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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발영 칼럼] 다시 복음 앞에,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자

▲ 2021 다시복음앞에 대회가 12월12일부터 온라인대회로 열린다. ⓒ 복음기도신문

무엇이 개혁교회의 힘인가? 
우리가 ‘개혁주의’라는 말을 쓰고 있지만 이 말의 의미를 간단하게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개혁주의라는 말의 원어는 reformed이다. ‘(원상태로) 되돌아가다.’라는 뜻이다. 원상태로 되돌아 가는 것이 개혁이다.

성경이 말하는 그 교회로, 성경이 말하는 그 신앙으로, 성경이 말하는 그 복음으로 되돌아 가는 것을 말한다. 새로 무엇을 만들어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원상태로 회복하는 것이 개혁이다. 즉 성경을 가지고 성경이 말하는 그 교회로 끊임없이 개혁하고 회복하는 것이 개혁교회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종교개혁의 기준은 성경이다.

그리고 ‘성경해석의 가장 큰 장애는 성경해석자의 자기 자신이다.’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다. 그래서 하나님 기준에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성경을 보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성경을 자기 관점으로, 자기 기준으로, 자기 수준으로 자의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성경에 대한 왜곡된 해석이 나온다. 그래서 개혁교회의 힘이란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여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것이 힘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거룩하게 살아가는 데서 나온다.

개혁교회의 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거룩하게 살아가는 것

그런데 교회사를 보면 교회의 힘을 하나님과 거룩으로 생각하지 않고 세상의 힘을 교회의 힘으로생각 할 때가 있었다. 초대교회 박해시대를 지나 종교암흑 시대라 불리우는 중세교회시대를 말한다. 

A. D. 313년에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포한 후부터 교회는 박해로부터 신앙의 자유를 회복하고 그리고 세상의 힘과 부도 소유하게 되었다. 박해로부터 신앙의 자유를 회복했다는 것을 자랑했다. 그러나 교회가 세상의 힘과 부를 소유하게 되자 경건의 능력! 복음의 능력!을 상실하고 타락의 늪으로 서서히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교회가 세상의 힘을 가지면서 점점 암흑기에 돌입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16세기 종교개혁은 종교 암흑시대라 불리우는 중세교회의 타락에서 초대교회 신앙으로, 성경이 말하는 복음으로, 오직 성경의 가르침으로 되돌아가려는 운동이었다.

Returning to the Bible!  
좀 더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말하자면 “다시 복음앞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운동이었다.

그러면 종교 개혁이 필요했던 종교 암흑시대라 불리웠던 당시 중세 교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A.D. 1075년에는 그레고리우스 교황 “교서”가 개인에게 하달되었는데 이 교서를 통하여 중세기 로마 가톨릭교회가 얼마나 부패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모두 27개 항목으로 되어 있는 그 “교서” 중에서 중요한 것을 간추려 보면 이렇다.

[① 로마교황은 지상의 최고의 권한을 가진 “보편적 권한”의 소유자이다. 
② 오직 교황만이 주교를 임명할 수 있고 파문할 수 있다.  
③ 오직 교황만이 로마제국의 휘장을 사용할 수 있다. 
④ 군주들도 교황의 발에 입맞추어야 한다. 
⑤ 오직 교황만이 황제를 폐위시킬 수 있다. 
⑥ 로마교황은 결코 오류를 범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하다. 
⑦ 교황은 성베드로의 권한을 이어 받았음으로 최고의 지상권을 가진다.] 

이렇게 가톨릭교회는 교황권을 가리켜 베드로의 사도직분 계승자로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전체 교회의 머리이고, 거룩한 아버지며, 무오(無誤)한 존재라고 했다. 교회가 무소불위의 세상 힘을 쥐게 되었다. 그리고 교황들이 그 무소불위의 세상 힘을 가지고 무슨 악행을 했는지 살펴보면 경악을 금할 수가 없다. 당시 교황과 성직자들의 도덕적 타락상은 극에 달했는데 그들의 탐욕과 음행과 만행! 온갖 타락상은 “악마의 회당”이라 불릴만 했다.

​(1) 교황 세르지오 3세(A.D. 904~911)는 살인을 통해 교황직을 얻었고, 여자들과 관계해 불법으로 사생아를  낳았다.​ (2) 교황 요한 12세(A.D. 955- A.D. 964)는 성적으로 문란해 교황청에 창녀들을 불러들였고 도덕적 부패가 극에 달했다. 주교 50명이 성베드로 성당에 모여 교황을 절도, 성직매매, 위증, 살인, 간음, 근친상간으로 고소했으나, 교황 요한 12세는 오히려 추기경과 주교들을 채찍으로 때리고 팔과 코와 귀를 자르는 보복을 했다. ​(3) 교황 요한 15세(A.D. 985~996)는 교회 재정을 자기 친척들에게 나누어 온갖 부를 축적하였다. 

​(4) 교황 베네딕트 8세(A.D. 1012~1024)는 공개적으로 뇌물을 주고 교황직을 산 부도덕한 인물이다. (5) 교황 베네딕트 9세(A.D. 1033~1045)는 대낮에 살인과 간통을 자행했고 순례자들을 강탈하다가 추방당했다. (6) 교황 이노센트 3세(A.D. 1160~1216)는 종교재판소를 창설해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을 100만 명 이상 살해했다.

(7) 교황 요한 23세(A.D. 1410~1415)는 주교와 사제로 구성된 37명의 증인들에게 살해, 음행, 간통, 근친상간, 남색, 성직매매, 도둑질, 살인죄로 고소 당했고, 300명의 수녀들을 겁탈했다. 그리고 바티칸 기록에 의하면 그는 자기 형제의 아내와 변태 성행위를 자행하였고, 수백 명의 처녀들과 성관계를 가졌고, 결혼한 여자들과 간음을 행함으로써 공개적으로 악마의 화신이라고 불리었다. ​(8) 비오 2세(A.D. 1458~1464)는 육욕에 빠지는 방법을 가르쳤고, 많은 사생아의 아버지였다. ​(9) 교황 바오로 2세(A.D. 1464~1484)는 비싸고 호화로운 왕관을 쓰고, 궁전에 많은 첩을 두었다.

​ (10) 교황 식스투스 4세(A.D. 1471~1484)는 교회 직분을 경매로 팔아 전쟁자금을 충당했고, 친척들에게 치부한 돈을 나누어 주었으며, 어린 조카 8명을 추기경으로 임명하였고, 사치스런 삶을 살았다. ​(11) 교황 이노센트 8세(A.D. 1484~1492)는 여러 여인과 성관계를 통해 16명의 자녀를 두었고, 자녀 중 몇 명은 바티칸에서 결혼식을 거행하였고, 교회 직분을 늘려 돈을 받고 팔았고, 성 베드로 광장에서 투우경기를 열었다. ​(12) 교황 알렉산더 6세(A.D. 1492~1503)는 추기경을 뇌물로 매수해 교황 직에 선출되었고, 품행이 나쁜 자기 젊은 아들을 발렌시아의 대주교로 앉혔으며, 자기의 두 누이와 근친상간을 하였다. 

(13) 교황 레오 10세(A.D. 1513~1521)는 값비싼 유흥과 연회를 통해 술 마시고 흥청망청 놀았으며, 교황의 궁전에서 12명의 벌거벗은 소녀에게 시중을 들게 했다. ​(14) 교황 바오로 3세(A.D. 1534~1549)는 십대의 어린 조카 두 명을 추기경으로 임명하였고, 가수와 무희와 어릿광대를 동원해 유흥을 즐기며 살았고, 점성가를 불러 조언을 구했다.  이것은 사단이 교만하여 하나님 자리를 탐하다가 타락했던 것처럼 ㅡ교황들이 하나님 자리까지 올라가 하나님의 노릇을 하며 ㅡ교황들이 그 자리에 올라가서 무슨 악행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이 뿐인가. 중세 후기로 내려오면 성직자들과 수녀들의 성적 타락이 너무 심해 더 이상 막을 수 없었다. 사태가 이렇게 심각해지자 교황청도 사제들에게 축첩을 허용하였다. 가톨릭의 사제와 수녀들은 결혼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사제들 못지않게 수녀들의 성적 타락도 심했는데 수녀들은 속인들뿐 아니라 사제들과도 깊은 관계를 맺었다.

가령 A.D. 1261년 슈트라스부르크 탁발승단의 단장 하인리히는 다음과 같이 썼다. “수녀가 욕정에 사로잡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에는, 속인에게 몸을 맡기기보다는 성직자에게 몸을 맡기는 것이 좋다. 그래야 죄가 훨씬 가볍고 처벌도 훨씬 관대하기 때문이다.”라고 괴변을 늘어 놓기도 했다. 이것이 교회가 세상의 힘과 부를 소유했을 때의 타락상이었다.

세상의 권력은 없었지만 타락한 세상을 이길 힘이 있던 초대교회

그러나 초대교회 모습은 정반대였다. 초대교회 성도들에겐 중세교회처럼 세상의 힘이 없었다. 박해를 받았지만 박해에 대항하여 싸울만한 정치적인 힘도 없었다. 그들은 오늘날처럼 신앙의 자유도 없었다. 훌륭한 예배당도 없었다. 그들에게는 세상의 어떤 힘도 없었다.  

그러나 초대교회 성도들은 죄를 이길 힘이 있었고, 악한 영을 이길 힘이 있었다. 타락한 세상을 이길 힘이 있었다. 그들에겐 세상을 변화시킬 힘이 있었다. 그래서 사도행전 안에 있는 초대교회 모습을 보면 성령 충만했고 믿음이 충만했고 그들의 삶은 거룩했다.  

그들은 가난한 자 같아 보였으나 천국을 소유한 자였고, 비천한 자 같았으나 존귀한 자들이었고, 명예도 세상의 부도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지만 세상의 부와 영화를 배설물 같이 여기는 하나님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약한 자같이 보였으나 그들은 누구보다 강한 자들이었다. 죄를 이길 힘이 있고, 악한 영을 이길 힘이 있고, 타락한 세상을 이길 힘이 있는 자가 즉, 세상을 변화시킬 힘이 있는 자가 ‘진정으로 강한 자’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도행전의 각 장을 넘겨 보라. 사도행전 각 장마다 승리의 함성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지 않은가? 날마다 제자의 수가 많아지고, 허다한 무리들이 주의 도에 복종하고, 날마다 승리의 행진이 거듭되고 있지 않은가? 이들이 이렇게 승리할 수 있는 힘이 어디서 왔는가? 하나님으로 부터 온 것이다. 그들의 힘은 하나님이었고 복음이 그들의 힘이었고 거룩하게 사는 삶이 그들의 힘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 교회의 모습은 어떤가? 모든 것이 풍족하고, 넉넉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그러나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가지려고 더 소유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요한계시록에는 바벨론은 ‘큰 성 바벨론’이라 불리고, 새 예루살렘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라고 불린다. ‘큰’과 ‘거룩’이라는 형용사는 세상과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세상의 본질은 ‘부와 크기’를 힘으로 생각하는 것이고, 교회의 본질은 ‘거룩’이 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어느 건물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가? 어느 기업이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인가? 어느 나라가 경제, 국방에서 앞선 나라인가? 어떤 사람이 세계에서 큰 부를 가진 으뜸가는 부자인가? 등등 이런 경쟁구도가 세상의 특징이 된 것이다.

그것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어느 교회가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인가? 어느 교회가 사이즈가 크고 유명 인사가 많고 부자들이 많은 부자 교회인가? 이렇게 세상 가치관으로 세상 잣대로 교회를 평가하고 추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과 본질이 다르다. 교회는 크기가 아니라 거룩을 추구해야 한다. 교회는 ‘큰 교회가 아니라 거룩한 교회’가 생명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오늘날 대교회가 중세 교회처럼 교회 본질인 거룩을 쫓지 않고 부와 크기를 쫓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과 복음과 거룩한 삶을 힘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 사이즈를 힘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회 사이즈가 커야 부흥한 교회로 인정 받고 교회 사이즈가 커야 성공한 목사라고 대접 받고 교회 사이즈가 커야 힘있는 교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작은 양떼들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눅 12:32) 

이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성공한 목회자로 대접받는, 대형 교회가 아니라 초대 교회같은 성령 충만하고 거룩하고 교회 본질이 살아있고 그리스도만이 영광 받으시는 작은 교회를 꿈꾸어 보면 어떨까? 

그래서 다시 복음 앞에 ㅡ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자!
이 외침을 천둥같은 주님의 음성으로 듣고 우리 다 함께 참여 하면 어떨까? [복음기도신문]

박발영 목사 | 한우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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