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부르신 땅 끝에서 밀알 되어 썩어지겠습니다

PArk
박희영 선교사 (순회선교단)

서른살 즈음에 주님은 저를 깊이 만나 주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했고, 주님을 위해서라면 내 수준에서 아는 만큼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제 삶의 주인이 바뀌었을 때는 이미 이 땅에서 순종할 기회가 남아있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암과 사투를 벌이며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제발 열방으로 보내 주시고, 순종할 기회를 달라고 주님께 간절히 매달렸습니다. 기도를 외면치 않으신 주님은 순회선교사로 부르셨습니다. 선교사의 삶이 시작되고 복음은 결코 이론으로 살아질 수 없었습니다. 모든 영역에서 십자가의 구속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의 영광으로 기쁘고, 충분한 것도 사실인데 매순간 나를 부인하는 삶은 고통스러웠습니다.

안 쓰던 근육을 늘리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을 즈음, 건강상 아이를 갖는 것이 불가능했던 저희 가정에 기적처럼 아이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아이와 함께 시작된 야엘의 자리, 아이를 믿음으로 양육하고, 현숙한 아내로 남편을 내조하며 공동체를 돌보는 자리였습니다. 또 장막에서 적장 시스라의 살적을 박았던 야엘처럼 복음과 기도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전쟁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야엘팀의 사역은 제 삶에서 이제껏 크게 가치를 두지 않았던 일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사역은 주방영역이었습 니다. 그런데 칼질도 못하고 국에 마늘이 들어가는지도 몰라서 어른들에게 꾸중도 많이 들었습니다. 어른들이 칼질하고 있는 곳으로 오시기라도 하면 돌아서서 칼질을 했습니다. 한편 간단히 먹자 주의였던 제 사고 속에는 몇 시간씩 음식을 준비해서 먹는 것은 잠시, 뒷정리는 한참인 이 일이 참 시간낭비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일이 도대체 하나님 나라와 무슨 상관이 있나 생각도 했습니다. 그리고 왠 캐고 뜯어야 하는 나물은 그렇게도 종류가 많은지, 나물 캐는 일도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이 주님 나라와 관련이 있다고 믿어진 어느 날부터는 저 스스로 놀랄만큼 달라져 있더군요. 어쩌다 한번 남편이나 지체들과 진지한 믿음의 교제를 하며 산책을 가는 길에서도 시선은 항상 달래를 찾는 저를 보며 다들 기이히 여깁니다. 이제는 제법 음식도 맛있게 하고 밭일이며 무거운 것 드는 것도 거뜬합니다. 현숙한 여인은 일(work duty)을 잘하는 여인이란 의미가 있답니다. 정말 주님이 하셨습니다. 나름 우아하고 멋져보였던 선교사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저에게 야엘팀으로의 파송은 주님의 정확한 일하심이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도 좌충우돌 많은 고민과 넘어짐들이 있었습니다. 철없을 때에는 전체를 보는 눈도 없었고 몸 안의 어른들에 대해서도 다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자식을 키워봐야 부모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지체를 세우시기 위해 친히 잡아먹히시고 디딤돌이 되어주신 선배님들, 지체들이 있어야만 제가 완전할 수 있는 생명의 공동체, 하늘 가족으로 묶어주신 지체들의 소중함도 이제야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최근 한 책을 통해 여러 핍박이 있는 나라에서 주님 때문에 믿음을 지키며 생명을 내어주는 이들을 보며 감격했습니다. 저도 그 이하의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기도로 총알이 빗발치는 적진 한복판에 가장 먼저 뛰어 들어가 싸우고 가장 나중에 나오는 자로 살 것입니다. 지옥 뚜껑을 밟고 있었던 자에게 이보다 더한 자비의 초대가 어디 있습니까? 날이 갈수록 가장 영광스러운 부르심에 감격합니다.

누가 보기에 초라하고 무능해 보이면 어떻습니까? 주님 사랑하는 것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엄청난 믿음의 고백과 화려한 말을 하고도 돌아설 수 있는 가짜 선교사 말고 진짜 선교사로 살 것 입니다. 언젠가 거친 폭풍으로 부르심이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 온다면 기억할 것입니다. 인생에 찬바람이 불어 춥고 갈급하던 때, 벼랑 끝에서 만나주셨던 하나님, 영혼의 목마름이 바닥을 치던 때에 광야 마른땅에서 저를 기억하시고 건져주셨던 하나님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주님을 따를 이유는 충분합니다. 더 이상 주님의 영광이 사모 되지 않고 냉랭해 진다면, 나에게 집중되고 요구가 많아진다면, 보이는 상황에 반응 하고, 불평과 섭섭함, 억울함, 원망, 정욕, 미움이 올라 오면 기억할 것입니다. 배부르고 교만함을 물리쳐 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차라리 춥고 목이 말라서 심령이 갈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나는 매일 죽노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다 하여 설 수 있는 믿음 아닙니다. 어제의 믿음으로 살 수 없는 삶, 어제의 승리가 오늘의 승리가 될 수 없는 삶, 매일 다시 복음 앞에 서며 호흡 있는 동안 십자가만을 자랑하며 행복한 행진 할 것입니다. 저에게 복음이 들려지기까지 밀알 된 순종의 삶을 살고 가셨던 선배 선교사님들처럼 저 또한 부르신 땅 끝에서 밀알 되어 썩어지겠습니다. 주님만 함께 하신다면 그곳이 어디든 하늘나라입니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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