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호 / 믿음의 삶]
한국 나이로 16살,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영어를 배우러 간다는 생각보다는 다른 나라 문화를 너무 체험해보고 싶었다. 미국에서 참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다. 1년만 있겠다고 약속하고 간 미국의 삶은 점점 익숙해졌고, 욕심을 부려서라도 미국에 있고 싶었다.
내 것, 내 시간, 내 미래, 내 계획, 내 삶…내 것을 고집해도 어느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직면해야 할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기도 했다. 주님을 만났다했지만 모양만 남아있는 명목적인 신앙생활을 했다. 힘들 땐 주님을 찾다가도 좀 나아지면 다시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았다.
기독교 대학으로 진학하게 되면서 많은 시간을 말씀과 기도에 쏟았다. 말씀을 읽으면 읽을수록, 기도하면 할수록 말씀과는 다른 모순된 내 삶이 나를 목마르게 했다. 기독교에 적대적인 아버지께 처음으로 복음을 전할 때, 이 복음이 내 삶에는 진짜 기쁜 소식인가 하는 질문이 생기게 되었다. 그때부터 주님은 나를 더 깊은 곳으로 인도하셨다. 1초도 못 견디고 죄를 짓는 나를 보았다. 거룩해지려고 애를 쓸수록 더 불가능했다. 말로, 생각으로, 몸으로, 내 존재가 죄와 떨어질 수 없었다. 이런 고통이 있으면서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괜찮은 척 사는 것이 더 나를 비참하게 했다.
그런 한계 상황 앞에서 주님은 나를 복음 앞으로 초대하셨다. 십자가에서 존재적으로 죄인 된 나를 완전히 죽음으로 넘기시고 아름다운 예수 생명을 주셨다.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맛보았다. 오직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진짜 의를 은혜로 선물해 주셨다.
“너에게 이 복음을 주려고 부른 거야”
그 이후 한국에서 신앙훈련을 받기 위해 8년간의 유학생활을 마무리했다. 미국을 떠나는 날 비행기에서 주님께 물었다. “주님, 솔직히 지금까지의 미국 삶이 조금 아깝습니다. 저를 한국으로 보낼 계획이었다면 많은 돈이나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으셨잖아요?” 그때 주님이 내면의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너 돈과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니? 나는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가장 가치있는 이 복음을 너에게 주고 싶었어. 너에게 이 복음을 주려고 부른 거야” 이 주님의 음성은 내 평생 기억하고 싶은 말이었다.
훈련을 마친 뒤, 믿음으로 한 발짝 걷게 된 곳은 다음세대 선교사를 양성하는 기독학교의 교사였다. 교육과 아이들 모두에게 관심이 없었던 난 교육선교사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러웠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요 15:5)라는 약속의 말씀으로 불러주셔서 순종했지만 어려웠다. 주님 안에 있기만 하면 되는데 스스로 열매 맺어보려 애쓰기도 좌절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여전히 내 미래를 주님께 맡길 수 없음을 보게 되었다. 주저하는 내게 주님이 다시 약속해 주셨다. “네 갈 길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만 의지하여라. 주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시 37:5) 기도의 자리와 일상에서 주님과 교제하는 자리를 통해 내 마음을 확정해주셨다.
마음으로 결단했다. 이제 다음세대는 내가 가르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함께 이루어 갈 동역자들이다. 현재 나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우는 것만큼 예수님의 마음을 알기에 좋은 자리가 없는 것 같다. 처음 말을 배우는 아기처럼 겸손함과 믿음이 늘 필요하다. 다음세대들이 공부할 때 이런 기도를 종종 한다. “주님. 배우는 이 한 단어, 한 문장이 주님의 복음을 위해 쓰이게 해주세요. 영어 잘하는, 실력 좋은 선교사가 아니라 생명 전하는 자들로 서게 해 주세요” 물론 나 또한 쉬지 않고 주님 오시는 날까지 매일 내게 허락하신 것을 열방을 위해 아낌없이 드릴 것이다. [복음기도신문]
신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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