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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의 두려움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마음을 열어두라

▶ 1918년, 프랑스 내 미 육군병원에서 스페인 독감에 걸린 원정군 희생자(출처: denisonforum.org 캡처)

[224호 / 코로나 특집]

4월 중순 현재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4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사망자 수도 4500명이 넘는다. 특히 무증상자도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죽음의 공포가 우리를 휘감고 있다. 이에 기독 칼럼니스트 짐 데니슨 박사는 데니슨 포럼의 기고문을 통해 미지의 공포에 직면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믿음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를 소개했다. <편집자>

로버트 레드필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국장은 “확진자 상당수가 무증상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런 경우를 최대 25% 정도로 보고 있다.”며 “무증상자들이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상당히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실제로 무증상자들로 인해 감염이 된 사실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확진자들 또한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최대 48시간 동안 증상이 보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알든 모르든 코로나19에 감염됐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또한 무증상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감염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러스 보다 더 큰 두려움”

역사적으로 유사했던 경험을 살펴보자.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1918년에 일어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한 ‘스페인 독감’이 최근 역사상 가장 심각했던 전염병이었다.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인 약 5억 명의 사람들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망자 수는 전 세계적으로 5000만 명이 넘으며 미국 내 사망자 수도 67만 5000명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1918년에 발생한 스페인 독감은 팬데믹이었다. 인류 역사상 그 어떤 질병보다 많은 사람들을 죽였던 전염병이다. 기록에 따르면, 1918년 인플루엔자 사망자들은 훨씬 더 참혹하고 빠르게 사망했다. 마치 배 앞에 놓인 파도처럼 1918년을 뒤덮은 두려움은 바이러스 자체에 대한 두려움보다 훨씬 컸다. 두려움은 사람들을 밀어붙였고 정부와 언론은 두려움을 통제할 수 없었다. 미지의 짐승이 정글에서 우리를 쫓아오는 것처럼, 공포는 그렇게 우리의 어두운 마음 속에서 생겨난다. 어둠에 대한 두려움은 대부분 육체적인 현상으로 드러난다. 공포영화는 우리가 볼 수 없고, 알 수 없을 뿐더러 안전한 피난처도 찾을 수 없는 불확실하고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일으킨다. 하지만 모든 공포영화에서 공포를 일으키는 귀신이 일단 등장하고 나면 그것에 대한 공포심은 줄어들게 된다. 물론 두려움은 남아있을 수 있다. 하지만 미지의 귀신이 만어 낸 공포는 사라지게 된다.

외국인 혐오증은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정의된다. 특히 우리가 우리 삶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고 느낄 때 우리의 마음을 쇠약하게 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내 인생을 통틀어 현재 가장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 끔찍했던 9·11 테러도 미국인 일부에게만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을 뿐이다. 대공황 또한 우리를 육체적으로 위협하지는 못했다.

우리가 코로나19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 주된 원인은 그것이 미지의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19 사태가 얼마나 심각해질까? 팬데믹이 완전히 종식되면 그때 우리들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코로나19로 죽게 될까? 아니면 내가 죽게 될까?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들에 대한 잘못된 대답은 현실의 위기를 부정하며 현실도피를 택하게 한다.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하라”

기독교 작가 프레드릭 뷰크너는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종교는 종종 도피주의로 비난을 받아왔으며, 실제로 나타나는 일이기도 하다. 도피주의는 세상에 만연해 있는 고통과 악을 부정하는 것이다. 또한 도피주의는 하나님이 그들을 안전하게 돌봐주실 것이라는 막연한 가정하에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져야 할 책임을 져버리는 것이다. 특히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신성한 심판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타인을 무너뜨리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천국에 그들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는 거짓말로 그들이 스스로 물러나도록 얘기한다. 또한 죽음 같은 것은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믿음을 위협하는 그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고 직면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종교를 통해 현실을 도피하고자 하는 도피주의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뷰크너는 “포로나 노예에게 해방이 필요한 것처럼, 현실에서 도망가고자 하는 모든 열망이 도피주의로 비난 받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요한복음 8장 31~32절 말씀을 인용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그는 “죄가 우리를 속박할 때, 죄에서부터 자유를 누리라. 우리들의 욕심만 채우려고 하는 좁은 벽에 둘러싸인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누리라. 또한 우리들 자신의 더러운 본능, 거짓됨, 속임수 같이 우리를 죄의 노예로 만드는 것들로부터 자유를 누리라. 책임져야 될 것을 버리고 떠나라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지는 자유를 누리라.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현실 속으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뷰크너는 “우리 모두가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은 다람쥐 쳇바퀴에서 탈출하여 ‘우리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풍경 속으로 들어갈 때”라고 덧붙였다.

한 전도자는 예수님께서는 “내 말에 거하면”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있도록 우리를 초청했다고 말했다. 이 말은 성경적으로 살라는 뜻이다. 성경에서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고, 성경에서 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은 하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이 잘 모르는 것을 직면했을 때에는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행하라.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 당신이 알아야 할 ‘진리를 알게’ 해주실 것이고 이 진리가 ‘당신을 자유케’ 하여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하고, 주님을 신뢰하게 하며 다른 사람들이 주님을 믿을 수 있도록 돕고, 당신이 주님을 알고, 주님을 주위에 알릴 수 있게 할 것이다.

전도자는 끝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최근에 하신 말씀을 신실하게 믿고 다음에 또 하실 말씀을 위해 마음을 열어두라.”고 말했다. [복음기도신문]

번역=본지 국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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