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대학원을 다닐 때 양복에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앞뒤로 붙이고 다니는 동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동기는 3년 동안 그 양복만을 입고 다녔습니다. 때론 보는 이들에게 혐오감을 주기도 했지만 그 분이 남기고자 했던 흔적은 문자 그대로 ‘예수천당 불신지옥’이었습니다.
사람이 자나가는 자리이면 반드시 흔적은 남게 되어 있습니다. 사건 현장이든지, 순교의 자리이든지 흔적은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어떠한 흔적을 남기느냐 인 것 같습니다. 목욕탕에 들어가 혐오감을 받는 것 중의 하나가 온 몸에 문신을 하고 어깨를 벌리고 폼을 재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 문신으로 자기들만의 어떠함과 자기들만의 힘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흔적은 그들의 생각과는 다른 불쾌함과 혐오감을 줄 뿐입니다.
바울 사도는 갈6:17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나를 괴롭게 하지 마십시오. 내 몸에는 그리스도 예수의 흔적이 있습니다”(쉬운성경)
흔적도 흔적 나름입니다. 살인사건 현장에 남겨진 흔적은 살인자의 흔적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남기는 흔적은 아름답고, 순교의 흔적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열광하게 만듭니다. 바울이 ‘이제는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 몸에는 예수의 흔적이 있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그때 당시 쉽게 할 수 있는 고백도 아니고, 쉽게 받을 수도 없는 고백입니다.
그때 당시 말하는 흔적은 문신과도 같은 것입니다. 노예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몸에 낙인을 찢어놓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의 흔적을 자기 몸에 가졌다는 것은 ‘나는 예수님의 종입니다. 나는 예수의 노예입니다. 나의 주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나는 예수에게서 도망갈 수 없는 오직 예수만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바울이 이렇게 예수의 흔적을 내 몸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예수 안티들에게 공격 목표물이 되는 것이며, 나를 공격하라고 과녁을 만들어 주는 것과 같습니다. 날아오는 돌을 맞을 각오를 해야 하고, 성 밖으로 내던져질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을까? 온통 예수 믿는 것을 감추고 세상 것을 즐기고 싶은 마음인데, 어떻게 들어내놓고 예수쟁이라고, 예수의 흔적이 내 몸에 있다고 말하는 것일까?
저는 예수쟁이라고 담대히 말하지 못했고, 목사라고 떳떳이 외치지 못했습니다. 세상 사람들 앞에서 예수 믿는 것을 부끄러워했고, 지나가다가 ‘목사님 같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기뻐해야 하는데 오히려 조심해야 한다는 마음에 반가워하지 못했습니다. 집사람에게도 지금까지 고백하지 못한 것인데, 고1때 좋아하는 여자 친구를 영원히 잊지 않겠다며 종아리에 칼로 하트를 세기고 여자 친구의 영문을 새긴 흔적이 지금도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위해서는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못했고, 남기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저에게 ‘너에게도 예수의 흔적이 있다’ 고 말씀하십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제가 예수를 주인으로 모신 그 날, 십자가 앞에 모든 죄 짐을 내려놓고 나 죽고 주님 살았던 그 날부터 내 몸에는 예수의 흔적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을 말하면서, 복음을 알았다고 하면서도 지금까지 롬13:14절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내가 예수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내 죄악의 옷은 이미 십자가 앞에서 다 불타 없어져 버렸고, 이제 내가 예수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보이게 새겨진 흔적은 아니지만 이 세상 어떤 것으로도 지울 수 없고, 벗길 수 없는 흔적이 있는데 모르고 살았습니다.
오늘 성도들과 눅15장을 말씀기도하는데,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종들에게 하는 말씀이 이 사실을 더 확증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종들에게 말했다. 서둘러 가장 좋은 옷을 가져와서 아들에게 입혀라. 또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주고 발에 신발을 신겨라”(눅15:22절)
잃어버렸던 아들이 찾아진 확실한 흔적이었고, 죽었던 아들이 살아났다는 확실한 흔적이었습니다. 이제 이 흔적이 탕자에게만 있지 않았습니다. 바로 믿음으로 취한 나에게도 동일한 흔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는 흔적,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나. 사람들이 화살을 쏘는 과녁이 되어도 괜찮습니다. 돌을 던지는 목표물이 되어도 괜찮습니다. 그렇게 맞아 쓰러지면서도 예수의 흔적을 나타낼 수 있다면, 그래서 많은 믿음의 동역자들이 주님오시는 그 날까지 주의 영광을 위해 끝을 바라보며 나아갈 수 있다면…예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이제부터 누구든지 김기철을 더 이상 괴롭게 하지 마십시오.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으로 더 이상 김기철을 괴롭게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이제는 김기철의 몸에 세상의 더러운 흔적들은 다 사라지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흔적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루를 시작하며 거울 앞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흔적을 확인합니다. 그러면서 십자가를 목에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