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호 / 믿음의 삶]
“기도를 하는 학교”
‘주님과 마음의 결을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하는 설렘으로 한 선교단체의 중보기도학교에 지원했다. 예수님이 선생님이 되시고, 내가 학생이 되어 배운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였는지 모른다.
아무런 준비 없이 목회자의 사모가 되어 홀로 이 길을 외롭게 걷는 것 같았다. 그런데 훈련이라는 것을 처음 받으며 주님이 이곳으로 보내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님의 허락하심이 최선’이라는 말의 의미를 약 6개월간의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깨닫게 하셨다.
겁과 두려움에 싸여 있던 나의 옛사람은 훈련이 시작되면서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 개인적으로 주셨던 약속의 말씀을 이루어 가시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슥 12:10) 이 말씀으로 기도할 때마다 가슴으로 울게 하시고, 엎드릴 때마다 주님의 마음으로 기도하게 하셨다.
주위의 현실은 늘 무슨 일이 벌어져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했다. 그러나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여 기도하다 보면 어떠한 상황보다 평안의 복음을 먼저 붙들게 하셨다.
훈련의 마지막 과정인 해외아웃리치를 가려고 할 때 가족들과 주위의 반대가 많았지만 믿음으로 순종했다. 골리앗을 앞에 두고 이스라엘 군대가 떨고 있을 때, 홀로 물맷돌을 들고 섰던 다윗의 마음처럼 사람들의 인정과 평판의 두꺼운 벽을 허물고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담력을 허락하셨다. 무심하게 교회를 돌보지 않는 것 같은 나를 어려워할 수밖에 없던 교회를 향해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져서 사랑하게 하시고, 결국 더욱 하나 되는 은혜를 허락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모든 것을 ‘주님이 하십니다!’라는 고백으로 기도하니 정말 그 고백이 내 삶에서 실제가 되어갔다. 키르기스스탄을 향해 아버지의 마음으로 구할 때, 기도의 지경을 점점 넓혀 주셨다. 성령님이 내 심령을 조명하실 때마다 말씀을 사랑하고 갈급하게 하셨다. 기도하는 매시간 예배자의 마음으로 서게 하셨던 아웃리치였다.
지난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하시며 인간적인 섬김과 열심이 죄악임을 깨닫게 하셨다. 아웃리치를 다녀 온 후, 얼마 동안 교회 일로 힘들고 어려웠지만 누구를 탓할 수도, 무슨 일로도 핑계할 수 없었다. 동일한 존재적 죄인이기에 그런 상황이 있을 때마다 말씀으로 주님과 교제하게 하셨다. 그리고 진리가 결론되었다. 복음과 기도로 보여지는 상황과 감정에 반응하지 않게 하시고 나 자신은 소망 없는 존재이며 오직 하나님에게 소망이 있음을 알
게하셨다. 예수님과 함께 옛 자아는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고, 예수님과 함께 산 부활생명으로 새 사람이 되게 하신 하나님께 무한 감사를 드린다.
복음을 알고 나니 시간을 더 내어드리고 싶고, 물질도 기쁨으로 드리고 싶다. 내 것은 이제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오직 그 분의 사랑으로 살기 원한다. 그 분의 마음으로 기도하기 원한다. 오직 주의 은혜로 살게 하시고, 오직 주의 사랑으로 울게 하시고, 오직 주의 섭리로 가능케 하신다.
‘왜 태어났을까?’ 항상 내 인생에 커다란 질문이었다. 열방을 향한 기도의 자리로 나갈 때, 내 삶의 이유를 찾아가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았다. 이제는 당당히 ‘주님이 하셨지.’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나에게서 떠나 주님께 도달하는, 아웃-리치(Out-Reach)하는 것이 행복임을 깨닫게 하신 주님이 너무 멋지시다. 주님과 함께 살고 죽어 열방을 위한 부르심으로 나아가겠다. 주님 다시 오심을 사모하며, 마라나타! [GNPNEWS]
이경아 사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