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GTK 칼럼] 당신은 죽음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사진: Rhodi Lopez on Unsplash

만일 치명적인 병에 걸린 환자에게 죽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을 안쓰러워해서 그의 병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하지는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환자가 낙관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어 그의 상태가 조금 호전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는 잘못된 희망으로 자기 죽음을 준비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희망은 희망이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살겠다는 의지와 희망을 품게 될지 모르지만, 그 결과는 비극적일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일을 전혀 알지 못하지만, 우리가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게 압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확실한 사실에 대해서 말하거나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준비하지도 않습니다.

3000여년 전에 살았던 이스라엘 왕, 솔로몬은 엄청난 재력과 지혜 그리고 권력을 가졌던 온 천하를 얻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솔로몬이 죽음 앞두고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라 말했습니다.

3000년이나 전에 살았던 솔로몬의 생각이 21세기를 사는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솔로몬이 전하는 전도서의 내용은 그가 살았던 그 시대의 상황이 우리가 사는 세상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가난한 자들은 세상의 권세들에 학대를 받았습니다.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 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전 4:1)

정치는 정의와 공의를 잃었습니다.

​“너는 어느 지방에서든지 빈민을 학대하는 것과 정의와 공의를 짓밟는 것을 볼지라도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높은 자는 더 높은 자가 감찰하고 또 그들보다 더 높은 자들도 있음이니라.”(전 5:8)

어리석은 자들이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우매한 자가 크게 높은 지위들을 얻고 부자들이 낮은 지위에 앉는도다 또 내가 보았노니 종들은 말을 타고 고관들은 종들처럼 땅에 걸어 다니는도다.” (전 10:6-7)

악인들이 범죄하여도 공정하게 벌하지 않기에 악은 더욱 횡행했습니다.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전 8:11)

사람들은 끝없이 재물 만을 추구했습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 5:10)

옛날이 오늘보다 더 좋았어라고 말했습니다.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전 7:10)

놀랍지 않습니까?

솔론몬이 살던 시대와 우리의 시대에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나 풍요한 물질과 삶에 필요한 혁신적인 기구들과 눈을 즐겁게 하는 각종 오락이 주위에 즐비한 것입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나 우리들이나 마찬가지로 여전히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고민하고 무언가가 있지만, 결코 찾지 못하여 불안해합니다. 자신을 만족하게 해 주는 확실한 것을 찾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하지만, 아무것도 확실하게 찾지 못하고 죽어갑니다.

사람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자신들이 사는 “해 아래”가 아니라, “해 위”에서 자신의 문제를 내려다보는 것입니다. “해 아래”에 살고 있지만 마치 자신이 “해 위”에 있는 하나님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행동으로는 “해 아래”에 있는 헛된 것들을 추구합니다. 결국 이 잘못된 비전은 그릇된 가치관을 갖게 합니다. 그 결과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그의 삶은 허무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는 허무함과 패배일 수밖에 없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3000년 전의 일들이 오늘도 내일도 목적 없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이 한 세대가 죽고 또 그다음 세대가 그렇게 제자리에서 쳇바퀴를 돌리며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의미함은 사회 전체의 의식에 스며들어 인간의 영혼을 무자비하게 갉아먹는 것이 참혹한 현실입니다. 출구가 없습니다. 세상은 모든 질문 앞에 침묵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블레즈 파스칼이 ‘나는 무한한 공간의 침묵 앞에서 공포에 휩싸였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이 섹스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기피하는 것처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기피합니다. 그리고 온갖 세상의 쾌락 거리로 마치 죽음은 자신과 상관이 없다는 듯이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 세상에 전도자가 질문을 시작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설명하며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전혀 모른 채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당신은 수수께끼와 같은 인생에 대한 모든 답을 모르지 않습니까?

삶 속에서 행하는 당신의 노력이 당신에게 별로 만족할 만한 희망이나 답을 주지 못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자연을 통해서도 역사를 통해서도 결코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당신이 좋아하지 않지만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와 같은 인생을 살다가 죽을 것이 확실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두려워하고 해결할 수 없다고 포기하고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고 시도합니다.

그러나

만일 상황이 당신이 생각한 것과 완전히 다르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일 이 우리의 삶이 이 세상에서 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일 진짜 하나님이 계시고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시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일 하나님의 최고의 특징이 믿을 수 없는 관대하심으로 기꺼이 주시고 주시고 또 주시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셨고,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받아들이는 분이시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솔로몬은 하나님을 알고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큰 축복을 받았지만, 여호와를 버리고 자신이 원하던 대로 인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비관적이고 회의적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삶에는 하나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가 인생의 마지막에 전도서를 썼고 그의 메시지를 이렇게 마쳤습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전 12:13–14)

그러나 그의 메시지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완전한 빛이 있기 전에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멀리 떨어진 미래’를 보며 우리에게 스스로 질문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나 같은 죄인을 받아 주실 수 있을까?

어떻게 나는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고, 그의 명령을 완전하게 지켜 그의 심판을 면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에는 누락된 무엇이 없을까?

누락된 연결 고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길이요 진리이며 하나님께 가는 유일한 길이신 (요 14:6)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을 이기셨고 “부활이요 생명”(요 11:25)이십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됩니다. (고후 5:18).

죽음이 두려우십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거듭되는 복음의 메시지를 듣고서도 어떤 사람은…. 비웃습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는 당신의 말을 다시 듣고 싶습니다.”라 말합니다. … 또 어떤 사람은 “나는 교회에 다니고 모태 신앙이니 괜찮아”라 하며 자위합니다……어떤 사람은 복음의 메시지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믿습니다.

만일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구원의 확신이 없으시다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은 모든 죄를 회개하고 이 세상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것만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준비하고 죽음 뒤에 기다리고 있는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믿는 자라면 청년이나 노년이나 할 것 없이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12)라고 기도하며 범사에 주님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복음기도신문]

이 글은 Michael A. Eaton 과 Warren Warren Wirsbey 목사님의 전도서 주석을 인용하여 쓴 것입니다.

김상우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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