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무소유의 삶을 선포하는 이 순간 나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자입니다”

이상호 집사 (선한목자교회)
이상호 집사   (선한목자교회)
이상호 집사 (선한목자교회)

작년 10월 복음사관학교 훈련기간에 가졌던 느헤미야52기도 가운데 있었던 일이다. 당시 내 마음에 혼재하는 것들이 있었다. 주님의 비전과 내 욕망이 뒤범벅이 되어 주님 앞에 기회만 닿으면 칭찬 받을 것이 라고 생각했던 크리스천 펀드의 기획안 그리고 사업계획서.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었고, 사탄의 앞잡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비추어주시며 그동안 하나님 앞에 감추어졌던 나의 존재적 죄인 됨을 보게 되었다. 도비야처럼 성전 골방을 더럽힌 자가 나임을 알게 하신 것이다.

‘내가 심히 근심하여 도비야의 세간을 그 방 밖으로 다 내어 던지고 명하여 그 방을 정결케 하고 하나님의 전의 기명과 소제물과 유향을 다시 그리로 들여 놓았느니라’ (느 13:8~9)  거룩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나라. 하나님 나라. 힘으로도 못 가는 나라. 돈으로도 못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이제 결정해야 했다. 세상인가? 하나님 나라인가? 도비야가 떠나간 그 방! 세상이 떠나간 그 곳! 내 마음을 말씀과 기도로 채울 것을 결단했다.

단, 한번도 무소유로 살아갈 것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물론 주님을 만날 때 내 상황과 환경이 빚진 자 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마 그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두려움이었던 것 같다. 주님 앞에 나아갔을 때 난 여전히 반문한다. “무소유의 삶이 이기적인 것 같습니다. 받아서 쓰겠다는 것이니까요. 또 흘러 보낼 것도 없다는 이야기니까요. 생명이 생명을 낳듯 재정 역시도 같은 이치 아닌가요? 사탄의 말장난이다. 무소유로 살아가는 것과 재정의 흐름과는 별개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가진 자가 되어 흘러 보낼 수 있기를 바라고 포장한 채 내 안에 가득 차 있는 그것은 무엇인가? 결론은 무엇인가? 난 돈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또 그것이 믿음 없음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결론을 보며 다시 주께 반문한다.

순회선교사가 아니어도 무소유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주님이 말씀 하신다. “시험 해보라. 그리고 확증 하 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10)  이렇게 무소유를 결단하고 세상과의 결별을 시험할 것을 결단했지만 용기가 없어 세상은 모르게 선포한 채 5개월이 지났다. 지역교회 3곳을 돌며 기도하며 복음기도신문을 돌리던 어느 덧. 아무 일 없어 보이는 듯 했지만 실상, 생활비를 줄이고 줄여서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상황이되었고, 세금이 밀려서 더는 못 견딜 것 같은 두려움이 찾아왔다.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재정을 구하는 나를 보며 한없는 비참함과 절망을 보았다.

더는 이 생활을 못할 것 같아서 그만두려 할 때 마다 주님은 철저한 당신의 은혜로 또 하루를 가게 하신다. 전에는 알 수 없던 은혜. 한 끼를 먹어도 주님의 은혜요. 아이가 학교를 다녀와도 주님이 하신 것이요. 잠자 리에 들어 하루를 마치는 기도를 할 때는 주님의 영광이 드러난다. “오늘은 마지막이다, 더 이상 갈 곳이 없 다.”라고 말하는 날에는 여지없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방문해서 복음을 나누고 더욱 견고케 하시니 놀라운 주의 섭리가 아닐 수 없다. 너무나도 명확하게 결론을 내려주신다. 진리가 결론이다!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여 일어날지어다! 내 뜻대로 사는 것 아니요. 단 하루를 살아도 주님 뜻대로 사는 것이다. 주님 만나고 덤으로 살아가는 인생 하루를 살아도 무조건 수지 맞은 일 아닌가? 설령 오늘 죽는다 해도 나와 우리집 가족들은 성공한 인생을 살다가는 것이다. 언제까지 상황과 조건이 맞지 않는다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을 것인가? 언제까지 ‘이것만 해결되면’ 이라고 말 할 것인가? 세상가치로는 실수와 실패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믿음의 실험을 멈출 수 없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것을 믿기 때문이며, 하나님 나라는 실존하는 나라임을 믿기 때문이다. 담대하라! 까짓 것, 다 해봐야 죽기밖에 더 하겠는가? 첫 부르심이 최상의 선택 이었다면, 나중 부르심은 주를 떠나서 살래야 살 수 없는 자의 돌이킬 수 없는 필연의 선택이다. 주의 종이란, 주님의 은혜에 잠겨 주님이 전부가 되어버린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구할 것은 더욱 더 주님일 수밖에 없다! 무소유의 삶을 선포하는 이 순간 나는 정말 모든 것을 다 가진 자 이다. 왜냐하면 창조주되신 주님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럼 더욱더 진리 되신 주님 안에서 세상이 아닌 실재하신 살아계신 주님을 누릴 것이다. 주를 누리는 자 풍요롭다. 주를 누리는 자 실로 안식하는 자 이다. 주님이 나의 보증이 되어 주시리라.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여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여 일어날지어다!‘ 끝은 반드시 올 것이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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