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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당신의 신학을 점검하라: 2. 기도의 옷을 입고 겸손히 배우는 신학

사진: Priscilla Du Preez on Unsplash

신학을 오직 신학교에서 배우는 학문으로 취급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신학’의 사전적 의미는 “신이 인간과 세계에 대하여 맺고 있는 관계와 신을 연구하는 학문. 대개는 기독교 교리 및 신앙생활의 윤리를 연구하는 학문”이다(표준국어대사전). 성경에서 그 뜻을 찾아보면 “여호와를 아는 지식”(사 11:9), “하나님을 아는 지식”(호 4:1),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빌 3:8; 벧후 3:18), “진리를 아는 지식”(히 10:26) 정도가 될 것이다.

이처럼 ‘신학’을 좁은 개념이 아닌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그리스도인 중에서 신학을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성경을 개인적으로 읽거나, 교회에서 배우거나, 신앙 서적을 통해 쌓거나, 학교 및 기관에서 체계적으로 가르침을 받거나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한 사람도 빠짐없이 신학을 하고 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적으로 건강하고 훌륭한 신학을 갖춘 설교자와 성경학자 중에는 아더 핑크, 찰스 스펄전, 마틴 로이드 존스처럼 신학교를 거치지 않은 이들도 있고, 존 맥아더, R. C. 스프로울처럼 신학교를 거친 이들도 있다. 반대로 신학교 교육의 유무와 상관없이 비성경적이고 엉뚱한 신학을 가진 이들도 많다. 그래서 올바른 질문은 ‘신학을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신학을 해야 하는가?’이다. 신학교에 간다면 반드시 어떤 신학을 가르치는지 점검해야 한다. 좋은 신학은 첫째, 하나님 말씀의 절대 권위에 복종한다. 그리고 둘째, 다음의 기준을 충족시킨다.

2. 기도의 옷을 입고 겸손히 하나님께 배우게 하는가?

마스터스 신학교에 들어갔을 때 모든 수업의 시작과 끝이 기도라는 사실에 적지 않게 놀랐다. 기도는 수업도 예배라는 사실을 항상 깨닫게 했고, 인간의 학문을 쌓아 올려 하나님의 높은 뜻에 도달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높으신 뜻을 지혜가 부족한 우리에게 내려주시고 알게 하시기를 구하는 시간이라는 걸 체득하게 했다. 매학기 마다 각각의 교수님과 다수의 학생을 제자훈련팀으로 묶어 기도 제목과 묵상집을 나누며 교제하게 했고, 서로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구하는 시간을 반드시 갖게 했다. 교수님 중에서는 자기 수업에 참여하는 모든 학생을 위해 매일 기도하는 분들도 계셨다.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 성도들은 시간을 정해서 신학생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기도했다. 필수 과목 중에서 <기도>라는 수업은 실제로 학생들을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하는 매일의 훈련을 제공했다.

제임스 패커는 <절대진리>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을 노래하고 그분께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신학은 분명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그런 신학은 마음을 차갑게 하고 또한 흥미를 잃게 만든다(국제제자훈련원, 2019, 11p).

나는 개인의 경험과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제임스 패커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신학”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 신학은 그 대상만 하나님으로 삼는 학문이 아니라 모든 걸 하나님께 철저하게 의존하는 학문이다. 요컨대 하나님께서 알려주지 않으시면 알 수 없는 진리를 연구하는 학문이 신학이다. 신학은 하나님께서 감추어두신 것을 겸손히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밝히 드러내신 것에 반대하여 높아진 모든 이론과 생각을 그분 앞에 철저히 굴복시키는 학문이다. 신학은 하나님의 진리를 조명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구하는 기도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 성경에서 ‘미련함’으로 표현된 육신의 완고함, 반항심을 굴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손길은 기도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자유주의 신학은 패커가 경고한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신학’임에 틀림이 없다. 사전적 의미에서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 신학의 한 유파. 성경 해석의 바탕을 이성에 두며 성경의 권위로부터 자유를 주장하고, 성경 연구에서 교의학적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역사적으로 연구한다”이다(표준국어대사전). 이와 같은 자유 신학의 성격은 기도의 성격을 강력하게 거스른다. 기도는 성경 해석을 위해 이성이 아니라 성령님의 조명하심을 구한다. 기도는 성경의 권위에 굴복을 맹세하지만, 자유 신학은 그 권위 밖으로 뛰쳐나가려 한다. 기도는 하나님의 백성이 전통적으로 배우고 확신한 것에 거하게 해달라고 구하지만, 자유 신학은 현재의 역사적 이해와 사상으로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확실했던 진리를 무너뜨린다. 그래서 자유주의 신학은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신학’이다.

자유주의 신학을 수용할 것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유명한 신학교에서 쫓겨나 마스터스 신학교에 채용된 교수님이 하루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신학자가 되고 싶은가? 그러면 자유주의 신학을 반드시 받아들여라. 신실한 주의 종이 되고 싶은가? 그러면 자유주의 신학을 배척하라.” 그분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성경에서 마음에 들지 않거나 이성적 판단에 어긋나는 구절을 찢어내고 편집하는 일에 몰두하다가 주일이 되면 성경을 들고 강단에 올라가 “이것은 절대적으로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라고 말하는 자의 양심은 참으로 위태롭다’라고 학생들을 경고하셨다. 하나님의 뜻을 지금의 시대 정신이나 개인의 이성적 판단으로 마음껏 재단하는 자의 입에서 이런 기도가 나올 수 있을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9-10)

한편 자유주의 신학과 더불어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신학’의 대표적인 예는 ‘신비주의 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비 신학은 인간의 모든 이성적 판단이나 연구를 부정한다. 성경 본문을 앞에 두고 성령께서 조명하여 주신 것을 받아내려고 애쓴다(직통계시처럼). 어떤 면에서 신비 신학은 ‘기도하게 하는 신학’처럼 보인다. 기도에 온전히 몰두하여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성경 해석을 겸손히 받으려는 매우 합당한 신학이 아닌가? 하지만 그렇지 않다. 신비 신학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성을 부정한 것으로 여긴다.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받은 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사실을 부정한다. 교사의 은사를 통해 가르치신 교훈을 성령으로부터 온 것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오직 개인이 주관적으로 느끼고 깨달은 ‘그것’만이 하나님의 진리라고 주장한다. 신비 신학의 가장 큰 취약점은 성경을 채우지 않는 데 있다. 마음을 깨끗이 비우고 기도에 몰두하면 성경의 바른 진리로 채워진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기도는 오히려 성경으로 채워질 때 활력을 얻는다.

조엘 비키와 브라이언 헤지스는 함께 쓴 책 <은혜 안에서 번성하라>에서 기도와 말씀의 분명한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기도 생활이 활력이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성경을 소홀히 하기 때문이다. 기도는 쌍방향의 대화다. 하나님께 우리의 말만 하지 말고,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마음을 비워 놓고 어떤 생각이 저절로 떠오르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그것은 비기독교인들이 추구하는 신비주의에 해당한다. 우리는 마음에 성경 말씀을 가득 채워야 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기 때문이다…모든 성경 구절이 기도의 불을 지피는 연료가 될 수 있다(개혁된실천사, 2022, 189p)

E. M. 바운즈는 <기도의 능력>에서 이렇게 말했다.

설교자는 무엇보다도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설교자의 마음은 기도 학교를 졸업해야 한다. 기도 학교에서만 마음이 설교하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학식으로 기도의 태만을 벌충할 수 없다. 아무리 열심이 있고 부지런하며 힘들여 연구하고 은사가 많다고 해도 기도의 부족을 채우지는 못할 것이다(CH북스, 2019, 34p)

대표적인 예시는 기도의 사람인 조지 뮬러일 것이다. 22살의 조지 뮬러는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이제 많이, 하루 12시간 정도 공부하며, 주로 히브리어를 공부한다…히브리어 구약성경을 암송한다. 그리고 이를 기도와 더불어, 무릎을 꿇고 할 때가 많다…나는 히브리어 사전을 넘길 때조차도 주님을 바라본다(존 파이퍼 <나의 목회자 형제들에게>, 좋은씨앗, 2022, 143p).

‘기도하게 하는 신학’은 성경 연구를 배척하지 않는다. 오히려 함께 간다. 자유주의 신학과 신비주의 신학은 각각 연구만 하게 하거나 기도만 하게 만드는 잘못된 신학이다. 당신의 신학을 점검하라. 다음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고 대답해보라:

  1. 지금 당신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방식이 당신으로 하여금 더욱 기도하게 만드는가?
  2. 당신에게 신학을 가르쳐주는 사람이나 기관, 학교, 교회가 당신을 위해 얼마나 기도하는가?
  3. 신학을 배우는 학교(사람, 기관, 학교, 교회를 통한) 그리고 기도 학교 모두에서 당신은 균형 있게 성장하고 있는가? [복음기도신문]

조정의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GTK 칼럼] 당신의 신학을 점검하라: 1. 말씀의 절대 권위에 복종하는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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