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교회에게 가장 시급한 필요는 참된 설교라고 했던 로이드 존스의 말은 유명하다. 설교가 교회에게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필요라면, 그건 세상에게도 똑같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필요라는 의미이다. 참된 성경적인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다룰 것을 요구한다. 마크 데버가 말했듯 신실한 설교자는 “구절의 주요 요점을 설교의 주요 요점으로 만드는” 사람들이다. 참된 설교는 힘든 일이며 설교자는 설교 기술 측면에서 계속해서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 발전하는 설교라는 말 속에는 실수의 교정도 포함된다.
설교의 목표는 완벽함이 아니라 본문을 충실하게 다루는 것이다. 그렇게만 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발전한다. 설교자라면 설교에서 저지른 실수와 관련해서 다들 나름의 다양한 사례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실수와 더불어 그로 인해 개선된 부분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타인의 실수와 경험으로부터 배운다. 그래서 나는 설교자로서 내가 저지른 열 가지 실수를 공유하려고 한다. 내 실수에서 여러분이 교훈을 얻고 발전하기를 바란다.
1. 적용이 없는 지식 설교
설교에 대해서 내가 들은 가장 유용한 조언의 하나는 “무엇”과 “아니,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두 가지 질문에 모두 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씀 중심의 설교는 성경의 진리(무엇)를 진술한 다음에 교인들에게 그 진리의 적용까지(아니, 그래서 어쩌라고?) 알려주어야 한다.
너무나 많은 설교가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한 의미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상태에서 단지 성경적, 신학적 진리의 “자료 더미”로 전락하고 있다. 성경 저자들조차도 “그러므로”라는 부사를 사용했다. 기독교 교리는 “그러므로”에 근거해 적용되어야 한다. 삶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성경의 진리가 선포될 때, “아니, 그래서 뭘 어쩌라고?” 하는 질문이 교인들로부터 나와서는 안 된다.
2. 나의 세계관(선입관)을 전달하는 설교
내가 끊임없이 저지른 또 다른 실수는 나의 특정 프레임워크를 염두에 두고 말씀에 접근하는 것이다. 프레임워크는 설교자에게 관심 있는 신학 체계 또는 특정 주제를 의미한다. 나는 일 년간 온통 교회론에 미쳤던 적이 있다. 모든 말씀을 오로지 교회론의 렌즈를 통해서만 바라보았다. 그때 나는 내 잘못을 깨닫지 못했다. 어느 날 교인이 말했다. “목사님의 모든 설교와 성경 공부는 다 교회론에 관한 것뿐입니다.”
프레임워크 자체가 반드시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프레임워크로 시작할 때, 우리는 말씀이 나를 지배하도록 하는 게 아니라 말씀에 내 생각을 주입한다.
3. 상상의 교인들에게 설교하기
설교자는 누구나 롤 모델이 있고 그로부터 배운다. 게다가 인터넷 덕분에 전 세계의 설교자로부터 설교의 기술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 초래한 불행한 결과가 있다. 당신이 본받고 싶어하는 설교의 영웅이 다루는 모든 설교 주제를 당신 교회의 상황과 관계없이 다 설교하고 싶은 유혹이다.
그 결과 당신은 앞에 있는 교인들이 아니라 머릿속에 있는 교인들에게 설교하게 된다. 미시간 디트로이트에 사는 교인들에게는 관련이 있지만 우사킬레, 키트웨에서 사는 교인들과는 하등의 관련이 없는 문제를 웅변적으로 다룰 수도 있다. 당신은 분명히 설교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그 설교를 듣는 교인들은 당신의 상상 속에나 있지 현재 교회에 앉아 있는 교인들이 아니다.
4. 전체 교인을 다 고려하지 않는 설교
어느 주일 저녁, 한 여자 교인이 설교에 은혜를 받았다고 말했다. 자신과 남편에게 큰 도움을 준 설교였다고 고마워했다. 하지만 아이들과 관련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도움을 주는 피드백이었다. 교인들은 다양한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고 교인들마다 삶의 계절과 단계도 다르다.
따라서 교인들 모두가 말씀을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설교에서 소외되는 교인들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5. 복음과 연결되지 않은 설교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의 중심 주제이다(고전 15:1~4). 예수님은 모든 성경이 자신을 가리킨다고 주장하셨다(눅 24:44~48). 그러므로 충실한 설교는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의 삶, 사역, 죽음, 부활, 승천까지 모든 사실을 다 연결해야 한다.
복음과 연결되지 않은 설교는 결국 도덕적 설교로 끝날 뿐이다. 하나님의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은 채 무엇이 옳고 그른지만 말한다. 이런 설교는 분노만 일으킬 뿐 소망이 없다. 좌절한 교인들은 소리를 지르고 설교자는 좌절하고 분노한다. 소망이 없는 이유는 설교자가 더 열심히, 더 큰 소리로 설교하면 그들이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주 예수님만이 우리의 삶과 죽음에 대한 유일한 소망이다. 이런 설교는 마치 의사가 처방전 없이 진단을 내리는 것과 같다. 도덕적 설교는 율법적 공동체를 만들 뿐이다.
6. 맥락을 놓친 설교
성경 공부와 말씀 이해에 있어서 마치 진리처럼 간주되는 게 ‘문맥이 전부다’라는 말이다. 모든 구절은 성경이 기록되던 당시의 청중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구절에는 나름의 당시 상황이 있다. 또한 문학적 맥락뿐 아니라 전후 구절이 있다. 또한 성경 전체의 맥락까지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설교자는 말씀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이러한 맥락을 알아야 한다.
맥락을 모르는 설교자는 말씀을 왜곡(문맥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사람) 또는 틀리게 취급(문맥을 모르는 사람)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예레미야 29:11은 건강과 부를 설교하기에 좋은 구절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맥락을 보면 청중은 포로로 잡혀 있었고, 그 후 70년 동안 유배 생활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의 맥락을 무시하는 설교는 언제나 이 구절을 잘못 다룬 결과에 다름 아니다.
7. 설교가 성취할 수 있는 것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
정기적으로 설교를 시작했을 때, 나는 설교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에 빠져 있었다. 어떤 이슈에 대해서 설교하면 교인들 사이에 즉시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설교해도 즉각적인 부흥은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좌절감을 느꼈다. 교인들이 왜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지 답답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하루에 한 끼만 먹이면서 아이가 쑥쑥 크기를 자라는 부모와 똑같다. 성경은 우리가 처음에는 갓 태어난 아기처럼 젖을 먹어야 한다고 알려준다(벧전 2:2).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신자는 고기를 씹도록 성숙해야 한다(히 5:11~14). 영적 성숙은 하나님의 말씀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때 일어나는 결과이다. 설교자는 하나님이 이루실 위대한 일을 기대해야 한다. 그리고 길게 보고 설교해야 한다.
8. 나를 설교의 영웅으로 만들려는 시도
설교자는 거룩의 가면이라는 유혹에 직면한다. 단지 설교했다는 이유만으로 설교자가 설교 내용대로 살 거라는 잘못된 관념에서 비롯된 가정이다. 입으로는 진리를 전파하나 삶은 진리와 얼마든지 동떨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자신을 거룩함의 기준으로 내세우는 건 설교자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설교자는 모범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오로지 그리스도만이 기준이다. 자기 설교에 자기가 영웅이 되어, 자기가 얼마나 훌륭한 남편이나 아버지인지 자랑하는 것은 쉽다. 전도나 기도에 있어서 자랑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겸손함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설교자는 교인들을 오로지 그리스도께로만 인도해야 한다.
9. 본문의 강조점을 무시하는 경우
설교 준비의 원칙 중 하나는 모든 구절이 강조점을 드러내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강조점이 설교의 형태를 구성해야 한다. 설교에서 흔히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가 본문의 구조를 무시하여 저자의 강조점을 놓치는 것이다. 그 결과 얼마든지 잘못된 본문에서 올바른 내용을 끄집어낼 수도 있다. 저자의 주장과 본문의 강조점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본문의 구조와 강조점을 무시하는 설교는 종종 각 구절에 대한 주석 읊조림 또는 단지 해당 본문을 토대로 하는 조직 신학 강의로 끝난다.
10. 빈약한 논증과 묘사
어느 주일 점심 식사 때 사랑하는 아내가 물었다. “도대체 오늘 무슨 말씀을 전하고 싶었던 거야?” 그래서 나는 그날 설교를 매우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그러자 아내가 말했다. “설교를 그렇게 했어야지요.” 내가 정기 설교자로 일한 지 2년 차에 한 젊은 여자 교인이 내 설교를 적은 설교 노트를 보여주었다. 그러고는 “나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직함이 없어요. 설교할 때 정확하게 직함을 알려주지 않아서 그래요.” 말했다. 작년에 아내는 내게 설교 서론만큼이라도 한 자도 빠짐없이 미리 원고를 써서 준비하라고 닦달했다.
이 모든 대화는 내가 설교를 명확하고 설득력 있게 만드는 방식으로 능숙하게 또 적절하게 구성하지 못하는 문제를 드러낸다.
실수에서 배우고 발전하라
설교자는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발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겸손, 건설적인 피드백, 신실하겠다는 열망이 필요하다. 또한 다른 사람과 함께 계속해서 배우려는 의지도 있어야 한다. 바울의 훈계가 모든 설교자에게 참이 되기를 바란다. “너희의 발전이 모든 사람에게 드러나게 하라”(딤전 4:15).
출처: 10 Mistakes I’ve Made in Preaching
초포 음완자(Chopo Mwanza) | 초포 음완자는 잠비아 키트웨에 있는 Faith Baptist Church Riverside의 목사이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