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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남 칼럼] 대체신학 이슈와 12 사도 연구 (7)

사진: kelly sikkema / unsplash

I. 들어가는 말
II. <대체신학 이슈와 초림 예수의 즉위 연구>에 대한 요약
III. 예수의 1차 즉위식과 12 사도
IV. 예수의 2차 즉위식과 12 사도
V. 예수의 3차 즉위식과 12 사도
1. 120 문도와 예루살렘의 다락방
2. 형제 칭호의 의의와 12 사도 회복의 의의
3. 오순절 성령 강림과 세 교회의 설립
1) 오순절 성령 강림의 의의
2) 사도 베드로의 설교와 유대인 교회 설립
3) 사도 베드로의 기도와 사마리아인 교회 설립
4) 사도 베드로의 설교와 이방인 교회 설립
VI. 나가는 말

3. 오순절 성령 강림과 세 교회

오순절 성령 강림 후에 여러 교회들이 세워졌다. 특별히 그들 중에 사도 베드로의 설교 또는 기도와 더불어 세워진 세 교회가 각각 대표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곧 예루살렘의 유대인 교회(행 2:14~42), 사마리아의 사마리아인 교회(행 8:4~25), 그리고 가이사랴의 이방인 교회(행 10:1~11:18)이다. 오순절 성령 강림의 의의(행 2:1~13)에 대하여 먼저 논의한 후에 세 교회의 설립에 대해 각각 살펴보고자 한다.

1)오순절 성령 강림의 의의

오순절 날 성령 강림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천상 통치가 구체적으로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구약에서 오순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순례의 길을 떠나야 하는 세 개의 주된 절기 중의 하나이다. 첫 번째 절기인 유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로 맥추절(출 23:14),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출 34:22)로 각각 언급되었다. 오순절에는 유월절보다 더 많은 순례자들이 이 절기를 지키기 위해 전 지역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축제에 참여한다.[1]

오순절은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은 날을 기념하는 절기로 발전되었다. 중간기 문헌에는 오순절과 시내 산이 서로 연결되어 나타나고 있다(참조. 희년서 1:1, 5:6~121; 15:1~24).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첫 달 15일에 떠났으며(참조. 출 12:6), 셋째 달 되는 날에 시내 광야에 이르게 되었고(출 19:1) 그 후에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받았던 점(출 20:1~21)이 고려된 것이다.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시내 산에서 나타난 현상, 즉 “우레, 번개, 빽빽한 구름, 나팔 소리”(출 19:16), “불 가운데 여호와의 강림하심”과 “연기”(출 19:18)를 염두에 두고 오순절 날 성령 강림 사건을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행 2:2)와 “불의 혀”(행 2:3)가 나타난 현상으로 묘사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2] 다시 말해서, 구약의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오심과 그에 따라 나타나는 여러 현상과 신약의 오순절에 성령의 오심과 그에 따라 나타나는 여려 현상은 평행 관계이다. 이에 대한 이필찬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다.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 율법을 주셨다면, 지금 오순절 사건에서 그분은 교회 공동체의 대표로서 열두 사도와 열두 사도를 포함한 120명의 성도들에게 성령을 주셨다. 여기에서 우리는 오순절은 성령이 시내 산의 율법을 성취하는 사건임을 알 수 있다. 120이라는 숫자도 12사도와 함께 12라는 숫자를 포함하여 새로운 이스라엘의 회복을 함축하는 유의미한 숫자이다.[3]

하나님께서는 120 문도에게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를 들려주시고 그 소리가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도록 하셨고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이는 가운데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도록 하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서로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바람인 성령을 아담에게 불어넣어 생령이 되도록 하셨던 것처럼(창 2:7), 생명의 새 바람인 성령을 120명 문도 모두에게 불어넣어 하나님의 새 언약 백성이 되도록 하셨다. 구약에서는 성령이 하나님의 집인 성막과 성전에 임하였는데(출 40:34; 왕상 10:10~11; 대하 5:13~14, 7:1~4), 신약에서는 성령이 120명에게 임하였다. 이는 신약 시대에는 구약 시대와 달리 하나님의 새 언약 백성이 곧 진정한 성전이 되었다는 뜻이다(참조, 요 2:19, 14~16장; 고전 3:16~17; 고후 6:16; 엡 2:19~22).[4]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는 성령을 충만하게 소유하신 분이었으나 승천하신 후에는 그의 제자들에게 성령을 수여하시는 분이 되셨다.[5] 승천하셔서 하늘 보좌에 계신 예수로부터 성령을 받게 된 120 문도는 회복된 이스라엘 또는 새 이스라엘의 대표들이 되었다. 개핀(Gaffin)은 성령 강림이 없다면 예수의 구원 사역은 미완성이 되고 불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라 하였다.[6] 때마침 천하 각국으로부터 온 경건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 있었다(행 2:5~6). 이 사실은 마지막 날에 열국의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모여든다고 예언한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사 2:2~3)과 그 정황이 매우 흡사하다.[7] 또한, 이는 곧 이스라엘의 회복 후에 남은 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것이라는 새 출애굽 모티브를 시각적으로 그려주는 사건이기도 하다(사 1:1~12장; 40:35; 42:16; 43:16~19; 49:8~11; 51:9~10). 예수의 사역이 새 출애굽의 성취를 보여주었던 것이라면 오순절의 성령 강림 사건은 새 출애굽의 성취를 성령의 오심을 통해 실제로 보여주었다.[8]

120 문도가 모두 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이 사건은 인류의 언어를 서로 달리하여 혼잡하게 하였던 바벨탑 사건(창 11:8~9)의 반전으로 간주될 수가 있었다. 천하 각국으로부터 온 경건한 유대인들은 120 문도가 다른 언어로 각각 말하는 것을 듣고 모두 다 놀란 가운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행 2:7~11).

천하 각국에서 온 유대인들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15개의 언어권에서 온 자들이었다. 그들은 120 문도가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고 모두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에게 “이 어찌된 일이냐”(행 2:12)라고 하였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도다”(행 2:13)라고 하였다. 그들은 120 문도가 갈릴리 사람들로서 각국의 언어를 그 전에 습득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사도 베드로의 설교와 유대인 교회 설

오순절 날에 사도 베드로는 성령 세례를 받아 성령이 충만하여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다음과 같이 설교하기 시작하였다.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행 2:14b-15).

여기서 ‘제 삼시’는 곧 지금 시간으로 오전 약 9시이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행 2:1)에서 ‘이르매’라고 번역된 헬라어 동사(συνπληρόω)는 특정한 날의 도래 또는 일정한 수의 날이 채워짐을 의미한다. 특별히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라는 표현은 구체적으로 예수의 성령 세례에 대한 약속(행 1:4~5, 8)이 성취된 시각을 지칭한다. 이는 오순절 절기가 시작되는 전날 저녁이 아닌 당일 아침을 나타낸다.[9]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 날의 성령 강림 사건은 구약의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예언하신 말씀의 성취적 사건이라고 주장하면서(행 2:16), 요엘의 예언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행 2:17~21).

요엘 2장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는 시점이 “그 후에”(2:28)이다. 그런데, 사도 행전에서는 사도 베드로가 그 시점을 “말세”(ἐν ταῖς ἐσχάτ αις ἡμέ ραις; 직역하면 ‘마지막 날들에’)라는 표현으로 변형하였다(행 2:17).[10]“말세”는 곧 신학적으로 “종말”이라는 단어와 같은 의미로 예수의 초림으로 시작되어 재림의 기간을 뜻한다(히 1:2). 예수의 탄생과 공생애 사역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처럼 오순절 성령의 오심도 종말적 사건이라는 뜻이다. 요엘 예언의 문맥은 하나님이 주시는 용서에 대한 소망 가운데서 회개하는 요청이며(욜 2:12~14), 나중에 베드로는 이 요청을 다시 언급한다(행 2:38).[11] 사도 베드로는 요엘서 본문의 세 가지 내용을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에 적용한다. 첫째로, 말세에 하나님의 영을 받은 자들이 예언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꾸는 현상에 관한 말씀이다(욜 2:28~29; 행 2:17~18). 둘째로, 우주적 심판을 상징하는 현상에 대한 말씀이다(욜 2:30~-31; 행 2:21). 셋째로, 남은 자들의 구원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다(욜 2:32; 행 2:17~18).

첫째와 셋째는 인류의 구원 사건이지만, 둘째는 우주적 심판 사건이다. 사도 베드로는 우주적 심판을 상징하는 현상에 대한 말씀도 인류의 구원 현상에 관한 말씀과 마찬가지로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이미 성취된 사건이라고 선포하였다. 또한, 그는 요엘 2:30의 “이적들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라는 문구를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들)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들)을 베풀리니”라는 문구로 변형시켰다. 이필찬은 징조(들)’라는 단어의 첨가를 통해 종말적 성취의 정황을 더욱 강조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주장한다. [12] 이러한 사실은 예수의 사역을 소개하는 사도행전 2:22의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 베푸사”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실 예루살렘 백성은 약 7 주전, 성금요일 오후에 해가 어두워지는 것을 실제로 보았고, 그날 저녁 부활절의 보름달이 결과적으로 일어난 초자연적인 어둠 가운데 하늘에서 핏빛으로 물든 상태로 떠오르는 것도 보았다(눅 23:44~45). 이 현상들은 주의 날이 도래했다는 것을 알리는 전조로 해석된다. 이 날은 확실히 심판의 날이지만 보다 직접적으로는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날이다.[13] 이에 대하여 이필찬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베드로가 사용하고 있는 ‘우주적 붕괴의 언어’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아직 성취되지 않은 미래의 종말 사건으로 해석하는 것은 이 본문을 잘 못 해석한 것이다. 베드로가 이러한 언어를 여기에서 사용함은 오순절 사건이 종말적 성취로서 구원뿐만 아니라 심판을 의미하며 새 창조와 함께 새 이스라엘, 곧 남은 자들의 회복을 보여주는 목적 때문이다”[14]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행 2:20)이라는 표현에서 “주”는 요엘서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지칭한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맥락에서 볼 때 이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즉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따라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2:21)에서 “주”는 곧 천상 통치자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15] 그런데 요엘 2:32(“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들’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에 따르면,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이 곧 ‘남은 자들’이다.[16] 따라서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행 2:20)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이 될 수가 없다. 오히려 이 날은 예수의 십자가, 부활, 승천, 그리고 하늘 보좌에 오르심으로 그의 천상 통치가 시작되어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 날이다.

이제 사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셨던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에 대해 증거한다(행 2:22). 여기서 ‘권능과 기사와 표적’은 모세의 사역을 특징짓는 출애굽적 용어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새 출애굽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새 모세이시다.[17] 한편,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유대인들(행 2:23)은 애굽의 바로와 같은 자들이 되었다. 또한, 사도 베드로는 메시아 예수 부활의 필요성을 증언하기 위해 시편 16편을 인용한(행 2:25~31) 후에, 메시아 예수의 천상 통치의 시작을 증언하기 위해 시편 110편을 인용하였다(행 2:34~35).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을 당하신 예수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셔서 하늘 보좌에 앉도록 하셔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특별히 사도 베드로 자신을 비롯한 여러 사도와 문도가 이에 대해 증인이 되었다.

유대인들이 사도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난 후에 그와 다른 사도들에게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 할꼬?”(행 2:37)라고 묻자, 베드로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행 2:38~39)라고 답하였다. 또한 그는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리라”(행 2:40)고 하였는데,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였다(행 2:41). 이렇게 하여 예루살렘에 유대인들로 구성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공동체가 역사상 최초로 예루살렘에 세워졌다. 이는 곧 예수께서 시몬에게 다음과 같이 주셨던 약속의 말씀이 성취된 사건이 되었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8~19)

이와 같은 성취는 예수께서 하늘 보좌에 앉아 사도 베드로를 비롯한 그의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그 성취의 결과로 예루살렘에 세워진 유대인 교회 공동체가 곧 메시아 왕국이요, 회복된 이스라엘이다. 베드로는 그 왕국의 백성들을 이스라엘의 혈통적 후손들로 제한시키지 않고, “모든 먼 데 사람들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3:39)이라고 보편화시켰다(3:39). 그리고 베드로는 메시아의 복이 먼저 유대인들에게 선포된 것은 세상의 모든 족속에게도 선포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의도였음을 선언한다(행 3:25).

3)사도 베드로의 기도와 사마리아인 교회 설립

“사울이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행 8:1). 이 구절에서 죽임을 당한 ‘그’는 곧 예루살렘 교회의 집사 스데반이다. 스데반은 사울과 그의 동료들의 핍박을 받아 죽임을 당하는 순간에 성령이 충만하여 메시아 왕국의 왕으로 즉위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의 주인공이 되셔서 그의 왕국을 통치하고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런데, 특별히 그가 순교하는 순간에는 그 보좌에 앉아 계시지 않고 서서 그를 환영하셨다(행 7:55~56). 그리하여 그는 “주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고 말하며 무릎을 꿇고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라고 그의 마지막 기도를 드렸다.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기 직전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라고 말씀하셨다. 마침내 그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박해가 있게 되자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다. 그럼에도, 사도들은 여전히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사마리아인들은 북 왕국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을 침략한 앗수르인들과 결혼하여 태어난 후손들로 추정된다. 사마리아에 사마리아인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첫 설교자로서 역할을 하였던 자는 사도들이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의 집사 빌립이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의 탁월한 복음 선포를 통해 나타나는 표적을 보고 한 마음으로 빌립이 선포하는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 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그 성에 기쁨이 생겼다(행 8:5~8).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인들도 빌립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행 8:14)라는 소식을 듣고, 사도 베드로와 요한을 보냈다(행 8:14). 이는 곧 빌립의 복음 선포와 사마리아인들의 회심이 참되다는 사실을 입증한 셈이었다(참고. 2:41; 11:1). 그럼에도, 누가는 사마리아인들 가운데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이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행 8:16). 이는 사도 베드로가 오순절 날 설교에서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 2:38)라고 선포하였던 내용과 완전히 다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았지만 아직 성령을 받지 아니하였다는 사실은 다른 곳에서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유래가 없는 사건이 되었다.[18] 그런데, 두 사도가 사마리아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안수하자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행 8:15~16). 이와 같이 유래가 없는 사건에 대한 여러 설명과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사도 베드로와 더불어 자신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약속하신 다음과 같은 말씀의 성취적 차원에서 이해되지 않고는 이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8~19)

이 말씀(마 16:18~19)이 오순절 날에 예루살렘의 유대인들 가운데서 사도 베드로의 설교와 더불어 성취되어 유대인 교회 공동체가 세워졌던 것처럼, 이 말씀(마 16:18~19)은 사마리아의 사마리아인들 가운데서도 사도 베드로와 요한의 기도와 더불어 성취되어 사마리아인 교회 공동체가 공식적으로 세워졌다. 그렇게 각각 세워진 두 교회, 즉 사마리아의 사마리아인 교회 공동체와 예루살렘의 유대인 교회 공동체가 하나가 되었음이 밝혀진 셈이다. 유대인들에게 오랫동안 외부인으로 경멸을 당하여 온 사마리아인들은 이제 하나님의 백성의 새로운 공동체 속으로 완전히 편입되었다.[19] 하나님께서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의 문화적, 종교적, 인종적인 갈등과 대립을 완전히 해소시켜 주시고 그들이 동등하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을 공식적으로 확정하셨다. 또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라는 말씀이 ‘사마리아’에서 구체적으로 성취되어 역사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공동체가 사마리아에 최초로 세워졌다.

4) 사도 베드로의 설교와 이방인 교회 설립

사도 베드로가 욥바에서 사역할 때 가죽 제품을 만드는 시몬의 집에 유숙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항구 도시 가이사랴에 소재한 이달리야 부대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서 이방인 교회 공동체가 세워지도록 주님께서 고넬료와 사도 베드로를 기적적으로 친히 인도하셨다. 고넬료가 자신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와 함께 베드로를 맞이하여,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행 10:33)라고 하였다. 사도 베드로가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라고 설교하였다(행 10:34~43). 그때 설교하고 있던 베드로와 그의 동행자들이 성령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신 것을 확인하였다(행 10:44~46). 그리하여, 베드로는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라고 고백하고,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행 10:47~48). 예수께서 시몬에게,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 16:18~19)라고 약속하셨던 말씀이 가이사랴 고넬료의 집에서도 성취되어 역사적인 최초의 이방인 교회가 공식적으로 세워졌다. 그들이 사도 베드로에게 며칠을 더 머물기를 청하였다(행 10:48).

사도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 그의 동료 사도들과 형제들이 그 사실을 듣고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라고 그를 비난하였다(행 11:1~2). 그러자 베드로가 그들에게 자초지종을 잘 설명하였다(행 11:5~14). 특별히, 그가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행 11:15~17)라고 하자, 그의 설명을 들은 동료들이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라고 하였다(행 11:18). S. J. 키스트마커(Kistmarker)는 “하나님께서 사도 베드로가 사마리아에서와 가이사랴의 고넬료의 집에서 설교할 때 그의 성령을 보내셔서 교회 성장에 새로운 시대가 전개되도록 하였다”라고 한다.[20]

훗날, 예루살렘 공회가 소집되어 이방인 신자들의 할례와 율법 준수를 지지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사도 베드로가 일어나 자신이 고넬료의 집에서 경험하였던 바를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행 15:7a).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나를 택하시고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행 15:7b~11).

사도 베드로가 이와 같이 발언을 하자 공회에 참여한 온 무리가 잠잠해졌다. 이제 그들이 바나바와 바울에게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자, 그들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이맘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서 그 공회의 사도를 보고 있던 야고보가 그들에 의하여 이방인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사건에 대하여 “다윗의 무너진 장막의 회복”, 즉 메시아 왕국이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 가운데서 세워지게 된 사건으로 이해하고 아모스 9:11~12의 말씀을 인용하였다(행 15:16~17). 그런데, “에돔의 남은 자”(암 9:12)가 “그 남은 사람들”(행 15:16)로 바뀌었다. 그 이유는 야고보가 히브리어 마소라 사본이 아니라 헬라어로 번역된 칠십인경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야고보 또는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의 무지 때문이 아니라, 칠십인 경의 본문이 원문의 뜻을 명확하게 잘 드러내고 있음을 깊이 인식하고 이를 의도적으로 인용한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21] 사실, 야곱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의 대표이고, 그의 쌍둥이 형인 에돔은 이방인의 대표이다. 데이빗 홀베르다(David E. Holwerda)는 야고보의 선언에 대한 의의를 이렇게 진술한다.

야고보는 이방인들의 돌아옴은 곧 다윗 집과 그 나라의 회복이라고 선언한다. 그 회복에 있어서, 다윗의 왕국은 마치 아모스가 예언했던 것처럼 온 나라들을 포괄할 것이다. 놀랍게도 다윗의 자손을 위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것처럼 그 집과 그 나라는 다윗의 아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지은 그 집과 동일한 것으로 드러났다(삼상 7:11~14). 다윗의 회복된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하여 땅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나라이다. 이것이야말로 특수주의로부터 보편주의로 펼쳐 나아가는 하나님의 약속들의 전개이며, 이렇게 펼쳐지는 움직임은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에 대해 제자들이 물었을 때, 그들 마음속에 본래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특수주의적인 경계선들을 부수고 깨트리는 것이다.[22]

아모스 9:11~12과 같은 문맥 안의 구절인 15절에는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본토”로 돌아오게 되고, 이사야 11장에서는 “고토”로 돌아오게 된다는 내용이 각각 나온다. 야고보는 사도 바울과 바나바의 이방인 가운데 교회 공동체를 세운 사건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본토”나 “고토”로 돌아오리라는 예언의 성취적 사건으로 이해하고 선언한 셈이다.[23] 그 예언의 성취는 이스라엘 민족이 팔레스타인 땅에 돌아옴으로 이루어지는 문자적이고 특수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 예수의 초림으로 시작된 그의 왕국, 즉 그의 교회 공동체에 그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은 자들이 들어오게 됨으로 이루어진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1] 유상섭, 『설교를 돕는 분석 사도행전(1-14장』, 110.

[2] Eckhard J. Schnabel, 『강해로 푸는 사도행전』, 122. 이필찬, 『이스라엘과 교회,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322.

[3] 이필찬, 『이스라엘과 교회,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322.

[4] 유상섭, 『설교를 돕는 분석 사도행전(1-14장』, 113.

[5] 유상섭. 『설교를 돕는 분석 사도행전(1-14장』, 98.

[6] R. B. Gaffin, Perspectives on Pentecost: New Testament Teaching on the Gifts of the Holy Spirit (Phillipsburg: P. & R., 1979), 20.

[7][7] 이필찬, 『이스라엘과 교회,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323.

[8][8] 이필찬, 『이스라엘과 교회,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324.

[9] Eckhard J. Schnabel, 『강해로 푸는 사도행전』, 120.

[10] 이필찬, 『이스라엘과 교회,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326.

[11] F. F. Bruce, 『사도행전』, 88.

[12] 이필찬, 『이스라엘과 교회,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326.

[13] F. F. Bruce, 『사도행전』, 89.

[14] 이필찬, 『이스라엘과 교회,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326-328.

[15] 유상섭, 『설교를 돕는 분석 사도행전(1-14장』, 127.

[16] 이필찬, 『이스라엘과 교회,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328.

[17] 이필찬, 『이스라엘과 교회,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329.

[18] 유상섭, 『설교를 돕는 분석 사도행전(1-14장』, 294.

[19] F. F. Bruce, 『사도행전』, 225.

[20] Simon J, Kistamarker, ACTS, (Grand Rapids, Michigan, Baker Book House, 1995), 300.

[21] Jeffery Niehaus, “Amos”, in The Minor Prophets: Vol. 1: Hosea, Joel, Amos, ed. T. E. McComiskey, An Exegetical & Expository Commentary (Grand Rapids: Baker, 1992), 491.

[22] David E. Holwerda, 『예수와 이스라엘』, 류호영 역 (서울: CLC, 1993), 249.

[23] 최종태, 『예언자에게 물어라』, (서울: CLC, 1999), 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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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남 | 아신대학교(ACTS) 선교대학원 교수 및 GMS 아랍권 선교사(천안장로교회 파송. since 1989). 그의 책으로 『이슬람과 메시아 왕국』CLC, 2009)과 아랍권 및 이슬람권 선교와 관련된 여러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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