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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 그리스도의 모습

사진: ⓒ pixabay

조디는 남편에게 신물이 났다. 그녀는 남편의 모든 요구대로 따르는 것을 거부했다. 그리고 남편의 학대를 더 이상 참지 않았다. “내 남편은 내가 그를 처음 만났던 날부터 지배하려던 사람이었어요.” 조디는 말했다. “프랭크는 나를 노예 취급해요.”

프랭크는 불평하였다. “나는 내 아내가 왜 순순히 나에게 순종하려고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그녀는 분명히 결혼식 날 그렇게 서약했거든요. 나는 남자고, 그녀는 여자니까, 당연히 그녀의 역할은 나를 섬기는 것이잖아요. 나는 내 말이 옳다는 것을 뒷받침 해줄 성경 구절도 알아요.”

슬프게도, 오늘날 프랭크와 조디 같은 유사한 사례들을 흔히 찾아 볼 수 있다. 아내를 통제하려는 남편은 아내에게 성경을 들이대고 자신이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상기시켜주려고 한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 그러나 프랭크가 그 뒤에 나오는 성경 구절을 계속 읽었더라면, 성경 말씀이 프랭크의 치명적인 죄에 물든 태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엡 5:25)

프랭크의 지배적이고 우월주의적인 태도는 많은 아내들이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들은 자신이 남편에게 사랑 받고 소중히 여김을 받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아니라 학대 당하는 사람이라고 느낀다. 더 심각한 것은,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들이 당하는 피해 외에도 잘못된 부부 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나쁜 증거를 남긴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결혼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부인 교회의 아름다운 관계를 세상에게 보여주게 되어야 한다. 그러나 프랭크와 조디와 같은 가정의 모습은 그 그림을 죄악으로 뒤틀리게 하여 역겨운 모습으로 변질시킨다. 진정 그리스도가 프랭크와 같은 폭군이란 말인가? 그리스도의 학대로 교회를 조디와 같이 쓴 뿌리를 가진 신부가 되게 만들고 있는가?

아내들이여! 아마도 여러분은 당신의 결혼생활을 이러한 관점으로 생각해 본적이 한번도 없을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남편에게 순종하는 모습을 통하여 교회가 자신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계획하셨다. 당신의 삶이 곧 살아있는 증거이다.  그것이 사도 바울이 아내들에게 순종을 명령한 분명한 이유였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엡 5:23-24).

아내들이여, 자신을 돌아보라. 당신은 어떤 메시지를 세상에게 전달하고 있는가? 당신은 남편에게 순종하는 모습이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남편들이여, 이제 당신들의 차례이다.

남편들은 마땅히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 (25절).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희생과 섬김이 강조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본문을 다시 주의 깊게 보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엡 5:26-33).

기억하라!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5장에서 (21절부터 계속해서) 피차 복종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23절에서 남편의 머리 됨을 소개할 때, 이 “피차 복종”의 주제가 바뀐 것이 아니다. 그는 지금 남편이 가정의 머리이기 때문에 다른 가정의 구성원들은 무조건 그에게 순종해야 하고 그의 뜻이나 욕구에 대하여 주제 넘게 나서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절대로 그런 뜻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남편이 마땅히 그리스도의 머리 되심을 최대한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원하는 마음으로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를 위해 희생하며 아내를 섬겨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가 남편의 리더쉽에 순종하고 자녀들이 그들의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처럼, 남편은 그렇게 순종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바울이 에베소서 5장에서 계속 말씀하고 있는 “피차 복종”인 것이다.

타락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죄의 성향은 폭력으로 아내를 지배하려는 것이다. 기독교인 남성들 조차도 자신들의 권위를 가혹하게 사용하는 죄를 짓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실질적으로 아내 위에 군림하는 왕으로 살고 있다. 마치 결혼이라는 관계가 주인과 노예의 관계로 만들어지도록 계획되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프랭크와 같은 남편들은 에베소서 5장 24절을 가지고 자신들이 하는 행위를 옳다고 한다. 왜냐하면 말씀에 분명히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고 명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편의 역할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머리 되심과는 정반대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든지 남편이 가진 권위에 대하여 이와 같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면 에베소서 5장을 조금만 더 읽어볼 필요가 있다. 바울이 남편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시작할 때 그는 “남편들아 아내를 정복하라; 아내를 부려라, 아내에게 명령하라, 너의의 권위로 아내에게 사용하라, 그들을 지배하라” 따위의 말을 하지 않았다. 바울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듯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했다. 희생적으로, 부드럽게, 온화하게, 그리고 섬기는 마음으로 사랑하라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남편들이 아내에게 복종하는 모습인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횡포와 지배적인 머리 됨을 주장하는 자세와는 거리가 멀다. 바울이 남편들에게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함 같이 하라고 명령하였을 때, 사실 남편들에게 아내를 향한 가혹적이고 폭력적인 권위를 사용하는 것을 금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랑”의 본이 그리스도이시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 20:28) 라고 말씀하신 그리스도이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아내와 아이들이 나를 섬기기 위해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남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러한 “사랑”의 본에서 완전히 멀어진 사람이다.

한편, 이 본문에서 남편들에게 아내 위에 군림하라고 하거나 아내를 이끌라는 명령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말씀은 단순명료 하게 “아내를 사랑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더욱이 에베소서 전체 가운데 “사랑”이라는 단어는 남편들에게 주어진 이 명령들에 다섯 번이나 집중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랑하라”는 명령이 의미하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보라. 이 “사랑”은 단순히 로맨틱한 감정이나 거부할 수 없는 매력 등을 말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사랑을 말한다. 진실한 사랑은 의지적인 선택이 포함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라”는 명령형 동사가 사용된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감정에 빠져들어 가거나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겨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진정한 사랑은 의지적이고, 자발적인 헌신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희생하겠다는 헌신이다.

고린도전서 13장 4-8절에는 사도바울이 참된 사랑의 특징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여러 가지 특징들 가운데 그 어떤 것도 자발적이지 않거나 수동적이거나 감정 중심적인 것이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바울은 형용사 대신 능동형 동사를 최대한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참된 사랑이 동적이고 의지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고전 13:4-8)

그러므로 바울이 “아내를 사랑하라”고 명령할 때, 그는 고린도전서 13장에 기록된 모든 사랑의 특징들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오래 참음과 온유, 겸손과 온화함, 사려 깊음과 관대함 그리고 친절함, 신뢰와 선함, 진실함과 오래 견디는 것 등을 포함해서 말이다. 이러한 사랑의 특징들은 모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희생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음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자기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편은 자기의 권위를 골프채 처럼 아내에게 휘두르는 사람이 아니다. 가족들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워주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남편과 아버지는 자기 자신을 모든 가족 구성원을 섬기는 사람으로 만드는 사람이다.

이것은 쉽지 않다. 사실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아니한 사람으로서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 기록한 이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오직 구원 받은 사람, 성령이 충만한 남편만이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한 것처럼 아내를 사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이 우리 구세주의 참된 모습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결혼의 청사진이 바로 이와 같다. 결혼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세상에서 혹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이러한 결혼에 대한 아름다운 계획이 망가지는 여러 가지 모습을 얼마나 많이 보아왔는가? 함께 토론해보자.

존 맥아더 (John MacArthurn)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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