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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하나님의 사랑(1): 무엇이 문제인가?

사진: Tonia Kraakman on Unsplash

언뜻보기에, 하나님의 사랑은 심각한 신학적인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 사랑에 대한 말씀으로 요한일서 4장 8절보다 더 명확한 말씀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이 말씀은 가장 확실하게 하나님을 묘사하는 것이기에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사람들은 얼마나 쉽게 이렇게 말하는가. “사랑의 하나님은 결코 ____을 하지 않으신다.” 그 말의 진정한 의미는,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 나는 내 생각대로 신을 받아들일 거야.”이다. 이것은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많은 교회의 성도들조차 받아들이고 있는 교묘한 형태의 우상 숭배이다.

문제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느냐 안 하시느냐가 아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선포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이 실제로 말하고 있는 첫 번째 단서이냐 하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러나 사랑이 그분의 모든 것이라거나, 사랑이 그분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모든 것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는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이 마치 잘 아는 것처럼 권위를 가장하여 사람들에게 말해왔기 때문에, 오늘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문제는 매우 모호해졌고 혼란스럽게 되었다.

느낌보다   것이다

오늘날의 문화에서 견고한 사랑의 정의를 찾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정의하지 않고, 단순히 자신이 감각적으로 느끼는 것을 사랑이라고 믿어버린다. 그러나 세상에서 유행하는 사랑의 개념은 기껏해야 발라더와 순정 영화, 급속 데이트와 같은 것들일 뿐이다.

존 맥아더는 호색적인 사랑과 성경적인 세상관 사이에 가로놓인 깊은 골짜기를 슬퍼하며 이렇게 말했다.

‘대중적인 노래에서 우리가 듣는 사랑은 거의 언제나 느낌을 묘사한다. 그 느낌은 대부분 이루지 못한 욕구를 드러낸다. 대부분의 사랑 노래들은 사랑을 감정적인 것으로 바꿀 뿐 아니라 무의식적인 것으로 바꾸고 있다. 사람들은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사랑에 빠져들어 자신을 주체하지 못한다.

사랑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으로 특징 짓는 것은 멋진 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러한 ‘사랑’은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이기적이고 비이성적인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성경에 의하면, 사랑은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의도적인 것이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사려깊게 헌신한다. 진정한 사랑은 의지적인 것이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아니다.

매력, 애정, 혹은 욕망은 진정한 사랑의 요소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실제로 진정한 사랑의 방해가 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사랑이 감정이나 감각적인 것이 아니라 희생적이고 이타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고전 13:4~7)

고린도전서 13장은 모호하거나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성경 구절이 아니다. 그 구절은 내가 가본 거의 모든 결혼식장에서 인용되는 구절이다(심지어 불신자의 결혼식에서도). 이 말씀은 큰 두려움을 가지고 깊이 생각해야 할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는 기분을 좋게 하는 고약 정도로 받아 들여진다.

바울이 정의한 사랑의 목록은, 힘든 자기 희생과 자기 부인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그런 일에 열중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 우리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사랑에 익숙하다.

진정한 사랑은 어렵다. 사실 우리가 솔직하다면 바울이 말하는 기준은 우리가 지키기에 너무나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결코 고귀한 하늘나라의 기준을 충족시킬 수 없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가능하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오로지 사랑만은 아니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의 궁극적인 표현이다(요 3:16).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하나님의 전환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하나님의 성품이 ‘진노’에서 ‘사랑’으로 전환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은 절대 변하지 않으신다.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말 3:6, 히 13:8 참조). 하나님은 언제나 사랑이셨지만 그렇다고 다른 속성들을 버리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죄에 대한 미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사실 그 반대이다. 하나님의 그 사랑은 우리의 죄로 인해 묶여 있으나, 그와 동시에 우리의 죄로 인해 더 커진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다른 속성(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는)에 반대하거나 없앤다고 가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D.A. Carson은 하나님의 속성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교회에 팽배해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데 거의 어려움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의 공의와 진노, 전능하신 하나님의 비논리적인 진실성을 믿는 것에 훨씬 더 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더 나아가, 존 맥아더는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설교하지 않는 것은 실제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진실을 잊고 있다. 우리는 그가 죄를 미워하신다는 사실을 무시해 왔다.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은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진노의 하나님은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히 10:31)라는 말을 잊어 버렸다. 우리는 진노의 하나님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진노를 바르게 이해하여 거룩한 경외심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가 회개하지 않는 죄인에게 내릴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여호와여 주의 노하심으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고 주의 분노하심으로 나를 징계하지 마소서 주의 화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 주의 진노로 말미암아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말미암아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시 38:1~3)

이 진실이 그의 사랑에 대해 경탄하지 않을 수 없는 핵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할 때 이 진리가 말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신념과 열정을 가져야 한다. 오직 하나님의 진노를 이해할 때 하나님의 사랑의 온전한 의미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이 정확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메시지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진노가 그분의 장엄한 충만 속에서 함께 나타난 것이 바로 십자가 사건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 성경이 말하는 다른 모든 것들을 덮어버리는 신학적 담요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실 모든 성경에서 가장 어려운 교리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 교리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도전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피하고자 하지만, 사랑의 교리를 올바로 아는 것은 성경적인 긴장감에 선명하고 조화로운 답을 제시하는 것이다. [복음기도신문]

카메론 부엣(Cameron Buettel)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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