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전 두렵습니다.
매번 주님이면 충분하다고 고백하면서도 주님 말고 또 다른 것들이
또 필요한 사람처럼 수많은 것들에 이리저리 고개를 기웃거리는
나의 음란함이 너무나 두렵습니다.
주님 전 두렵습니다.
말씀이 중요하다는 건 알면서 정작 그 말씀을 머리로만 이해하고 분석한
나머지 당신이 내게 오셨을 때 미처 당신을 알아보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주님 전 두렵습니다.
당신을 사랑한다 말하며 최선을 다해 당신의 일을 하였는데 정작
당신 앞에 섰을 때 “수고했다. 하지만 난 널 한 번도 내 마음대로
써본 적이 없다.” 하실까 너무나 두렵습니다.
주님 전 두렵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당신의 이름을 빌려 당신이 아닌 나의 영광, 나의 만족,
나의 찬사를 기대하는 썩어 부패한 나의 마음이 당신의 영광을 가로챌까봐,
사랑하는 당신을 슬프게 할까 너무나 두렵습니다.
하지만 주님, 이 수많은 두려움 속에서도 결코 그것들에 갇혀 있을 수
없는 것은 이 두려움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당신의 사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요일 3:1)‘라던 사도 요한의 탄성이 이제 저의 외침이 되어
내 편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 절망 가운데 비로소 당신의 그 사랑이
어떠한 사랑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십자가. 두려움뿐인 우리네 인생 가운데 그 고통의 이유조차 알 수 없던
캄캄함 속에 당신은 마치 미친 사람처럼 달려오셨지요. 아이를 찾는 엄마처럼.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신랑처럼. 당신의 전부를 던져 마침내 나를, 그리고
우리를 건져 내셨지요.
비참하게 망가져버려 원래의 모습조차 찾을 수 없던 우리를 위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존귀한 당신께서 이루신 완전한 구원. 모든 이에게 기쁜 소식.
나의 나됨, 우리의 우리 됨, 당신의 당신 됨. 당신의 전부. 또 우리의 전부.
주님, 이젠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여전히 이 두 눈에 두려움들이
가득할지라도 그 때마다 더욱 생생한 당신의 십자가를 보겠습니다.
그리고 서겠습니다.
그 너머에 있는 당신의 마음을, 영광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아무 것도 아닌
나를 위해 전부를 걸었던, 역사상 가장 바보였던 당신처럼 진짜 바보가 되어
다시 오실 그날을 기다리겠습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
박요섭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