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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죄 죽이기

사진: gospelandcity.org

그리스도인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죄를 죽이고 순종할 수 있다 

존 오웬(1616-1683)도 행복이 훌륭하고 가치 있는 목표라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생각에 동의했다. 그러나 그가 진짜 염두에 둔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행복에 대해 생각하는 방향과는 많이 달랐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종종 행복을 오락이나 코미디와 연결한다. 그러니까 일상생활이 주는 좌절감에서 벗어나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고대인은 행복을 덕성과 될 수 있는 한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자녀에게 좋은 습관을 심어줌으로써 삶을 준비시키라고, 그래서 폴리스(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깊이 있는 성품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라고 가르쳤다. 그에 반해 뚜렷한 기독교 전통 내에서 사고한 오웬은 훨씬 더 하나님을 배경의 중심에 놓고 행복을 상상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오웬도 행복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우리를 둘러싼 세계와 그 안에서 사는 각자의 위치에서 파생시켰지만, 출발점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매우 달랐다. 오웬은 하나님만이 우리 행복의 원천이자 목표임을 알고 있었다. 오웬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우리의 행복을 위한 계획을 자신의 품에 두셨습니다”(Works of John Owen, 2:33). 오웬이 말하는 바는 바로 하나님과의 친교(communion with God)이다. 오웬에게 하나님과의 친교는 참되고 깊으며 나아가 생명을 주는 행복 그 자체였다. 

생명과 사랑의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가 그와 친교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땅과 화목하며 살게 하셨다. 상호인격적인 활동으로서 친교는 애초에 창조된 목적에 맞게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과 세상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오웬이 쓴 아마도 가장 유명한 이 책에서 부정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는 연습, 죄 죽이기(mortification)를 그가 그토록 강조한 이유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우리는 먼저 친교를 통한 행복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죄는 하나님과의 친교를 방해하고 파괴하기에 죄가 주는 위협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행복의 필수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죄 죽이기와 친교

오웬의 이 작은 책 ‘죄 죽이기’는 그가 옥스퍼드의 크라이스트 처지(Christ Church) 학장이자 부총장으로 재직할 때 했던 일련의 설교를 모은 것이다. 서문에서 그는 현재 ‘하나님과의 친교’를 집필하고 있다고 밝히는 동시에 독자들이 그 책이 완성될 때까지 이 작은 책을 통해서 도움받기를 바란다고 썼다. 지금 내가 이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독자들이 너무나 자주 “죄를 죽이는 것”에 대한 오웬의 글을 하나님과의 친교라는 더 큰 주제와 별개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여러 문제가 일어나는데, 그중 하나는 이 책을 마치 도덕주의 교과서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건 오웬의 의도가 전혀 아니다!

죄를 죽이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과의 친교를 추구하는 데 꼭 필요한 도구이기에 죄 죽이기라는 특정 주제는 목회자로서 오웬의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오웬의 접근 방식은 결코 어떤 종류의 율법주의나 부정적인 자아 개념을 암시하지 않지만, 일부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이해한다. 오히려 오웬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사랑은 결코 사람의 신실함에 달려 있지 않음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동시에 우리가 어떻게 죄를 다루는가에 따라서 하나님과의 친교가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방해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죄를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하심과 그의 위로에 대한 인식을 마비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 죽이기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해야 한다. 추상적인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그리고 이웃과 함께 우리의 삶 자체를 올바로 추구하기 위해서이다. 

성령과 함께 출발하기

‘mortify’는 ‘죽이다’를 의미하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죄에 대해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조차 주의 깊게 읽으면, 오웬은 애초부터 죽음의 원리가 아니라 생명의 원리 곧 장 칼뱅과 다른 사람들이 “생기를 불어넣음”(vivification)이라고 부른 생명의 원리에서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오웬의 이 특별한 책은 비록 죄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우리를 살게 하시는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끊임없이 전제하고 강조한다.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우리는 “몸의 행실”을 죽일 수 있다(롬 8:13Works of John Owen, 6:5).

벤저민 프랭클린의 ‘자서전’과 존 오웬의 ‘죄 죽이기’의 차이점에 주목하라. 프랭클린은 미덕을 기르고 자제력을 보이며 올바로 살기 원했다. 그는 미덕의 목록을 작성하고 한 번에 하나씩 정복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의 계획은 하나의 미덕을 집중해서 마스터하고, 그리고 다음 미덕으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이런 식의 단순한 방식을 통해서 그는 자신이 가진 성품의 약점을 극복하고 진정으로 유덕한 사람이 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프랭클린은 나중에 이 계획이 애초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이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프랭클린처럼 오웬도 미덕과 자제력을 기르는 데 관심을 두었지만, 이 청교도의 비전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단순히 의지력에 의존하는 대신 오웬은 하나님의 영의 임재와 능력을 의지했다. 오웬은 인간이라는 독립행위자(agency)를 무시하지 않았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그는 우리의 행동을 대단히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뭔가를 향한 의지를 품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오웬은 신 행위자와 인간 행위자를 구분하는 잘못된 이분법을 거부했다. 그러니까 정의에 따르면, 친교는 상호적이며 하나님이 일하시고 인간은 단지 거기에 응답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친교는 그가 말하는 (하나님만이 세우시고 그 결과 결코 흔들리지 않는) 연합이라는 견해와는 다르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시간에 해야 할 논의이다. 

성령이 어떻게 일하시는가

성령은 우리 안에서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먼저 긍정적으로 말하자면,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생명과 빛과 사랑으로 채우신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죄를 죽이고 순종할 수 있다. 이러한 은사가 없으면 우리의 모든 노력은 다 독선이나 율법주의, 단순한 실패로 끝날 뿐이다. 부정적으로 말하면, 성령은 나무뿌리를 태우고 나무 전체를 완전히 죽이는 불처럼 우리의 죄를 공격한다. 

성령은 우리를 미워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죄를 깨닫도록 하신다. 그는 우리를 노예로 만들거나 질식시키고 하나님과 이웃과 땅과의 교제를 허물어뜨리는 죄의 파괴적인 얽힘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길 원하신다. 이와 같은 재창조 사역에도 창조의 영이 역사하신다. 더욱이 성령은 끊임없이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죄로부터 멀어져 그리스도께 돌아오게 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주님과의 교통을 촉진한다(Works of John Owen, 6:19).

존 오웬의 책 중에서 읽은 책이 ‘죄 죽이기’ 한 권뿐일 때, 사람들은 쉽게 이 책 뒤에 있는 큰 배경을 놓친다. 오웬은 사실상 죄에 대한 내용보다 그리스도의 영광, 그리고 성령의 인격과 사역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글을 썼다. 이런 사실을 잊는다면, 우리가 온 힘과 열정을 다해 죄와 싸울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하는 내용, 그러니까 오웬이 훨씬 더 깊게 다루는 주제를 쉽게 놓치게 된다. 강박적인 수준에서 세밀하게 진행하는 자기비판에 오웬은 관심이 없었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점점 깊어지는 하나님과의 친교였다. 

새롭게 되고 더 깊어진 인간성

성령과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오웬의 가르침은 우리의 독립성(agency)을 약화하지 않고 오히려 더 굳건하게 만든다. 오웬은 이렇게 말한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역사하십니다. 결코 우리를 대적하거나 우리 없이 역사하시지 않습니다”(Works of John Owen, 6:20). 행동은 결과를 낳는다. 그건 행동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더 또는 덜 사랑하도록 만들기 때문이 아니라, 행동 그 자체가 살아 계신 주님과의 교제에 활력을 증진하거나 방해하기 때문이다. 

영적인 존재가 된다고 해서 우리가 인간이기를 그만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오웬이 보여주듯 성령은 우리를 존재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인도함으로써 인간성을 새롭게 하고 심화한다(오웬의 Discourses on the Holy Spirit 볼 것). 이와 같이 성령은 우리의 의지, 애정, 생각, 심지어 우리 몸을 통해서도 역사하신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속에서 일하실 때 우리는 거기에 반응하고 참여해야 한다. 바로 그럴 때 우리는 죄를 죽일 뿐만 아니라 인간성의 수준도 심화하게 된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독립성은 결코 상충하지 않는다. 

우리 시대는 지름길과 효율성과 즉각적인 성장을 열렬히 추구한다. 그러나 이건 결코 대부분의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이 아니다. 성장은 천천히 이루어지며 인간의 성품 형성에는 노력과 인내와 관점이 필요하다. ‘죄 죽이기’를 읽은 사람들은 종종 죄를 죽이는 데에 지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영광의 이면에서는 결코 죄가 주는 위협과 공격이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도 멈춰서는 안 된다. 오웬은 유명한 양자택일의 조언을 했다. “당신이 죄를 죽이지 않으면 죄가 당신을 죽일 것입니다”(Works of John Owen, 6:9). 다른 선택지는 없다. 죄를 그대로 두면 죄는 곰팡이처럼 자랄 것이며, 그로 인한 손상에서 회복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더는 겉을 닦아내는 데 만족해서는 안 된다. 벽을 뜯어내야 한다. 벽 속에 숨은 죄가 이전에 이미 알아차리고 한번 처리했던 것이라면 다시 싸우는 것은 훨씬 더 고통스럽다. 

오웬의 비유를 사용하자면, 죄는 정원에서 자라는 잡초와 같다. 방치하면 아름다운 꽃과 과일을 빼앗아 질식시킨다. 좋은 정원사는 좋은 열매를 가꾸는 중에도 잡초 제거에 소홀하지 않는다. 성령은 우리 마음에 나무를 심고 열매를 맺게 하시고, 마음과 삶의 정원을 공격하는 잡초를 뽑아내는 권세도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는 이 성령의 역사에 참여하도록 다 초대받았다. 

노출되고 치유받고

디트리히 본회퍼는 언젠가 “심리학자”와 “그리스도인”을 구별한 적이 있다. 나는 이 인용문이 심리학 분야를 얕잡아보는 근거로 사용되는 걸 결코 원하지 않지만(우리 모두는 다 심리학자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굳이 인용하는 이유는 본회퍼의 논평이 왜 우리에게 죄 죽이기에 관한 오웬의 책이 필요한지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가장 위대한 심리학적 통찰력과 능력과 경험을 다 동원한다고 해도 이 한 가지 곧 죄가 무엇인지를 밝혀낼 수 없습니다. 세속적 심리학의 지혜는 궁핍과 연약함과 실패가 무엇인지 잘 알지만 인간의 불경건이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 심리학자 앞에서 나는 단지 환자일 뿐입니다. 그러나 다른 그리스도인 앞에서 나는 죄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Life Together, 94-95)

오웬은 잘 훈련된 영혼을 치유하는 그리스도인 의사이다. 그에게서 상담을 받는다면, 그는 우리의 상태에 대한 진실을 말할 것이다. 여러분도 나와 같다면, 나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교활하고, 더 오만하고, 또 더 탐욕스럽고 자기중심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나의 정체를 다른 사람이 알길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웬이 우리 안에 있는 이러한 죄를 폭로하는 건 우리를 죄책감에 가두려는 것이 아니다. 용서를 보여주고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해방을 통해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그렇게 한다.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대적하며,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안식할 때 만나는 자유로운 삶을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다. 

죄 죽이기에 관한 오웬의 설명을 주의 깊게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가 만나는 것은 슬픔이 아닌 수준 높고 지속적인 행복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정직하고 활력이 넘치며 관계 지향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에 꼭 필요한 도구를 제공한다. 이 책은 친교를 촉진한다. 독자들이여, 나는 여러분도 이 탁월한 청교도 스승에게서 배우기를 바라기에 이 책을 추천한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치유될 것이다. [복음기도신문]

당신이 죄를 죽이지 않으면 죄가 당신을 죽일 것입니다

원제: On the Mortification of Sin: A Reader’s Guide to a Christian Classic

켈리 케픽 Kelly M. Kapic | 커버넌트 칼리지의 신학교수이다. 지은 책으로는 ‘구체화된 희망(Embodied Hope)’과 최근에 나온 ‘너는 그냥 사람이다: 너의 한계가 어떻게 하나님의 설계를 반영하고 왜 또한 그게 복음인가( You’re Only Human: How Your Limits Reflect God’s Design and Why That’s Good News)’가 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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