롱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장진 감독이 2011년에 만든 영화 “로맨틱 헤븐”에서 주인공이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을 만나 “지옥, 불, 고통 이런 것이 진짜로 있느냐”고 질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에 대해 아주 인자해 보이면서도 장난스러운 모습을 갖춘 하나님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런 걸 왜 만들어? 뜨겁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원하는 것이다. 천국은 있지만 지옥은 없는 사후세계. 이것이 바로 인간이 원하는 하나님 상(像)이다. 인자하고 재미있지만 무섭지는 않은 하나님. 이것이 바로 합리주의가 원하는 기독교다. 성경이 말한대로가 아니고, 이성(理性)이 말한 대로 이뤄지는 기독교. 아인슈타인과 린위탕은 바로 이런 것들을 소망했다.
[1] 러시아정교와 로마 가톨릭에서의 파문은 교회 공동체에서 추방되어, 성찬과 예배에 참여할 수 없으며, 이에 따라 구원과 영생의 약속이 취소되는 영원한 저주에 해당하는 것이다.
[2] 원제 The Philosophy of Jesus of Nazareth
[3]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말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유대인 철학자다. 자유로운 종교적 성향 때문에 유대교에서 파문당한 뒤 안경 렌즈를 가공하는 일로 연명하다가 진폐증으로 죽었다.
[4] 버트런드 러셀 외, 『나는 믿는다』, 범우사, 39쪽
[5] 제리미 번스턴, 『아인슈타인』, 전파과학사, 18쪽
[6] Lin Yutang, 林語常, 대만 출신의 세계적인 소설가, 중국 고전 번역가, 산문가, 문예비평가, 언어학자
[7] 버트런드 러셀 외, 『나는 믿는다』, 범우사, 107쪽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눈먼 기독교>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박태양 목사 | 중앙대 졸. LG애드에서 5년 근무. 총신신대원(목회학), 풀러신대원(선교학 석사) 졸업. 충현교회 전도사, 사랑의교회 부목사, 개명교회 담임목사로 총 18년간 목회를 했다. 현재는 (사)복음과도시 사무총장으로서 소속 단체인 TGC코리아 대표와 공동체성경읽기 교회연합회 대표로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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