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로 헌신한 지 3년이 되었다. 부르신 사역지마다 진하게 나를 만나주신 주님께서 이번에는 소속 선교단체 선교사를 양성하는 훈련학교로 불러주셨다. 새로 이사하게 된 공동체는 여러 선교단체가 함께 지내는 곳이었다. 숙소 사용도 다른 단체의 사역자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이사를 와서 처음 숙소에 들어가 보니 창고처럼 짐들이 쌓여 있었다. 서랍장이나 행거 같은 가구가 하나도 없었다. 한쪽 벽에 여러 칸의 나무 선반이 있었지만 이미 물건들이 여기저기 놓여있어, 함께 쓰기가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짐을 풀 수가 없었다. 당장 필요한 것들만 꺼내어 쓰고 다시 넣어 두었다.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속으로 ‘감사하자’를 되뇌며 스스로 위로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던 중에 또 다른 단체에 헌신한 형제 사역자 한 분이 오게 되었고 이제 3명이 함께 방을 쓰게 되었다. 어느 날 그 형제가 속해있는 단체의 대표께서 우리 방을 방문했다. 그리고 우리 방을 보시고는 좀 놀라셨다. 내가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서랍장과 장롱, 행거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신이 났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렇게 허락된 가구들을 나르던 중 내 입에서 한 마디가 불쑥 튀어나왔다. “대표 선교사님이 신경 써주시니까 다르네!” 이 말에는 지금까지의 상황에 대한 불만이 담겨있었다. 그때 함께 가구를 나르던 지체가 내 말이 끝나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주님이 하셨지.” 나는 그 말을 듣고 머리를 세게 한 방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주님은 그동안 여러 가지 감격스러운 상황에서 “주님이면 충분하다!”라고 담대히 외치게 해주셨다. 그런데 어느새 주님의 허락하심에 대한 감사도, 주님의 통치하심에 대한 신뢰도 잃어버리고 주님과의 교제도 없었으며, 주님께서 허락하신 것을 사람이 주셨다고 고백하는 심각하게 병든 나의 실상을 발견하게 됐다. 주님께 정말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주님이 나에게 어떤 분이신가.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아들을 내어 주셔서 구원하여 주셨을 뿐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이 영광스러운 자리로 불러주신 분 아닌가. 방에서 혼자 한참을 울었다.
위기라고 느껴졌다. 이는 사역을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주님의 통치하심보다 사람이 더 크게 보고 있는 나. 사람의 어떠함 때문에 일이 되는 것 같고 사람의 영향력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 같이 보이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주님에 대한 신뢰나, 교제, 감격이 있을 리 없었다. 분명 위기였다. 주님께 회개하며 기도했다.
“주님, 주님과의 사랑과 기쁨의 교제를 잃지 않게 해주세요. 주님이면 충분했던 그 감격을 다시 회복하게 해주세요. 허락하심이 가장 좋은 것임을, 그리고 분명히 주님이 모든 상황을 통치하고 계심을 믿게 해주세요.” 주님은 나의 가난하고 낮아진 마음을 받으셨고, 나는 그 기도를 들어주셨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너무나 마음 아프고 죄송한 사건이었지만,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나에게 주님 한 분이면 얼마나 충분한지를 더욱 알게 하셨다. 너무나 감사했다. “주님이 하셨습니다.”라는 말이 구호가 아닌 나에게 진리가 되도록 다시 한번 새겨주셨다.
이제는 내 앞에 있는 상황에 무릎 꿇지 않을 것이다. 어떤 상황에도 주님과의 교제를 잃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나보다 더 원하시는 주님이 친히 이루실 것이다. 이렇게 주님과 함께 교제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쁘게 맞이할 것이다. 내 안에서 계속 나를 정결하게 하시는 주님을 보며 열방이 소망 있음을 본다. 주님은 마침내 당신의 백성들을 원래 지으셨던 목적대로 회복하실 것이다. 함께 주님을 찬양하며 영원히 주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게 될 것이고 모두가 주님이면 충분하다고 외치게 될 것이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GNPNEWS]
남연희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