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TGC 칼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니

사진: Greg Rakozy on unsplash

하나님이 자기 자신 안에서 가장 만족한 이유를 알 때,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가장 만족할 수 있다.  

세상이 엉망진창이라면(사실 그렇다), 또 이 난장판의 책임자가 하나님이라면(사실 그렇다), 이성적인 사람이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정말로 이 모든 일에 궁극적인 책임이 하나님에게 있다면, 어떻게 그를 신뢰하고 또 그로 인해서 기뻐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대답이 떠오른다. 하나님으로 인해서 내가 느끼는 만족의 근원은 여러 곳이다. 

•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의 변함없는 사랑.
• 그가 멀리 있는 대신 내게 가까이 다가오신다.
• 나의 슬픔과 아픔을 개인적으로 알고 계신다. 모든 면에서 나와 같은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시다. 
• 아침마다 새로운 긍휼로 심판을 이기시고 나와 같은 죄인에게 내려질 진노를 거두신다. 
• 모든 약속을 이행할 수 있는 그의 능력과 의지, 하등의 약속 받을 자격이 없는 나인데도 불구하고 즐겁게 약속을 주시는 그의 마음. 

지금까지 열거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라고 한다면 실로 형언할 수 없이 달콤한 이유가 되겠지만, 조금 전 살펴본 첫 문장에는 이런 내용이 전혀 들어있지 않다. 

한 문장으로 우주를 바라보기

수년 전에 이미 나는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 보는 법을 배웠다. 즉 그분이 자신의 영광을 위해 모든 일을 하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행복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한 문장을 제대로 읽을 때까지는 말이다. 물론 삼십 년 전에도 나는 그 문장을 읽었고, 그 이후로 성경은 내게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하나님이 자기 자신 안에서 가장 만족하는 이유를 알 때,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가장 만족할 수 있다. (존 파이퍼, 하나님의 기쁨)

이게 과연 사실일까? 내가 그동안 믿었던 하나님, 그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을까? 그리고 그냥 기쁘신 게 아니라 가장 기쁘다고? 

내가 막 읽은 것과 비슷한 문장은 “기쁨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좀 더 진지하게 던지도록 만든다. 정신 못 차릴 정도로 어지러운 게 기쁨이 아니다. 하나님은 술에, 마약에 취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기쁨까지도 포함하는 기쁨은 바람직한 웰빙이고 적절함에서 만족하는 기쁨이다. 그리고 순결함, 더럽지 않음, 흠 없음, 오염되지 않음, 바래지 않음, 제한 없음, 그리고 억누를 수 없는 즐거움을 추구함으로 누리는 기쁨이다. 

파이퍼의 주장처럼 하나님에 대한 나의 만족이 하나님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만족에 달려 있다면,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시는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없을 것이다. 이 문장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탐구하게 함으로써 성경 읽는 방식뿐 아니라 우주를 관찰하는 방식까지도 바꿔놓았다. 우주에는 관찰할 것이 많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많이 있고, 하나님의 기쁨은 그분 안에서 내가 누리는 만족의 원동력이 된다.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가?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기쁨을 보여준다. 아래에 열거한 건 단지 몇 가지 보기일 뿐이다. 

• 공의를 기뻐하신다(잠언 11:1).
• 정직한 자의 기도를 기뻐하신다(잠언 15:8).
•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기뻐하신다(시편 147:11).
• 백성을 택하기를 기뻐하신다(신명기 10:14-15).
• 그가 행하시는 모든 일을 기뻐하신다(시편 115:9).
• 자기 아들을 기뻐하신다(마태복음 17:5).

최고로 가치 있는 것을 가장 가치 있게 평가하는 것은 가장 합리적이다. 하나님은 이 점에서 완벽하게 합리적이다. 그는 또한 최고로 가치 있다. 따라서 자신을 최고로 평가하는 하나님은 완벽하게 합리적이다(그는 항상 합리적이다). 하나님이 나를 만족시키는 이유 중 하나는 가장 가치 있는 것을 가장 가치 있게 평가함으로써 완벽하게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가치가 없는 것을 최고로 평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게 바로 우상숭배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상 숭배자가 아니다. 또한 미치지도 않았다. 헨리 스쿠걸은 다음과 같이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한 영혼의 가치와 탁월함은 사랑하는 대상이 무엇인지를 통해서 측정할 수 있다.”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는 대상, 즉 자기 자신은 가장 가치 있다. 이 모든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다음 질문을 던지게 한다. “어떤 것을 다른 것보다 더 가치 있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인가? 가장 가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깊은 곳에서 우리는 이미 좋은 답을 알고 있다. 견고함과 변하지 않는 내구성을 가진 것, 증발하지 않는 것, 통제할 수 없는 요인과 힘에 굴복하지 않고 모두를 이기는 것, 결코 모순되지 않는 것, 실질적이고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 다른 모두를 파생시키는 것, 매우 희귀해서 어디에서도 유사품을 찾을 수 없는 것, 상황과 관계없이 언제나 심오하고 결정적으로 유용한 것, 그리고 끝없이 스스로를 다시 채우는 것이 가치 있다. 

하나님은 이처럼 귀하고 영광스럽다. 하나님은 가장 영광스럽기에 가장 기쁘시다. 자신의 영광 안에서 그는 가장 기쁘시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면

전능한 하나님이 불평만 한다면? 유명한 기도,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나님은 선하시다”가 “하나님은 위대하시지만 선하시지는 않다. 그러니까 조심하는 게 좋을걸”로 바뀐다면 어떻게 될까? 전능한 힘을 사용하여 그는 언제라도 우리 모두를 가루로 만들어 날려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놀라운 분이기에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 투덜거리거나 화를 내기보다는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그의 가장 높고 깊은 기쁨은 자신이 하나님이시라는 데에 있으며, 따라서 그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기뻐하신다. 잘못하는 일이 있을 수 없다. 결코 실수가 없기에, 하나님은 언제나 일을 마치고는 한발 물러서서 이렇게 말하실 수 있다. “정말 좋다. 참 좋다. 이렇게 훌륭한 일을 행하는 나 자신으로 인해 당연한 말 같지만 참으로 행복하다.” 심지어 그의 진노조차도 결국에는 그를 기쁘시게 한다. 그 결과 그분의 모든 일은 궁극적으로 완전한 공의를 이루며 그를 영화롭게 만든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기쁨이 내게 무슨 의미일까? 무한히 지혜로우시고 변함없으시며 항상 기뻐하시는 하나님은 결코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나는 그가 행하신 일을 보면서 아쉬워하지 않아야 한다. 대신 그가 하시는 모든 일이 예외 없이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선을 위한 것임을 믿어야 한다. 믿는 데서 그치지 말고, 그 이상으로 감사하고, 사랑하고, 높이고, 또 즐거워해야 한다. 하나님이 자신으로 인해 기뻐하듯, 나도 하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로 인해서 또 그가 행하신 일들로 인해서 기뻐한다. 그의 기쁨은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일차적이다. 하나님이 자신 때문에 기뻐신 것처럼, 나도 매일 하나님 때문에 더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엉망진창 속 하나님의 기쁨

길고 더운 날을 끝낸 농부가 어떻게 쟁기질로 다 파헤친 잔디를 보면서 만족할 수 있을까? 그 밭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지금 당장은 엉망진창처럼 보이는 밭이지만, 농부는 앞으로 다가올 영광스러운 수확을 기대하며 쟁기질을 즐긴다.

우리 부부는 자식 둘을 먼저 떠나보냈다. 당신은 실패했다며 하나님을 향해 주먹을 흔드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아이들, 우리 부부와 완전히 관계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오산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끝내지 않았다. 결코 그런 일은 없다.

나는 중학교 딸과 함께 도예 수업을 들었다. 작업실과 옷을 먼지투성이 진흙탕으로 만들어가면 몇 시간이나 프로젝트에 열중했다. 이 모든 수고에 어떻게 만족할 수 있을까? 아직 가마에서 나오지 않았지만, 우리의 수고가 지금 매력적이고 유용한 작품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된다. 하나님은 아직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기뻐하신다. 경작 중인 들판, 육체의 질병, 완전히 침수된 행성, 그리고 이 부서지고 신음하는 우주는 지금도 영광스러운 결과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통해 헤아릴 수 없는 선을 이루시기에,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만족하신다. 결코 어깨를 으쓱하며, “더 잘할 수도 있었는데”라고 중얼거리는 법이 없으시다. 

그의 기쁨과 나의 존재

하나님이 하나님이기에, 또 자신이 하는 일로 인해 기뻐하신다는 사실이 내게 가져다준 변화는 무엇일까? 

하나님의 기쁨은 인간이 만든 신들과 하나님을 구별시킨다. 그런 신은 인간을 닮아서 하나 같이 괴팍하고 변덕스럽다. 제우스의 변덕스럽고 잔인한 벼락부터 예측할 수 없는 포세이돈의 분노, 트로이 전쟁 때 인신 제물을 요구하는 아르테미스, 오늘날 유행하는 취소 문화 속에서 낙태를 조장하는 자기신격화한 도덕 경찰 닮은 신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만든 신들은 기뻐 만족하시는 하나님과 너무 다르다.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그는 영원한 즐거움을 확실하게 약속하신다. 

하나님의 기쁨은 모든 역사에 목적의식을 불어넣었다. 기쁘신 하나님은 단 한 번의 역사도 허투루 낭비하지 않으신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그를 사랑하는 자들의 선을 이룬다. 이 사실은 나로 하여금 현실 이해의 방식을 바꾸도록 만들었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통해서 하나님은 나를 좋은 곳, 아주 좋은 곳으로 데려가신다. 하나님의 기쁨은 나의 성경 읽는 방식도 바꾸었다.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작품에 대한 그의 기쁨은 행과 행간 곳곳에 들어있다. 

삶을 바꾸는 하나님의 기쁨은 후회가 없는, 일종의 깊은 기쁨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후회하신다고 말할 때(예를 들어, 창세기 6:6과 사무엘상 15:10), 그것은 축소된 영광이라는 슬픈 현실에 대한 한탄의 의미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할 것이다. 왜일까? 하나님의 모든 행동은 결국 그의 아들에게 최대의 영광을, 그의 백성에게 최대의 즐거움을 가져다주려는 그의 깊은 계획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으로 인해서 기쁘시다.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이다. 

원제: What If God Were Happy?

샘 크랩트리 Sam Crabtree | The North Church의 목사이다. 지은 책으로는 Parenting with Loving Correction: Practical Help for Raising Young Children이 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저작권자 ⓒ 내 손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제보 및 문의: 

Print Friendly, PDF & Email

관련 기사

20241121_Workplace
[GTK 칼럼] 그리스도인과 직장 I
irises-van-gogh-241120
[TGC 칼럼] 슬픈 이야기가 필요하다
20241120_KBS
[정성구 칼럼] KBS 위에 뜬 무지개
Sam-moghadam unsplash
[GTK 칼럼] 우울증(3)

최신기사

[GTK 칼럼] 그리스도인과 직장 I
“차별금지법 독소조항 담은 제주평화인권헌장 폐지하라”
[고정희 칼럼] 복음이 실제 된다는 것
韓 청년들, “생명 지키는 데 전념하겠다”… ‘제2회 라이프워커 등산대회’ 개최
美 버지니아 부동산 중개인, 결혼 관련 성경 구절 SNS 게시해 면허 박탈 위기
극동방송, ‘나라를 지킨 영웅들’ 위한 ‘2024 가을 음악회’ 성료
파키스탄 북서부, 이슬람 계파 갈등 지역에서 복음 전하다
Search

실시간최신기사

20241121_Workplace
[GTK 칼럼] 그리스도인과 직장 I
20241121_Jeju
“차별금지법 독소조항 담은 제주평화인권헌장 폐지하라”
japan-bus-241120-unsplash
[고정희 칼럼] 복음이 실제 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