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강단에서 선포하던 말씀이 내게도 실제가 됐습니다”

나는 평소에 성도님들에게 교회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으러 오는 곳이라고 늘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 전에 내가 먼저 기도를 내 소원성취, 내 욕망의 도구로 사용하였다. 교회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그 말씀하시는 대로 이루는 곳이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22)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 5:24)

내 인생에서도 그렇다. 말씀은 갓난아이에게 주는 젖과 같은 것이다.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갓난아이에게 젖은 생명과 같고 성장에 필수적인 영양분이다. 문제는 내가 어느 정도는 아는 것 같고 또 그렇게 주장하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성경 한 장을 읽고 그 내용을 놓고 기도하고 또 하나님께 말씀을 받으려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도를 해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게 소명 받은 세월의 압박감과 물질적인 문제, 또한 목회현장에서 남에게 보이고자 하는 체면과 외형적인 문제는 언제나 나의 발목을 잡았다.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내가 계획하고 내가 먼저 밀고 나가니 정말 교회가 조금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인가? 목회자 복음학교를 통해 복음 앞에 내 자신이 섰을 때 교인들은 흩어지고 내 자신도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를 깨닫게 된 것은 그렇게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 않았다.

아내가 중보기도학교를 다녀오고 나는 느헤미야52기도를 일주일간 하면서 깨달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가는 목회까지도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목회하기보다 오로지 나, 나, 자아추구의 한 형태의 목회에 머무는 것을 하나님은 여지없이 허무시는 것이었다.

느헤미야52기도를 준비하면서 주님은 언제나 받기만하여 내 자아 한구석에 쌓아둔 나의 이기적인 마음, 물을 흘러 보내지 못하는 사해와 같은 내 마음에 고린도후서 9장 10절로 말씀하셨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그리고 빌립보서 3장 3절로 나를 책망하셨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나는 현재 교회에서 매월 1일을 느헤미야52기도를 하는 날로 정하고 하루 24시간 기도를 하고 있으며, 일 년에 2차례 한 주간의 느헤미야52기도를 할 것을 계획하고 있다. 그리고 지역목회자들과 원회모(원형교회 회복을 위한 모임)로 모여서 말씀으로 기도하며 교제하고 있다.

내가 말씀기도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시간은 내게 참 유익하다. 먼저 내 인생의 모든 연출가이신 주님에게 의뢰할 적에 내 마음이 얼마나 평안한지 알 수 없다.

예전에는 내 영이 내 육과 싸우는 혼란된 마음이 나를 괴롭혔다. 세상 보이는 것에 국한 된 종교적인 관습, 형태에 매여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내 영이 나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검 되시는 주님이 나의 적과 싸우는 것을 경험한다. 그리고 말씀하시고 나는 그 말씀대로 따라 갈 뿐이다.

이번 말씀기도학교에서 섬기면서도 주님이 나의 자아를 흔들어 놓으셨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고전 8:1)에서 통곡하며 회개했다.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고전 16:9)에서 깨달아지는 것은 결국은 나의 적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적으로 부패한 나의 자아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내 자아충족의 종교는 끝이 났습니다. 이제 주님이 원하시는 열방을 향한 문을 바라봅니다. 지나간 날들이 내가 우상이었고 대적이었다면 이제는 주님의 약속을 의지하며 교회를 세우고 외국에서도 동일한 교회를 세울 것을 다짐한다.

‘주님께서 하셨습니다. 이제 주님을 더욱더 나의 왕 되심을 여기고 나의 온전한 삶을 드리며 신뢰 할 것을 다짐합니다.’

김원채 목사(인현교회)
나는 평소에 성도님들에게 교회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으러 오는 곳이라고 늘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 전에 내가 먼저 기도를 내 소원성취, 내 욕망의 도구로 사용하였다. 교회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그 말씀하시는 대로 이루는 곳이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22)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 5:24)

내 인생에서도 그렇다. 말씀은 갓난아이에게 주는 젖과 같은 것이다.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갓난아이에게 젖은 생명과 같고 성장에 필수적인 영양분이다. 문제는 내가 어느 정도는 아는 것 같고 또 그렇게 주장하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성경 한 장을 읽고 그 내용을 놓고 기도하고 또 하나님께 말씀을 받으려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도를 해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게 소명 받은 세월의 압박감과 물질적인 문제, 또한 목회현장에서 남에게 보이고자 하는 체면과 외형적인 문제는 언제나 나의 발목을 잡았다.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내가 계획하고 내가 먼저 밀고 나가니 정말 교회가 조금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인가? 목회자 복음학교를 통해 복음 앞에 내 자신이 섰을 때 교인들은 흩어지고 내 자신도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를 깨닫게 된 것은 그렇게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 않았다.

아내가 중보기도학교를 다녀오고 나는 느헤미야52기도를 일주일간 하면서 깨달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가는 목회까지도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목회하기보다 오로지 나, 나, 자아추구의 한 형태의 목회에 머무는 것을 하나님은 여지없이 허무시는 것이었다.

느헤미야52기도를 준비하면서 주님은 언제나 받기만하여 내 자아 한구석에 쌓아둔 나의 이기적인 마음, 물을 흘러 보내지 못하는 사해와 같은 내 마음에 고린도후서 9장 10절로 말씀하셨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그리고 빌립보서 3장 3절로 나를 책망하셨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나는 현재 교회에서 매월 1일을 느헤미야52기도를 하는 날로 정하고 하루 24시간 기도를 하고 있으며, 일 년에 2차례 한 주간의 느헤미야52기도를 할 것을 계획하고 있다. 그리고 지역목회자들과 원회모(원형교회 회복을 위한 모임)로 모여서 말씀으로 기도하며 교제하고 있다.

내가 말씀기도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시간은 내게 참 유익하다. 먼저 내 인생의 모든 연출가이신 주님에게 의뢰할 적에 내 마음이 얼마나 평안한지 알 수 없다.

예전에는 내 영이 내 육과 싸우는 혼란된 마음이 나를 괴롭혔다. 세상 보이는 것에 국한 된 종교적인 관습, 형태에 매여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내 영이 나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검 되시는 주님이 나의 적과 싸우는 것을 경험한다. 그리고 말씀하시고 나는 그 말씀대로 따라 갈 뿐이다.

이번 말씀기도학교에서 섬기면서도 주님이 나의 자아를 흔들어 놓으셨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고전 8:1)에서 통곡하며 회개했다.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고전 16:9)에서 깨달아지는 것은 결국은 나의 적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적으로 부패한 나의 자아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내 자아충족의 종교는 끝이 났습니다. 이제 주님이 원하시는 열방을 향한 문을 바라봅니다. 지나간 날들이 내가 우상이었고 대적이었다면 이제는 주님의 약속을 의지하며 교회를 세우고 외국에서도 동일한 교회를 세울 것을 다짐한다.

‘주님께서 하셨습니다. 이제 주님을 더욱더 나의 왕 되심을 여기고 나의 온전한 삶을 드리며 신뢰 할 것을 다짐합니다.’

김원채 목사(인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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