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마음의 빗장을 열자 주님이 일하기 시작하셨다”

re 160 7 1 knwoing누군가 내게 삶에서 가장 기뻤던 때를 묻는다면, 바로 지금이라고 말하고 싶다. 주님과 함께 가고, 서고, 숨 쉬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고백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3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일평생 나만을 위한 삶을 살다 하나님의 은혜로 총체적 복음 앞에 서게 되었다. 그 후 진짜를 알고도 세상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멍청한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말씀에 순종하며 살면서도 엎치락뒤치락하기를 반복했다.

극적인 하나님의 강권하심으로 나는 문화사역을 하는 한 선교단체에 헌신하게 되었다. 믿음으로 한 걸음 내딛긴 했지만, 헌신 후 주님 앞에서 여러 훈련을 받으며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겼다. 공동체 훈련을 통해 관계, 생활, 사역 속에서 어느 것 하나 자유로울 수 없던 나는 하나님을 “너, 한번 죽어봐라!”라고 말씀하시는 분으로 오해했다. 어떤 선함도 내게서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직면하게 되었을 때는 모든 것을 끝내고 싶었다.

그때 내게 주신 말씀을 붙들게 하셨다. “네가 가야 할 길을 내가 너에게 지시하고 가르쳐주마. 너를 눈여겨보며 너의 조언자가 되어주겠다.”(시 32:8, 새번역)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워 고집도 부려보고 이를 꽉 깨물고 버텨보기도 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결론 내리지 못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 결론 뒤에 마침표가 찍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빛 되신 주님 앞에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공동체를 향해 잠가뒀던 마음의 빗장을 열어 은혜를 구했던 이후부터 주님은 일하기 시작하셨다. 모든 상황마다 주님이 아닌 내가 드러나려고 할 때, 주님은 나로 반응하지 않게 하시고, 알 수 없는 평안함으로 마음을 지켜주셨다.

다음세대를 섬기며 누리는 은혜

난 결혼해서 남편과 아이에게 희생하고 싶지 않아 독신주의자를 고집했다. 그런데 몸담고 있는 선교단체에서 맡게 된 역할은 다음세대를 섬기는 일이었다. 미술을 공부했던 나는 배우들의 배경막이나 만들어주는 무대미술은 하지 않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교만했다. 그런 내게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그림자처럼 하찮아 보였다. 이 부르심이 내게 선물이라고 말해주었던 지체들의 어떤 말에도 동의할 수 없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종신토록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를 위해 얼마든지 봉사하고 낮은 자리에서 섬길 수 있지만,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선교완성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는 존재라는 사실에 더욱 절망은 깊었다. 주님은 선한 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 삶은 지옥 같았다.

가끔 누군가 연고도, 관련도 없이 어떻게 헌신했냐고 물으면 “주님이 헌신하라고 하셨어.”라는 대답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한 지체와의 대화 속에서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문화예술선교사”라는 기대감이 내게도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평생 예술을 하면서 살고 싶어 예술에 내 전부를 걸었다. 그러나 선교사로 헌신하면서도 은근히, 그리고 교묘하게 ‘선교사’라는 이름 앞에 붙여진 ‘예술’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사역의 특성상 사람들 앞에 드러나는 자리가 많음에도 보이지 않는 자리에 있으면서 ‘온전히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나 죽었는가?’를 매 순간 확인하게 된다. 아니, 나를 부인해야 설 수 있는 자리는 결코 익숙하거나 적응되지 않고, 믿음으로만 설 수 있다는 것을 ‘야다’(‘체험하여 알다’ 라는 뜻의 히브리어)하여 알게 된다.

십자가에서 철저히 나를 부인하지 않으면 하루가 천년 같고, 부인하면 천년이 하루처럼 빨리 지나가는 것이 믿음의 삶인 것 같다. 나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면 이 땅에 오시지 않으셔도, 사역을 하시고 가르치실 필요도, 십자가에 못 박히실 이유도 없었을 예수님. 진리 앞에서 나의 옛자아가 마구 부대낄 때면, 오늘도 예수님의 발자취를 잘 따라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누군가 또 나에게 ‘선교사의 삶은 어때?’라고 묻는다면 너무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를 부인하고 선 십자가에서 비로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는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GNPNEWS]

문수임 선교사(문화행동아트리)

Print Friendly, PDF & Email

관련 기사

307_7_1_Life of Faith(1068)
“판단하는 내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사실이 믿어졌어요”
306_7_1_Life of Faith(1068)
“나의 옥합을 깨뜨리며 믿음의 은사를 붙잡다”
305_7_1_Life of Faith(1068)
아버지에 대해 알 수 없는 긍휼함이 부어졌다
304_7_1 Gospel(1068)
못 본 체하지 말라

최신기사

[오늘의 한반도] 노인학대 가해자 40%가 노인 외 (11/6)
[오늘의 열방] 인니, 화산폭발로 9명 사망.63명 부상 외 (11/6)
‘미국의 선택’ 시작됐다…뉴햄프셔부터 하와이까지 이젠 결단
[GTK 칼럼] 다른 이름(2): 정죄의 메시지
젓가락질 하는 인도 소녀들을 보며 떠올리는 단상
美 사법부, 청소년 성 정체성 긍정하도록 권장... 부모들, 신념에 휘둘리는 '사법 정의 훼손' 우려
[정성구 칼럼] 죽었나 살았나
Search

실시간최신기사

20241106_Old
[오늘의 한반도] 노인학대 가해자 40%가 노인 외 (11/6)
20241106_Indonesia
[오늘의 열방] 인니, 화산폭발로 9명 사망.63명 부상 외 (11/6)
U.S
‘미국의 선택’ 시작됐다…뉴햄프셔부터 하와이까지 이젠 결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