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고민하다가 늦게 집 앞 목욕탕에 갔다.
‘콘방와’(저녁 인사) 하며 들어서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기다렸다는 듯 반기며 잠깐 따라와 보라고 하신다. 그러고는 냉장고에서 반찬통을 꺼내시더니 김치 양념인데 맛을 봐달라고 한다. 쯔루하시에 있는 조선 시장에 가서 사카나쇼유를 사와서 만들었다고 했다. 젓갈을 생선 간장이라 하는 것 같았다. 조금 먹어보라고 작은 스푼에 주셨다. 맛있다고 했더니 한국맛과 비슷하냐고 물으신다. 매운맛이 조금 약하지만 달지 않고 비슷하다고 했더니 기뻐하신다. 한국 여행을 다녀왔는데 여행 중에 먹은 김치 맛을 잊을 수가 없어서 유튜브를 보고 만들어 봤다고 하신다. 마침 김치를 담으려고 했기에 김치를 담아서 좀 갖다 드린다고 했다.
맛있게 생긴 배추 세 포기를 사서 열두 조각 포기김치로 담았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한 일본인 관료 가정이 조선 땅 목포에 왔다. 그 일본인 부부에게는 딸이 있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해 같이 맑은 여인이었다. 그 여인은 조선 땅에서 가난한 어느 청년을 사랑하게 된다. 가난한 조선인이지만 그 안에 아침 빛같이 뚜렷한 사랑을 보았다. 이 청년은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한 선교사를 만나 그의 기도로 자랐다. 그의 삶은 움푹움푹 험난했지만 예수님이 그와 함께 하셨기에 고난은 소망이 되었다. 하나님은 청년에게 특별히 고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다. 여인은 가난한 조선 청년과 삶을 함께 하기로 했다. 그리고 고아들을 함께 품었다.
조선은 해방이 되고 전쟁이 일어난다. 조선인들은 일본 여인을 싫어했다. 너희 나라로 가라고. 그의 아들은 날마다 쪽발이라고 놀림을 당한다. 그리고 전쟁 속에 잠깐 집을 나선 남편은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하지만 일본 여인은 그의 삶을 조선 땅에서 고아들을 사랑하며 생을 마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이른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렘 33:14)
부부에게 흐르던 아침 빛같이 뚜렷한 사랑과 해 같이 맑은 진리는 동일하게 아들 마음에도 부어졌다. 청년이 된 아들은 일본 땅에서 해방이 되어도 조선으로 돌아가지 못한 어느 조선 할머니의 고독사를 보게 되었다. 그렇게 일본 땅에 ‘고향의 집‘이 세워졌다. 이곳에는 함께하는 즐거움과 서로 섬기는 사랑이 있다. 그리고 진한 그리움과 저 천국의 소망이 있다.
일본 여인의 자식이라고 쪽발이라고 놀림을 받던 아이는 세월이 흘러 이제는 여든이 된 할아버지가 되었다.
우리 부부는 할아버지와 만나 식탁 교제를 하고 있다. 우리는 조선의 아이들 이야기하느라 바쁘고 할아버지는 어르신들 이야기하시느라 바쁘다. 얼마 전 딸 은송이가 비자가 나온 것을 아시고 점심을 같이 하자고 전화가 왔다. 딸이 선교사로 내딛는 첫 발을 함께 기뻐해 주고 싶으시다고, 함께 맛있는 것을 함께 먹자고.
고향의 집은 4개의 센터가 있는데 그중에 가장 먼저 세워진 것이 우리 집에서 가깝게 위치해 있다. 담아 놓은 배추김치 한 포기를 포장했다. 추운 날이었지만 하얀 구름 사이로 비추는 햇빛이 눈부신 날이다. 차창 밖 하늘을 보고 있노라니 폭포수 같은 빛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로마서 말씀으로 기도를 했다.
[주님은 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힘입어 날마다 은혜의 자리에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될 소망으로 즐거워함이 참 좋습니다.]
차로 30분이 안 되어서 도착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 서 있는 은혜의 자리에 나아오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될 소망을 품고 즐거워하노라.’ (롬 5:1~2)
얼마 전 나는 성령님으로부터 깨우침을 받았다. 난 내게 부어주신 우리 민족의 영광이 너무나 빛나고 아름다워서 그 실제가 내 눈에서, 마음에서 떠나질 않았다. 기도를 할 때마다 그 빛난 아름다움을 떠올리며 기도를 한다. 그날도 기도하는데 빛나고 있는 우리 민족이 어느새 예수님으로 바뀌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눈이 부시고 황홀한지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여기에 예수님이 있다고 가르쳐주시는 것 같았다. ‘주님은 모든 조선인의 그리스도입니다.‘ 그 영광 앞에 그저 죄송하다고… 기도했다.
내게 주신 사명이 아무리 빛난다 할지라도 나의 소망이 되어야 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임을. 기도를 앞세워 구하느라 나는 예수님을 가렸구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배추 한 포기를 가지런히 썰어 통에 담았다.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센토(목욕탕) 아주머니를 만나러 갔다.
내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 예수의 이름으로 함께 사랑하고 함께 나눕니다. 센토 아주머니 구원을 기도합니다. 내가 그 영광을 보니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의 그리스도임을 선포합니다. [복음기도신문]
고정희 선교사 | 2011년 4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가족이 일본으로 떠나 2014년 일본 속에 있는 재일 조선인 다음세대를 양육하는 우리학교 아이들을 처음 만나, 이들을 섬기고 있다. 저서로 재일 조선인 선교 간증인 ‘주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싶었다'(도서출판 나침반, 2020), 사랑은 여기 있으니(나침반, 202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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