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보는 이슬람(18)
이슬람의 ‘알라’와 우리 ‘하나님’
그동안 필자는 ‘이슬람’이라는 선교 주제를 가지고 강의와 세미나로 섬기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바로 오늘의 이슈이다. 이미, 여러 선교사가 신문과 잡지 등에서의 기고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슬람의 ‘알라’와 우리 ‘하나님’은 서로 같지 않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번역 출간된 ‘알라’(미로슬라브 볼프, IVP, 2016)라는 책을 통해 무슬림들의 ‘알라’와 우리 하나님이 같은 신인지 아닌지를 다시금 우리 자신에게 묻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금세기 최고의 기독교 지성으로 알려진 볼프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이슬람의 ‘알라’와 우리 하나님을 같은 신으로 묘사하면서 각기 다른 종교에 속해 있으면서도 같은 신을 믿는 것이 가능하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그는 각 종교가 서로의 차이를 내세워 대립하고 배타하기보다는 서로를 인정하고 평화로운 공존의 길을 찾을 것을 제안하고 있는데, 이는 오히려 우리에게 혼동의 여지를 줄 수도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로 나누어 본 이슈에 접근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이슬람의 ‘알라’와 우리 ‘하나님’은 절대 같지 않다는 전통적 접근이고, 다른 하나는, 이슬람의 ‘알라’와 하나님은 원래 같다고 말하는 볼프 교수와 같은 비전통적 접근이다.
이슬람의 ‘알라’와 우리 하나님이 같으려면
만약, ‘알라’와 우리 하나님이 같은 신이 되려면, 이슬람의 ‘알라’도 우리 성경에서처럼 예수를 십자가에 죽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은 예수를 사흘 만에 무덤에서 부활시켜야 한다. 그러나, 꾸란 속 예수(이싸)는 십자가에서 죽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무덤에서 부활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예수 하나만으로도 볼 때, 이슬람의 ‘알라’와 우리 하나님 사이에서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원래 우리의 하나님과 이슬람의 ‘알라’가 같은 신이라고 가정해도, 성경에는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이 기록되었지만, 수백 년 뒤에 기록된 꾸란에서는 그런 내용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둘 중 하나가 잘못 쓰였거나, 아니면, 두 기록에 나오는 신은 결국 같지 않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물론, 이러한 사실로부터 상당한 시간적 차이를 두고 쓰인 성경과 꾸란 가운데서 그 진위를 가리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논리적 접근
그러므로, 위와 같은 논리로부터 꾸란의 ‘알라’와 우리 하나님이 다른 신이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고, 별 의문이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무슬림들이 ‘알라’ 외에는 어떤 다른 신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철저한 믿음을 가지고, 자기들의 ‘알라’와 우리 하나님이 원래는 같았지만, 후에 우리 성경의 변질로 달라졌다는 주장이다.
더군다나, 무슬림들의 ‘알라’는 단일 신이며, 다른 어떤 신도 ‘알라’와 비교하거나 동등할 수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이슬람에서 얘기하는 그런 단일 신이 아니라, 성 삼위일체의 유일신이기에 본질적으로 커다란 차이를 가진다.
‘알라’의 저자, 볼프의 주장에 대해서
볼프 교수의 생각에 따르면, 이슬람의 ‘알라’와 우리 하나님은 같다. 이는 그가 무슬림들의 생각에 동조하거나 다원주의 경향의 타협으로 생각하기보다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복음을 모르는 무슬림들을 생각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는 유대교의 ‘야훼’, 우리 하나님, 그리고, 이슬람의 ‘알라’ 모두가 에덴동산에서의 인간을 비롯한 온 세상의 창조를 주관했으며, 그 뒤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창조주를 배반한 사건 등 많은 유사 기록을 통해 우리의 하나님과 ‘원래’ 이슬람의 ‘알라’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볼프 교수가 그의 책, ‘알라’의 국내 출판을 기념하는 좌담회에서 언급한 것처럼, 비록 이슬람의 ‘알라’가 삼위일체의 우리 하나님과 신학적 차이를 가지고 달리 해석된다고 하더라도, 무슬림들에게 온전하고도 참 하나님을 만날 통로가 제시되어야 한다.
또한, 그는 선교학적 입장에서 두 종교의 본질적인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과 기독교의 공존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선교의 상황화(Contextualization) 접근 방식으로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타자를 존중하며 이해하면서 복음을 제시할 것을 말한다.
아랍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 ‘알라’
2천 년 전 처음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였던 당시 아랍인들이 지금도 중동 지역에서 면면히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며 살아가고 있다. 비록, 많은 아랍인이 7세기에 아랍지역에서 탄생한 이슬람교를 받아들였으나, 아직도 여전히 아랍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면서 아랍어로 예배를 드리는 적지 않은 아랍 그리스도인들이 그 땅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들 아랍 그리스도인 모두는 하나님을 ‘알라’라고 부르고 있으며, 다른 선택은 없다. 그러므로, ‘알라’는 무슬림들만의 전용어이며, 우리 기독교인은 하나님을 향해 절대 ‘알라’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잘못된 생각이다.
호칭에 대한 논쟁에만 머물지 말자
이슬람 백과사전에 따르면, ‘알라’라는 단어는 이미 4천 년 전, 고대 시리아인으로 알려진 아람인들이 사용하던 고대 아람어 중 ‘Alaha’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Alaha’는 당시 고대 수리아인 사이에서 ‘Aloho’와 히브리어의 ‘Elah/Elahim’의 뜻을 가진다. 이후, 알라(Allah)라는 이름은 유대인을 비롯하여 아랍어를 사용하는 정교인, 가톨릭교인 그리고, 현대 아랍어를 사용하는 아랍 기독교인들에게까지 전해져 왔다.
그러므로, 우리가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향해 아랍 기독교인들이나 무슬림들처럼 ‘알라’라고 부르던, 하느님으로 부르던, 용어 자체가 우리를 기독교인이나 무슬림, 혹은, 다른 무엇으로 만든다는 생각에만 머물러 있지 말아야 한다. 진짜 문제는, 무엇으로 부르던 우리가 그 호칭 안에 내재한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확신하면서 그 의미로 사용하느냐, 그렇지 않으냐가 훨씬 더 중요하며 본질이 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를 통한 구속의 은혜로 구원을 허락하신 그런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고백에 합당한 감사를 그분께 우리의 삶으로 표현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입으로는 우리 하나님을 부르며, 찬양한다고 말하면서, 삶이 따라가지 않는 것은 아닌가? 이것이 더 중요한 사안이다. [복음기도신문]
김종일 | 장로회신학대학교 신대원 졸업, 전, 중동선교회(MET) 본부장, 현, 터키어권선교회 대표. 국내 이슬람권 선교사 네트워크(M-NET KOREA) 회장, 저널 ‘전방개척선교(KJFM)’ 편집인, 아신대학교(ACTS) 중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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