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이 땅의 논리와 이성, 상식과 과학의 울타리에 갇혀 사는 현대인들을 향하여 초월적인 기적이 존재하며 우리는 그 기적 속에서 숨 쉬고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예수님을 믿으며 단란하게 살아가던 한 가정에 건강하던 둘째 딸 애나(10세)가 불치의 병에 걸린다. 정상적이던 이전의 모든 삶의 질서가 무너지고 이들 가족의 삶은 전혀 다른 패턴으로 변해버린다.
애나는 어떤 음식을 먹어도 소화시킬 수 없다. 심지어 공기를 마셔도 뱃속에서 부풀어 쉬지 않는 고통을 고스란히 맛보며 죽음을 기다려야 했다.
행복하던 가정은 서로를 돌볼 수 없었고, 애나를 위하여 아빠는 두 개의 직장을 잡아야 했으며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팔아야 했다. 엄마는 집에서 비행기로 세 시간 떨어진 보스턴의 한 병원에서 애나를 간호했다. 하지만 그 분야의 가장 유명한 의사조차도 더 이상 치료를 포기하며 손을 놓았다.
집에 돌아온 애나는 언니와 함께 평소에 하던 대로 오래된 고목나무에 오르게 된다. 애나는 손을 잘못 짚어 속이 텅 빈 9미터 높이의 고목나무 속으로 떨어져 버린다. 엄마는 절박한 상황에서 처음으로 진정 하나님을 경외하는 심정으로 주기도문으로 기도한다. 구조대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구출돼 병원으로 옮겨진 애나는 의사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전해 듣는다. 약간의 찰과상만 입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애나는 더 이상 진통제도 먹지 않고 아프기 이전처럼 몸이 회복되어 씩씩하게 뛰어논다. 의아해하는 부모에게 애나는 자신이 고목나무 속에 떨어졌을 때 만난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시 깨어나면 병이 깨끗하게 나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단다. 너무 황당한 이야기였고 터무니없어 보이는 이야기였지만 애나는 확신이 있었다. “때가 되면 모두가 알게 되겠지요.” 애나에게 기쁨과 자유가 넘쳐흘렀다.
일상에서 벌어진 기적 속에서 만난 하나님
이 영화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단순히 병이 낫는 기적이 아니었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일상의 삶 속에서 벌어진 기적을 말하고 싶었다. 애나와 엄마가 수소문 끝에 전문의를 찾아갔지만 예약 대기자가 너무 많아 치료를 받을 수 없어 절망하고 있을 때 친절을 베풀었던 식당 종업원, 다시 찾아간 병원에서 그녀를 측은히 여긴 신입사원의 보이지 않는 도움으로 치료를 받게 된 일, 점점 악화되는 애나를 만나러 가기 위해 공항에 간 아빠와 자매들이 카드 한도 초과로 비행기 티켓을 사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일부러 컴퓨터 전원을 꺼서 수동으로 티켓을 발권해준 직원.
이 모든 사건들은 우연이나 인간의 계획된 시나리오가 아니라 모두 하나님의 손길이었다는 것이 이 영화의 초점이다. 9미터 높이에서 떨어졌는데도 살아난 기적보다 그 기적의 주체자이신 하나님을 보여주고자 했다. 고목나무 속으로 떨어지며 머리를 부딪힌 애나가 병이 나았다는 사실을 의학적으로 설명해 내려고 했던 애나의 주치의 역시 결국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상의 모든 시간과 모든 사건은 우연이나 무료한 반복이 아니다. 오늘은 어제의 반복이 아니라 기적의 하루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삶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이다. 허락된 모든 상황을 최선으로 받고 매순간마다 살아계신 주님의 손길을 인식하는 삶은 힘차고 역동적이며 날마다 새로운 믿음의 삶이 되는 것이다. 대단한 이적, 사건이 일어나는 곳에 계신 하나님은 우리가 잠에서 깨는 아침에도 함께 계신 하나님이시다.
가장 위대한 부흥이 일어난 그 때 뿐만이 아니라 가장 흑암이 짙었던 암흑시대에도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통치자이시다.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될 때까지 쉬지 않으시고 역사 속에서 힘 있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오늘도 일상 속에서 경배하자. 십자가로 우리와 영원한 연합을 이루셔서 임마누엘 하신 주님은 최고 최대의 기적이다. [GNPNEWS]
김도승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