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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성공적인 기도의 단계(6) – 경건한 기도의 모범

사진: Pixabay

최근 플로리다의 한 교회에서는 자동차 안에서 기도하도록 돕는, 일종의 기도봉사(drive-thru prayer service)를 시작했다. 이것은 삶의 막다른 처지에 놓인 사람들과 절실히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올 필요가 없이, 마치 햄버거나 커피를 주문할 때처럼, 자동차 안에서 기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 교회에 따르면, 행사를 시작한 이후 약 150명 정도의 사람들이 여기에 참여했고, 그들 대부분은 한번도 교회에 다니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런 방법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데에는 효과적일지 모르지만 비성경적이고 우스꽝스런 일이다. 우리는 기도생활 가운데 얼마나 자주 이와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순간 순간 필요를 느낄 때에만 기도하거나, 어려운 환경에 당면해서야 기도하거나, 그저 별탈 없이 순조로운 삶을 위해서만 기도를 하거나 할 때가 많다. 근시안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시야에 사로잡혀 우리의 환경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만 염려하고, 주님이 우리의 환경 속에서 어떻게 일하고 계시는 지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바람과 환경에 상관없이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항상 첫째 자리에 놓도록 우리 자신을 훈련할 필요가 있다. 성경에 나타난 기도에 관한 몇 가지 실제적인 예들을 살펴봄으로써 우리의 기도생활에 교훈을 받도록 하자. 먼저, 구약성경의 선지자들 중 큰 환난 가운데 있었던 세 명의 선지자들의 기도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들은 자신들의 상황을 하나님과 그분의 영광 그리고 그분의 계획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핑계거리로 사용하지 않았다.

예레미야

예레미야 32장에는 옥에 갇혀 있는 하나님의 선지자의 모습이 나온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싫어하는 백성들에게 말씀을 선포했지만 백성들은 그의 입을 막으려고 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었다. 결국 백성들은 그를 구덩이에 던져버렸다. 예레미야는 이처럼 자신의 사역에서 세상이 알아줄 만한 성공을 거두거나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는 선지자는 아니었다. 예레미야 32:16-22에는 그의 기도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시니이다 주는 은혜를 천만인에게 베푸시며 아버지의 죄악을 그 후손의 품에 갚으시오니 크고 능력 있으신 하나님이시요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이다 주는 책략에 크시며 하시는 일에 능하시며 인류의 모든 길을 주목하시며 그의 길과 그의 행위의 열매대로 보응하시나이다 주께서 애굽 땅에서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고 오늘까지도 이스라엘과 인류 가운데 그와 같이 행하사 주의 이름을 오늘과 같이 되게 하셨나이다 주께서 표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펴신 팔과 큰 두려움으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에게 주시기로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는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에게 주셨으므로 그들이 들어가서 이를 차지하였거늘 주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여 주의 율법에서 행하지 아니하여 무릇 주께서 행하라 명령하신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주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셨나이다”

그는 외로움과 슬픔으로 상한 심령 가운데, 동족들이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라는 소망을 잃어버린 채, 온 나라로부터 버림을 받고 큰 환난 속에 처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 그분의 이름과 영예, 그리고 그분의 역사에 온전히 사로잡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아픔과 자신이 처한 곤경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지에 대해 마음이 사로잡혀 있지 않았다. 오히려 환난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우리의 모든 기도는 이와 같아야 한다.

다니엘

다니엘은 두 개의 대제국이 교체되는 동안 포로의 신분으로 있으면서도, 자신과 같이 외국에 포로로 잡혀 있는 민족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드렸다. 그의 기도의 정신을 주목해보라. 그는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단 9:3) 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그의 기도가 어떻게 시작되는지 주목해보라.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단 9:4-5).

그의 기도는 찬양으로 시작하여 회개로 이어진다. 9장에는 그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지은 죄를 열거하면서 그 죄를 자복하는 구절이 12번 이상 나온다. “수욕은 우리에게 미쳤나이다”(9:8),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음이오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며”(9:9-10), “우리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나이다“(9:15)와 같은 표현들로 가득 차 있다. 또한, 이런 표현들은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치는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과 같아서”(9:7),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이 공의로우시나”(9:14) 또한 “강한 손으로 주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오늘과 같이 명성을 얻으신 우리 주 하나님이여”(15절)와 같은 찬양의 구절들과 섞여 있다.

마지막으로 다니엘은, 자신의 기도를 마치면서, 한 가지 요청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는 것이다. 다니엘의 모든 찬양(하나님의 의와 그분의 자비에 초점을 맞춘)과 회개(이스라엘의 불순종의 역사에 대해 자복하는)는 용서와 회복을 구하는 기도에서 정점에 달한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9:19).

그리고 그 단 하나의 요청도 오직 하나님의 자비에 근거하여 드리고 있다. 그는 하나님께 찬양과 회개를 드리면서 모든 것 위에 뛰어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이스라엘의 전적인 무가치함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으며, 오직 하나님의 의에 의지하여 간구를 드리고 있다.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9:18).

주목해야 할 점은, 다니엘은 자신의 기도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위대하심 그리고 그분의 위엄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경배의 표현이며, 그의 마지막 간청은 이러한 경배와 자복의 심령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경건한 자들의 기도는 항상 이와 같다.

요나

요나는 물고기 뱃속이라는 매우 특별하고 상상하기 어려운 곳에서 놀라운 기도를 한 사람이다. 물고기 뱃속이 얼마나 축축하고 숨막히도록 어두우며 불편할 곳일지 생각해본다면, 요나가 처한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이었을 지 상상이 간다. 요나는 거의 두 장에 걸쳐 자신의 기도를 기록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심오한 경배의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시편을 읽는 것과 같다. 그 내용은 사실, 시편에 대한 암시와 관계 구절들로 가득 차 있다. 요나는 살아있는 무덤과 같은 물고기 뱃속에서 이스라엘의 시편에서 가져온 문구들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요나의 기도는 지중해 바다 밑의 물고기 배 속에 갇혀 있는 상황인 만큼 매우 절박하고 간절하다. 그는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욘2:2) 라는 말로 기도를 시작한다. 주목할 점은, 그의 기도는 도움을 구하는 간청이 아니라 찬양과 구원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초반부에서는 하나님을 3인칭으로 언급하면서 구원을 마치 이미 이루어진 사실로 표현하고 있다.

기도의 나머지 내용은, 하나님을 3인칭이 아니라 기도의 직접적인 대상이 되시는 분으로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는 청자(聽者)로서의 하나님으로 묘사하고 있다. 전체적인 내용을 살펴본다면, 한층 확장된 찬양의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요나가 이 기도를 드릴 때 아직 물고기 뱃속에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라. 하지만 그는 자신의 구원을 계속해서 과거시제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놀라운 것은, 그가 하나님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던 어떤 사람보다도 더 절박한 상황에 있었음이 분명했지만 그의 기도 가운데 간청하는 내용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그의 기도는 순전히 유일한 구원자이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경배의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심 구절은 바로 7절이다.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요나 기도의 초점은, 다른 모든 위대한 기도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영광에 맞추어져 있다. 어느 누구보다도 더 절실하게 하나님께 응답을 간청하고 빌어야 할만한 상황이었지만, 그의 기도에는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또한 자신의 구원을 과거시제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오늘날 번영의 메시지를 전하기 좋아하는 설교자들이 말하는 “적극적인 고백”(Positive confession)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단순히 하나님의 인격을 찬양하고 있다. 누가복음 11장에서 모범적인 기도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우리 주님의 가르침이 바로 이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찬양의 하나로 가르치셨으며, 이것은 전혀 새로운 가르침이 아니다. 기도와 찬양 사이의 유사성은 전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기도는 경배와 찬양의 응축된 표현이다.

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자신의 기도의 우선순위를 다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 몇 마디 형식적인 감사를 드리고 나서 곧장 청구서를 내미는 대신, 주님이 제시하신 기도의 모범을 따르고 있는지를 점검하면서, 그분 앞에 올바른 경배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지 우리 마음을 끊임없이 살펴야 한다. 성공적인 기도는 당신이 원하는 바를 하나님께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인정하고 그분의 영광을 반영하며, 그분의 뜻 앞에 당신의 의지를 굴복시키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과 끊임없이 교통하는 가운데 당신의 마음과 뜻을 다해 그분을 경배하는 행동이다. [복음기도신문]

존 맥아더 |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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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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