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호 / 믿음의 삶]
2015년 메르스가 창궐했을 때에 중국에 있던 나는 정신이 없었다. 아내가 유방암에 걸려 수술을 받던 시기였기 때문에 공포를 느낄 겨를이 없었다. 아내의 간호를 위해 난 병원의 간이침대에서 생활했다. 병원 한쪽에는 메르스 환자들의 치료를 위한 격리 시설이 있었다. 나는 죽음과 조금 가까이 하고 있는 것인가? 그때 병원 주변을 거닐며 그런 생각을 했다.
이 병의 발원은 중동의 낙타라고 들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백신이 없다. 2003년 중국에서 발원한 ‘사스’(SARS) 역시 아직까지 백신이 없다고 한다. 백신을 만들어서 인간에게 안전한지 실험하는데 수년이 걸리고, 많은 돈을 들여 만들어도 이미 질병이 잠잠해지기 때문에 경제적 측면에서 백신을 만들지 못한다고 한다. 이 말은 상당수의 사람들이 감염되어 죽기 전까지는 치료제를 만들어 낼 수 없다는 뜻이다.
죽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사람과 땅의 시각으로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경우들이 허다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죽음에는 각각 이유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의인으로서 이 땅의 훈련을 다 마치고 하늘의 부름을 받는 경우가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악인이어서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는 경우, 평범하지만 주어진 수명을 다한 경우 등이다. 죽는 모습과 정황이 힘들어도 하나님이 없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초대 교회의 수많은 사람들은 십자가에서, 불속에서, 고문과 야수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너무 편한 현대의 과학기술 문명에 살아서 우리의 의식이 순교를 잊어버리고 무기력하고 나태해졌는가? 그러면 기독교는 이름만 남는다. 껍데기만 남은 것이다. 순교를 결심하지 않는 기독교라는 것이 인간의 역사에서 무슨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죽음을 각오하지 않은 기독교가 능력을 발휘했다는 소리를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생각해 보니 나는 어느새 사스, 메르스를 겪고 지금은 코로나19를 겪고 있다. 이 시대는 죽음이 사방에서 다가온다. 떠날 채비하고 살아야 한다. 그러면 살려고 바동대는 것과는 다른 시야로 이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는 유목 생활이다. [복음기도신문]
조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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