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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일 칼럼] 아프가니스탄 사태와 한국교회(1)

유튜브 채널 cts 캡처

밖에서 보는 이슬람(5)

얼마 전까지 전 세계가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이야기했다. 탈레반의 정권 재장악에 이어서 무력을 사용한 그들의 폭력적 행태로 지금 아프가니스탄 국민은 커다란 혼란 가운데 있다. 그 땅을 미처 못 벗어난 이들은 다시 예전의 원리주의 무슬림으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간신히 피난 길로 오른 대 행렬은 세계 최대의 난민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지는지 알고도 뛰어든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최근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가 가지고 올 작지 않은 파장에 대해서 그 땅을 사이에 두고 인접 국가 사이에서 벌써 치열한 외교 각축전이 시작되었다. 자국의 이익이 최우선인 국제 외교에서 득과 실을 논하면서 세계의 관심이 이 지역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더 안타까운 사실은 이러한 와중에 아프가니스탄의 수많은 국민이 시리아 난민에 이어 지금 세계 최대의 난민이 될 위기에 있다는 것이다. 이에 전 세계가 우려와 안타까움의 눈길로 저들을 주시하고 있다.

세계의 보안관 역할을 감당해 온 미국은 지난 20년 동안 이 지역을 향해 막대한 물자와 재정 그리고, 20만 명에 가까운 미군의 희생을 감수하고도 얻은 것은 고작 반복된 역사의 쓰라린 교훈뿐이다. 그 땅의 진정한 자립과 자전 그리고, 자치를 바랐던 미국이건만, 그러기에는 너무 무능했으며, 아프간 정부의 끊임없는 부정과 부패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이번 사태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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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이 여성헤어숍의 광고판을 지우고(왼쪽), 검은 비닐백으로 얼굴을 가려버린 여성 마네킹(오른쪽)

지난 2020년 2월 29일 카타르 도하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탈레반 지도자 물라 압둘 살람 자이프 등이 참석한 가운데 도하 협정이 최종 체결되었다.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무장 조직 탈레반이 20년 가깝게 이어온 무력 충돌을 마감하는 평화 협정에 서명하면서 미국과 나토 동맹국은 탈레반이 합의 내용을 지키는 조건으로 14개월 안에 모두 철군하기로 했다. 잘마이 칼릴자드 미국 아프간 특사와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 탈레반 지도자가 서명하며 성사된 당시의 평화 협정으로 2020년 5월까지 5천 명의 미군 병력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시키게 되었다. 물론 이 협정안에는 탈레반은 향후 알카에다 같은 극단주의 이슬람 무장 세력과는 함께 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 협정이 결코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번 협정 전, 당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9년 9월 8일 그의 트윗 메시지를 통해서 “미국-탈레반 협상은 죽었다(US-Taleban negotiations were “dead”)”라는 부정적 견해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도하 협정이 성사되었지만, 그 후 본 서명식을 위한 탈레반의 미국 방문은 거부되었으며, 이 와중에 탈레반의 카불 공격으로 미군 한 명과 민간인 열 한 명이 사망하는 사건까지 발생하였다.

아무도 풀 수 없을 것 같은 엉켜진 실타래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을 이해하려면 먼저 ‘듀랜드 라인’(Durand Line)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듀랜드 라인은 약 2640km에 이르는 현재의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을 말한다. 듀랜드 라인은 1893년에 영국령 인도 제국의 외무 장관이었던 모티머 듀랜드(Mortimer Durand)와 아프가니스탄의 국왕 압두르 라만 칸 사이에 체결된 조약의 결과로 만들어졌다. 듀랜드 라인은 1800년대 영국과 러시아 간에 수십 년간 이어졌던 ‘그레이트 게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시아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하려는 영국과 러시아의 상호 갈등이 계속되던 중, 1877년 영국이 인도 제국을 영국령으로 선포하고 아시아지역에서 우위를 선점한다. 러시아는 방향을 돌려 만주 쪽으로 진출을 시도하고, 당시 만주 지역에 경제적 이권을 가지고 있던 일본이 이에 반발하여 러일전쟁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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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에 확정된 듀랜드 라인.

러시아의 세력 확장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미국과 영국은 일본군을 지원하고, 전쟁에서 패배한 러시아군은 길고 긴 영국과의 세력 확장 싸움을 이어갈 동력을 잃게 된다. 이에 고무된 영국은 아프가니스탄을 확실히 점령하고자 전쟁을 벌였지만 1차 전에서는 패배하고, 2차 전쟁에서 승리하여 압두르 라만 칸이라는 꼭두각시 왕을 아프가니스탄 국왕으로 앉히게 된다. 압두르 라만 칸은 영국령 인도 제국이 요구한 대로 불평등한 조약에 순순히 응하고, 듀랜드 라인이라는 국경선이 그어지게 된다.

1947년 2차대전 종식과 더불어 영국의 인도 식민 지배는 끝이 나고, 영국령 인도는 인도공화국, 파키스탄, 미얀마 3개의 국가로 독립하게 된다. 파키스탄은 듀랜드 라인을 아프가니스탄과의 국경선으로 계승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은 조약 당사국이었던 ‘영국령 인도’ 자체가 소멸했기 때문에 조약이 무효라고 주장하게 된다. 듀랜드 라인으로 인해 졸지에 아프가니스탄 영토의 3분의 1이 파키스탄 소유가, 해당 지역에 거주하던 토착민 파슈툰족의 절반 이상이 파키스탄 국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실생활에서는 거의 의미가 없는 듀랜드 라인과는 상관없이 파슈툰족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끈끈한 동포애로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는 파슈툰족은, 언제나 서로 도우며, 탈레반이나 알카에다 등 테러 조직과 관련된 위험인물들도 동포라면 얼마든지 숨겨주고, 무기도 옮겨주고, 그렇게 평화롭지만 평화롭지 않은 삶을 이어가고 있다.

현대사 속 아프가니스탄

아프가니스탄은 인도양 진출의 부동항을 원하던 당시 소련의 대양으로의 진출로에 걸쳐져 있었다. 소련은 대양으로 나가는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아프가니스탄을 군사적으로 지원했다. 아프가니스탄 군부는 구소련에서 군사교육을 받고 돌아온 후, 1978년 쿠데타를 일으켜 공산정권 수립에 성공하지만, 당시 아프간 주민 대다수가 이슬람 순니파였던 주민의 반감을 사게 된다. 이에 순니 무슬림 부족을 중심으로 소련의 공산정권에 저항하는 내전이 시작되었으며, 당시 공산정권에 저항하는 반군 게릴라들을 이슬람의 전사라는 뜻을 가진 ‘무자헤딘’이라 부르게 된다. ​

1979년 3월. 아프가니스탄 정부 주력군 17사단이 반군으로 이탈 합류했고, 17사단에 와 있던 소련 군사고문단, 간호사, 군인 가족 500여 명이 반군들에게 학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소련은 이에 보복하고자 같은 해 12월 아프가니스탄을 전면 침공한다. 이때부터 순니 이슬람 반군인 무자헤딘의 지하드 상대는 소련군이 되었으며, 산악지형을 이용해서 게릴라전으로 소련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한편, 옆 나라 파키스탄으로서는 소련의 아프간 내에서의 전투는 결국 파키스탄의 부동항인 과다르항의 점령으로 이어질 것을 두려워했으며 결국 주변 순니 무슬림 국가와 함께 소련 타도를 외치며 지하드를 선언하게 된다.

우리가 20세기 열강의 각축전에서 늘 보아왔던 분쟁지역에서의 긴장과 견제는 구소련을 향한 견제의 결과로 미국은 이슬람 무장세력인 아프간 무자헤딘에게 첨단 무기를 제공하기에 이른다. 결국 당시 소련은 10년간의 아프간 전쟁에 62만 명을 투입해서 약 1만 5천 명의 전사자를 내며 퇴각한다. 소련이 퇴각한 뒤 아프가니스탄은 무자헤딘과 지방 군벌이 합쳐져 무법천지가 되어버린다. 이 당시 사우디 출신의 빈 라덴의 출현은 알카에다라는 이슬람 무장세력을 조직해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지역에서 세력을 키워나가게 된다. 이미 구소련을 상대로 지하드를 선포하며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지역에 모여든 순니 이슬람 무장세력 손에는 당시 소련 견제를 위해 미국으로부터 받았던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 바로 이것이 탈레반의 시작이다. 탈레반은 종족으로는 인도계 파수튠 족으로서 아프가니스탄 전체 인구에서 가장 많은 40% 정도를 차지하는 이슬람 순니 무슬림이다. 탈레반이라는 말은 이슬람 신학생들을 지칭하는 말인데, 오사마 빈 라덴이 제공하는 막대한 재정에 미국으로부터 구소련 타도를 위해 이미 받아 놓은 강력한 무기, 그리고 여기에다 지하드 정신으로 똘똘 뭉쳐서 자살폭탄도 불사하는 강력한 이슬람 테러 조직으로 부상하며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한다.

이때 중동에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1990년), 이에 위협을 느낀 사우디 왕정은 미국에 군사 지원을 요청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스라엘 건국(1948년)은 결국 미국의 배후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며 그동안 중동의 아랍 무슬림들은 이스라엘과 미국을 같은 원수로 여겨 왔었다. 그런데 사우디의 안보와 국익을 위해 적으로 간주해온 미국을 이슬람 성지 역할을 하던 사우디 땅으로 정당하게 들어오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사우디 내 미군의 주둔은 비록 사우디 왕가의 요청으로부터였다고는 하지만, 이슬람 순니 근본주의 무슬림들의 눈에는 과거 구소련이나 지금의 미국이 별로 다르지 않게 자신들의 신성한 땅을 더럽히는 이교도 그룹으로 보일 뿐이며, 그래서 율법대로 처단해야 하는 지하드의 대상이었다. 이때부터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 조직의 지하드 대상이 구소련에서 미국으로 바뀌었는데, 이때의 사건이 바로 2001년도의 비극적인 911테러 사건이다.

911 사건으로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을 찾으러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가면서 당시 탈레반 정권(1996~2001)을 붕괴시키고, 20년(1991년~2001년) 동안 친미 아프간 정권의 설립을 뒤에서 도우며 오늘에까지 이른 것이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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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일 | 장로회신학대학교 신대원(M. Div.) 졸업, 전 중동선교회(MET) 본부장, 현, 터키어권선교회 대표. 국내 이슬람권 선교사 네트워크 회장, 저널 ‘전방개척선교(KJFM)’ 편집인, 아신대학교(ACTS) 중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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