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지으신 목적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아보고, 그분을 진정으로 경배하며 그분과 생명의 교제를 누리고 그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하지만 ‘죽은 자’ 즉, 하나님과 생명의 관계가 끊어진 자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한마디로 말하면 살아있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이자 생명의 관계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포도나무 가지는 줄기에서 떨어지는 순간, 잎이 아직 푸르거나 아직 열매가 있거나 상관없이 죽은 것입니다. 겉으로는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죽은 것입니다. 인간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생명의 관계를 떠나서는 살 수 없도록 지어졌습니다. 예배당을 오가고 성경지식은 늘어가는 데, 살아계신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없다면 그는 ‘죽은 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관계는 무엇입니까?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세아 6:6)
하나님께서는 제사, 예배 의식에 감동받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우리에게 관심이 있다고 하십니다. 나를 구원해 주시고 불러주신 하나님 사랑에 감사하고 감격해서 그 사랑의 표현으로써 찬송도 드리고, 기도도 드리고, 헌금도 드리는 것이 예배의 순서가 되는 것입니다. 의식은 갖췄지만 마음이 떠난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살아있는 인격체를 가장 모독하는 방법은 비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모독하는 것은, 예배의 주인이신 하나님께는 관심이 없고 설교자나 성가대, 여러 가지 다른 설교에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자칫하면 예배분위기에 너무 신경쓰다보니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우리끼리 감동받고 돌아가는 비극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께서 감동받으셔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정말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알다’라는 말은 체험하여 안다는 말입니다. 지식으로, 들은 얘기로 아는 것이 아니라 정말 사랑해서 그 마음이 어떤지 공유할 수 있는 사이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이런 사이가 되기 원하십니다. 살아 있는 생명의 관계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주님과 생명의 관계에 있을 수 있습니까?
첫째,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은총을 온전한 믿음으로 영접하여 성령 안에서 거듭남으로 가능합니다.
둘째, 자신의 온 삶을 주님께 맡길 만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주님과 생명의 관계에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 4:4)
지금까지 직장에, 돈줄에, 밥줄에 쩔쩔매며, 일생 굶어 죽을까 무서워 전전긍긍 한 것이 우리의 인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불러내실 때에 그의 모든 기반을 완전히 떠나서 ‘나로 말미암아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는 환경에 매여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나 나를 인도하신 주님 한 분만을 바라보고 그 믿음에 온 삶을 걸고 살아가는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합니다. -메시지 정리-
<순회선교단 대표>